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1200㎞ 땀과 자유… "전국 도는 맛에 자전거 타죠"

이채훈 기자
입력일 2016-02-29 07:00 수정일 2016-02-29 07:00 발행일 2016-02-2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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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비경쟁 장거리 레이스 '란도너스' 마니아 임광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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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란도너스코리아 1200㎞ 코스를 완주한 임광철씨.(사진제공=임광철씨)

전북 전주의 임광철 씨(53)는 ‘란도너스’(프랑스에서 시작된 비경쟁 장거리 레이스 운동)를 4년 전에 접했다.

“란도너스는 보통 3월에서 6월까지 하는데 처음엔 1200km 코스를 내가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시작했죠.”

지난해 봄 그는 하루에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자전거를 탔다. 첫날은 광주에서 경주 안강까지 365km를 달렸다. 안강서 하루 자고 새벽 4시쯤 일어나 아침 해결하고 5시부터 강구로 나와 7번 국도 바닷가를 따라 38선 너머 양양까지 하루만에 찍고 주문진으로 내려왔다. 3일째가 악전고투였다. 오대산 진고개(해발 974m)를 넘어 내륙으로 오는 코스였다.

“속도가 쉽게 줄여지지는 않더라고요. 광주, 양양, 상주에서도 5위 안에 들어갔습니다. 마지막날 광주 운암 MTB(산악용 자전거) 가게(도착점)에 와 보니 젊은 친구가 6시간 먼저 왔더라고요. 저는 81시간만에 들어왔는데. 관계자는 내 나이를 아니까 왜 이렇게 빨리 들어왔냐고 묻습디다.”

란도너스를 봄에만 하는 이유는 오뉴월 해가 가장 길기 때문이다. 3월부터 200·300·400·600km 코스를 차근차근 완주하면 ‘슈퍼 란도너’라는 1200km 코스 참가 자격을 준다. 체력과 능력이 된다는 의미다. 1200 코스는 비와 상관관계가 많다. 비오면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 체력이 떨어진다. 이틀 동안 비가 와서 완주율이 저조했던 2013년도 1200km 완주자는 30여명. 지난해는 날씨가 굉장히 좋고 비가 안와 많이 완주했다. 6월에 실시되기에 1200 코스날 비가 안 오는 것은 복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자전거를 타는 목적이 변하더라고요. 스피드보다는 여행 겸 사람들과 어울려 전국을 돌아다니는 걸로요. 란도너스 코스는 전국일주 정도가 아니라 구석구석을 다 가는 정돕니다. 시내를 통과하게 코스를 짭니다. 체크 포인트가 있어서 그 시간대에 맞춰서 갈 수 있는 식당이면 ‘그 집에 가면 뭐가 맛있으니까 드셔보세요’ 이렇게 알려줘요. 안 가본 시내도 많이 가보게 돼 여행할 맛 나더라고요.”

임 씨는 란도너스가 지켜야 할 원칙과 명분이 있고, 들러야 할 장소와 제한시간이 있어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이 받아들이게 된다고 언급했다. 이것이 한 없이 늘어질 수 있는 여행을 방지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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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도너스는 코스 중간 체크포인트마다 확인 도장 등을 찍어 기록을 인증한다. 사진은 임광철 씨의 란도너스 기록표.(사진제공=임광철씨)

란도너스는 국내에서 2년 전부터 급속히 알려졌다. 임 씨의 회원번호가 1869번인데 지난해 4000번대까지 늘었다. 자료를 보면 란도너스 하는 사람들은 50대·20대는 각각 3%에 불과하다. 30대가 제일 많고 그 다음이 40대다.

“지구력이 제일 좋을 때가 30대입니다. 잘 타는 것과 상관없이 오래 타는 건 40, 50대고요. 지구력이 아니고 세상을 오래 살아서 고통을 참는 능력 같아요. 20대는 고통이 오면 그것을 잘 못 참죠.”

사실 자전거를 오래 타면 엉덩이가 제일 아프다. 50시간 같은 자세로 계속 앉아 있어야 하니까 400km만 타면 엉덩이 두 군데가 새까매질 정도다. 아무리 좋은 안장을 써도 골반 구조상 안장에 닿는 살이 멍들어 있기 마련이다. 1200 코스의 경우 마지막엔 안장에 앉지도 못한다. 바지를 두개씩 입고 패드크림을 바르는데 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다음날 또 다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잠 잘 때 편하게 푹 자는 방법밖에 없다.

“란도너스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장비 가리지 않고요. 자기 힘으로 제한시간 안에만 들어오면 됩니다. 누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취감이 크죠. 1등 했다고 상주는 것 없고 완주했다고 주는 것도 없죠. 메달도 자기 돈 주고 사야 되고 단지 주는 건 완주증 한 장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살아가는 동안 란도너스 아니면 언제 자전거 타고 이런 길을 한 번 가보겠어요?”

그는 실력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운동장에서 다섯 바퀴씩 돌고 맨손체조를 한다. 집에 와서도 40분 정도 운동한 뒤 아침밥을 먹고 자전거로 출근한다. 겨울에도 땀 흘리며 할 수 있는 운동이니 자전거가 좋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하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자전거 운동을 해야 됩니다. 내 몸을 만들어 타야 남들보다 잘 탈 수 있죠.”

그의 자전거 소신은 타는 게 50%, 가지고 노는 게 50%이다. 웬만한 사람보다 수리를 잘 할 자신이 있다고 한다. 자전거를 이래저래 가지고 노는 세계가 좋다. 정년퇴직해서 자전거 가게를 하고 싶은 꿈도 갖고 있다.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과 어울리는 공간과 시간이 마냥 좋기 때문이다. 정년퇴직하고 나서도 돈 버는 일에 매달릴 생각은 없다.

“(뜻이) 맞는 사람만 있으면 미련 없이 자전거 타려고 휴가를 씁니다. 똑같은 시간에 타러 가고 똑같은 시간에 돌아오기 때문에 집에서 모르는 때도 많고요.”

임 씨는 15년 전 자전거를 처음 접했을 때 가졌던 마음이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욕구에 오십이 넘어도 1200km에 도전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란도너스의 성지입니다. 란도너스하는 동안은 축제죠. 동네 사람들 다 나와 박수 쳐주고 사진 찍고. 프랑스는 대회가 열리는 58세에 가야 됩니다. 정년퇴직 기념으로 가고 싶어요. 집사람이 말했지요. 자기가 돈을 벌어 1000만원을 줄 테니 갔다 오라고요. 자전거 타면서 마지막 꿈은 파리 란도너스 완주입니다. 회사 30년 다니고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되겠네요.”

2019년 열리는 파리 란도너스에 가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는 그에게 란도너스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레이스는 말 그대로 시간과의 전쟁이죠. 란도너스는 비경쟁 장거리 레이스니까 자유롭다고 할까요? 거기서 오는 차이는, 쉽게 이야기하면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또 레이스는 남을 이겨야 내가 1등할 수 있는 것이지만 란도너스는 공존하는 거죠. 함께 더불어 즐기는 매력이 있달까요.”

이채훈 기자 freei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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