‘신라면 신화’ 故 신춘호 회장...한국의 매운맛 세계를 울린 '라면쟁이'

양길모 기자
입력일 2021-03-28 08:00 수정일 2021-03-27 21:06 발행일 2021-03-2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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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신춘호 회장 별세
농심 창업주인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4년 덴마크 왕실 훈장 수훈받는 모습. (사진=농심)
농심 창업주인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신 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나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故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신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며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당시 라면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신 회장은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스스로를 ‘라면쟁이·스낵쟁이’라고 부르며 장인정신을 주문한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라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성공장 설립 때에도 신춘호 회장의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춘호 회장은 국물 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 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춘호 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돼 있다.

'신라면 신화'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 별세
‘신라면 신화’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 별세 (사진=연합)
그중에서도 신 회장의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되어있었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라면으로 등극했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신춘호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신라면의 마케팅과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농심 직원들
신라면의 마케팅과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농심 직원들 (사진=농심)
실제로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시설에 라면최초로 입점되어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 회장은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그리고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가 신라면 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신 회장의 라면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음식에서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간편식으로 진화했으며, 전 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되며 한국 식품의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편 신 회장은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회장 부인) 3남 2녀를 두었다.

양길모 기자 yg10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