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이드] ‘황금별 여사’ 신영숙의 ‘레베카’ ‘맘마미아’ ‘엘리자벳’…“꿈은 이루어 진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11-22 19:00 수정일 2019-11-22 19:01 발행일 2019-11-2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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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사진제공=EMK뮤지컬)

“신영숙은 부족함이 많은 사람 같아요. 평범하고 대단한 스타도 아니고 TV나 방송에 노출돼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관리도 잘 안되고…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죠.”

초연부터 단 한 시즌도 빠짐없이 댄버스 부인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뮤지컬 ‘레베카’(2020년 3월 15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의 신영숙은 스스로를 “부족하고 완벽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스스로 ‘어떻게 지금까지 배우생활을 하고 있나’ 질문할 때가 많아요. 참 열심히 했구나 싶어요. 가진 게 그리 대단하지 않아도 부족한 걸 자책하고 만회하면서, 정말 이 일을 사랑하니까 더 열심히 하면서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요. 인간 신영숙은 많이 부족하지만 배우 신영숙으로서는 완벽한 모습으로 무대 서고 싶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아요.”

‘황금별 여사’라는 애칭을 가지게 해줬던 ‘모차르트!’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무명시절 실력으로 짊어진 무게와도 같았던 ‘캣츠’의 그리자벨라, 여우조연상을 안겼던 ‘팬텀’의 마담 칼르로타를 비롯해 ‘명성황후’ ‘맘마미아’ ‘엘리자벳’ 등 계단을 오르듯 배우 신영숙은 지금에 이르렀다.

 

◇잊지 못할 뮤지컬 ‘캣츠’의 그리자벨라
[2019 레베카] 레베카_신영숙02_ⓒEMK Musical Company
뮤지컬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사진제공=EMK뮤지컬)

“인지도가 없었는데도 오디션에서 1등을 해서 맡은 역할이 ‘캣츠’의 그리자벨라였어요. 저는 코믹을 사랑했고 그런 역할을 주로 했었는데 ‘캣츠’ 이후로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들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조금씩 스팩트럼을 넓혀간 것 같아요.”

오디션에서 1등을 하고도 인지도, 외모 등의 문제로 캐스팅에서 밀려나기를 여러 번이던 신영숙에게 스팩트럼을 넓혀갈 발판이 돼준 작품이 뮤지컬 캣츠‘였다.

“지금해도 잘할까 말까한데 그때는 30대 초반이었고 그렇게 큰 역할도 처음이었죠. ‘메모리’ 하나 부르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잘 표현해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부족한 역량이 졌어요. 인지도도 없는 배우를 오디션에서 1등 했다고 중요한 역할을 시켜줬더니 분장실에서 불을 끄고 나오지도 않고 말도 안섞고 성격책만 읽고 있고…그런데도 ‘메모리’가 잘 안됐죠.”

당시를 회상하는 신영숙은 “공연에 도움도 안되고 우울증에 걸리는 줄 알았다”며 “요즘은 공연 바로 직전에 몰입하고 인물이 되려고 한다”고 밝혔다.

“처음 ‘레베카’를 할 때도 그랬어요. 이 여자는 예민할 것 같고 차가울 것 같아서 찬물로 샤워를 했죠. 그렇게 오버하면서 해볼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그런 시절들이 쌓여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시도조차 안했다면 그런 내공은 안쌓였겠죠. 요즘은 뭘 봐도 눈물이 주룩주룩 나고 굉장히 슬퍼지고…직업병같아요. 얘기하다가도 빠져들고 이러다 병 생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죠.”

그리곤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게 역할들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 하면서 더 큰 기회들이 온 것 같다”며 “그러다 보니 30대 후반에는 주인공도 하게 되고 ‘명성황후’ ‘맘마미아’ ‘엘리자벳’ 등 여성이 주인공인 무대에도 서게 되고 40대 중반이 되는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을 보탰다.

◇관객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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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사진제공=EMK뮤지컬)

“20년 동안 좌절의 순간들이 진짜 많았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20대 때 오디션에서 떨어져 울고 집에 갔던 기억이에요. 기고만장해져 있던 때였죠. 오디션 탈락도 나중에는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럼에도 20년을 한결같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신영숙은 “힘든 건 잊고 좋은 건 많이 기억하려는 성격”이라며 “연속적으로 작품을 할 수 있었고 앙상블부터 한 단계 한 단계 오를 수 있었던 바탕은 긍정적 마인드”라고 밝혔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바탕으로 무대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죠. 요즘 가장 고민은 인지도예요. 뮤지컬 전문 배우다 보니 인지도가 부족한 걸 느껴요. 지금보다 인지도가 더 없을 때는 오디션에서 일등을 했는데도 출연을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방송에라도 나가봐야하나 싶고…제가 어떻게 해야 그 부족함을 메꿀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 중이죠.”

