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월드컵] ‘무명감독’ 정정용, 어린선수들 ‘원팀’ 이끌며 "이젠 4강"

김민준 기자
입력일 2019-06-05 11:05 수정일 2019-06-05 11:09 발행일 2019-06-05 99면
인쇄아이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전반<YONHAP NO-3245>
4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 한·일전. 전반 한국 정정용 감독이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을 이끄는 정정용 감독. 그는 변화무쌍한 전술로 이번 대회 매 게임마다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아직 20세 안팎의 어린 선수들을 하나의 팀 ‘원 팀’으로 묶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

5일 새벽 일본과의 U-20 월드컵 16강전 승리는 후반 39분 오세훈의 결승골,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이강인 등 모든 선수들의 헌신 덕분이었다. 하지만 적장인 일본 감독이 인정할 정도로 변화 무쌍한 전략과 전술이 힘을 발휘했기에 예선 통과는 물론 일본을 꺾고 8강 진출도 가능했다는 평가다.

정정용 감독은 이날 일본을 맞아 아르헨티나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 때 재미를 보았던 3-5-2 포메이션을 선택했다. 최전방 투톱으로 장신의 오세훈과 플레이메이커형 재간꾼 이강인을 세웠다. 조영욱과 김정민을 2선에 배치해 이아들의 득점을 돕도록 했다.

하지만 전반전 내낸 한국팀은 답답한 경기력을 보였다. 점유율도 7대 3으로 일방적으로 일본에 밀렸다. 중간 패스는 커트 당하기 일쑤였고 최전방 공격까지 흐름이 늘 원활치 못했다. 이대로 가면 일본에 일격을 당할 것이 뻔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 감독은 과감한 전술 변화를 택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수비수 이지솔을 빼고 공격수 엄원상을 투입했다. 체력이 고갈되는 후반에 오히려 과감한 닥공(닥치고 공격) 전술을 택한 것이다. 포메이션 역시 4-4-2로 전환했다.

선수들은 정 감독의 기대대로 경지 주도권을 빼앗아오기 시작했다. 빠른 엄원상과 출중한 볼 컨트롤과 패싱력의 이강인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결국 줄기찬 공세에 당황한 일본은 패널티 에어리어 외곽에서 패스 미스를 범했고, 후반 39분 최준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우겨넣은 오세훈의 결승골로 1대 0 짜릿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정정용 감독은 물론 적장인 일본 감독조차 후반전 포메이션 변화를 승패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정 감독은 “전반전에는 의외로 고전했지만, 후반에 전술 변화를 주었던 것이 주효했다”면서 전술을 잘 따라준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일전 승리-8강 확정, 현지 응원단과 함께<YONHAP NO-2426>
4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6강 한·일전에서 1-0 승리로 8강 진출을 확정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광고판을 넘어 관중석의 한국 응원단 앞에 서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포효하고 있다. (연합)

선수들 역시 정 감독의 전술대로 승리를 챙겨 사기충천이다. 특히 매 경기, 전후반 어느 때고 최선의 전략과 전술을 고민하며 선수들에게 ‘하나의 팀’으로 경기에 임할 것을 독려하는 정 감독에 대해 무한신뢰를 보내고 있다.

숙적 한일전을 앞둔 마지막 훈련 때도 아직 한 경기도 뛰어보지 못한 이규혁(제주)이 먼저 나서 “경기에 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 뛴 사람도 나올 텐데 못 뛴다고 뒤에서 표현하지 말고, 다 같이 한 팀으로 응원하고 내일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을 독려한 장면은 ‘원 팀’의 완벽한 모습이었다.

경기를 뛰지 못한 선수들은 벤치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했고, 형들을 제치고 경기에 투입된 막내 이강인은 죽어라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강인은 “나라면 경기에 못 뛰게 됐을 때 화가 났을텐데, 형들은 티를 하나도 내지 않고 벤치에서도 계속 응원해줘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어린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고 있는 정정용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아니다. 처음 대표팀 사령탑으로 발표되었을 때 그가 누군인지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정 감독은 한국 유소년 축구의 대표 지도자로 일찌감치 역량을 인정받아 온 일급 조련사다. 2008년 U-14 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U-17, U-23 대표팀 코치 등을 두루 거치며, 어린 선수들을 어떻게 키우고 도울 지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실천했다. 2016년 U-17 대표팀을 맡으면서 감독 데뷔를 한 정 감독은 이후 U-20 대표팀 감독대행, U-23 대표팀 감독대행, U-20 대표팀 감독직을 맡아오고 있다.

정정용 감독은 실업팀에서 무명 선수로 오랫동안 센터백 포지션을 주로 맡았었다. 축구 명문인 청구중학과 청구고등학교를 나와 경일대학교를 거쳐 1992년에 이랜드 푸마에 입단해 6시즌 동안 뛰다 부상으로 1999년에 29세의 나이에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었다.

이후 그는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거치며 본격적인 지도자의 길을 준비했다. U-20 대표팀의 소방수로 나선 2016 수원 컨티넨탈컵에서 이승우와 백승호 등을 이끌며 나이이리아 등을 꺾는 파란으로 우승을 거머쥐면서 축구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스타 출신의 신태용 감독에게 U20 월드컵의 감독 자리를 물려주면서 정식 감독 자리와의 인연은 또다시 멀어졌다.

이후 툴롱컵에서 U-19 대표팀을 이끌면서 이강인이라는 미래 스타를 조련했고 당시 U-21 대표팀들과 맞붙어 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 줌으로써 다시금 정정용이라는 이름을 축구협회와 축구팬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김민준 기자 sports@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