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걸그룹의 여성해방운동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18-05-27 17:05 수정일 2018-05-28 09:03 발행일 2018-05-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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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별 문화부 차장

가수 겸 연기자 수지는 유난히 자기표현에 서툰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1월 자신의 솔로 쇼케이스 때도 취재진의 질의응답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 질타를 받았다. 그런 수지가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인기 유튜버 양예원씨의 성범죄 피해 사실을 조사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에 공개적으로 동의의사를 밝힌 것이다. 많은 이들이 수지의 의사 표명에 공감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논란의 스튜디오 운영자가 바뀐 것이다. 현재 이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는 수지가 국민청원 글에 동의함으로서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고 수지는 사과했다. 그럼에도 논란의 화살은 수지에게 향했다. 18일에는 ‘연예인 수지의 사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국민청원 취지와는 무관한 인신공격이다. 해당 게시물은 삭제됐지만 여전히 온라인상에는 수지의 국민청원 동의에 대한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수지뿐 아니다. 레드벨벳 아이린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고백했다가 ‘페미니스트’로 몰려 곤욕을 치렀다. ‘82년생 김지영’ 책 한권을 읽었다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혹 아이린이 페미니스트라 해도 그게 수많은 남성 팬들의 반발을 살 만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고 소비했던 여자 연예인이 향기없는 꽃처럼 박제되길 원했을까.

직업이 걸그룹임에 앞서 이들 역시 사상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견한 건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걸그룹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루나는 페미니즘 지지의사를 밝혔고 AOA 설현은 그의 SNS에 ‘좋아요’로 지지의사를 보냈다. 연초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연예계 여성해방운동은 이제 막 발걸음을 떼었다.

조은별 문화부 차장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