무대 위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인지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신영숙을 일으키는 건 역시 관객들이다.

“체력적으로 너무 지치거나 선택되지 못한 데서 오는 좌절감에도 저를 기운 나게 하는 건 관객분들이에요. 매 공연 여러번 보러 와주시면서도 마음을 표현하려고 편지들을 주세요. 그 편지를 다 읽어요. 그 편지를 읽다보면 지치고 힘들다가도 힘을 얻죠. 일도 하시고 각자의 생활도 있으실텐데 제 공연을 보고 힘을 받아간다고 하시니 ‘으쌰 으쌰’ 힘을 내게 돼요.”

[2018 엘리자벳] 나는 나만의 것(리프라이즈)_신영숙_EMK제공
꿈의 무대였던 ‘엘리자벳’의 신영숙(사진제공=EMK뮤지컬)
그리곤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로 20년 이상 무대를 했어도 괜찮아지는 것이 식은 죽 먹니는 아니다”라며 “라이브.무대를 좋고 사랑하는 만큼 실수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기본적인 긴장감이 있지만 관객들을 위해 꼭 지키려는 것들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약속한 날에는 반드시 무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해요. 피켓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해서 극장에 오시는 걸 알고 있거든요. 무대 위에서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강해져야할 것 같아요.”

◇꿈은 이루어진다! ‘명성황후’ ‘맘마미아’ ‘엘리자벳’

“코믹한 역할을 할 때는 무대에서도 너무 행복해요. ‘팬텀’의 칼를로타는 무대에서 다 풀 수 있었어요. 신경질을 낼대로 내고 성질껏 해도 사랑받았고 여우조연상도 탔죠.”

이어 “‘스팸어랏’에서 호수의 여인도 너무 즐거웠다”며 “앞으로도 그런 역할들이 있다면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그리곤 “작품은 인연같다. 할 뻔 하다가 못하거나 작품 제작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들이 있었다”며 “좀 아쉬운 건 (헤븐에서 준비하던) ‘스위니토드’의 러빗 부인”이라고 털어놓았다.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강한 역할이라 잘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인연이 아니었는지 못하게 됐죠. 반면 ‘명성황후’처럼 생각도 못했는데 하게 된 작품도 있어요. 좀 어렸을 때 ‘맘마미아’ 오디션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시 오디션을 보던 오리지널 음악감독이 저한테 ‘당신은 앞으로 도나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 후 가슴에 ‘도나를 하겠구나’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짜로 하게 됐죠. ‘엘리자벳’도 너무 간절하게 하고 싶어서 오디션에 매번 도전했어요. 그러다 보니 40대에 16세 소녀 역할을 하게 됐죠.”

이어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댄버스가 그랬듯 예전부터 꿈꾸던 역할이 엘리자벳이었다. 올해 엘리자벳을 연기한 게 굉장히 큰 기쁨으로 남아있다”며 EMK뮤지컬에서 ‘엘리자벳’을 라이선스로 무대에 올리기 전 팬들이 전해준 염원에 대한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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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베카’ 댄버스 부인 역의 신영숙(사진제공=EMK뮤지컬)

“오스트리아에서 ‘엘리자벳’ 공연이 될 때였어요. 제 팬들이 그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직접 번역하고 책으로 제본에 저에게 선물해주셨어요. 엘리자벳 초상화에 제 자신을 합성해서….”

그렇게 염원하던 ‘엘리자벳’의 첫 공연날, 로비에서 10년 가까이 그의 꿈을 응원하던 팬들을 만난 신영숙을 결국 눈물을 흘렸단다. 그도 울고, 팬들도 울면서 신영숙의 표현처럼 “로비는 눈물바다를 이뤘다.”

“기쁨과 감동을 공유하던 팬들과 같이 무대를 꾸린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꿈꾸던 작품들을 늦게나마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죠. 늦게 이뤄서 더 감사해요. 지금이 이 정도인데 앞으로 10년은 더 도전하고 꿈꾸고 건강한 배우 생활을 해야겠다 싶어요. 저에게 한마디로 희망을 준 사람들처럼 저도 관객들,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는 굳건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