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베테랑' 류승완 감독 "난 액션 만드는 마술사… 스트레스조차 행복하다"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5-08-12 07:00 수정일 2016-07-17 11:32 발행일 2015-08-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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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은 마흔 살이 넘었지만 외모만 보면 여전히 개구쟁이 소년같다. 하지만 곱상한 얼굴 뒤에는 20~30대 시절의 치열한 기억이 숨어 있다. 류 감독은 '베테랑'에 대해 전문가와 관객들의 칭찬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2% 부족하다"고 말한다.

“액션이야말로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마술이 아닐까요?”

충무로 액션 대가이자 이야기꾼 류승완 감독(42)의 눈은 여전히 소년 같았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막노동으로 제작비를 벌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완성한 그였다.

영화계는 이 어린(?) 감독의 발칙함에 찬사와 질투를 동시에 보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할리우드에서 비디오 점원으로 일하며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교하기도 했다. 과도한 찬사에 휘둘릴 법도 한데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액션과 오락적인 재미, 드라마적인 부분까지 꿰뚫는다. 

최근작 ‘베테랑’은 어떤가. 개봉 5일만에 손익분기점인 관객 280만명을 육박했다. 경쟁 배급사인 쇼박스와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암살’과 ‘미션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이 세운 기록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제작비가 60억원이 채 안된 영화라 한 회차가 아쉬운 상황이었어요. 조금만 지체되도 나가는 돈이…(웃음). 서도철(황정민)과 조태오(유아인)의 오토바이 추격신에서 더 디테일하게 갔으면 완성도가 달라졌을거예요. 명품차와 오토바이의 추격신에 대한 관객들의 카타르시스가 남다르더라고요. 그걸 더 잘 살릴 수 있었을텐데….”

마주 앉은 그는 ‘베테랑’에서 아쉬운 2%를 먼저 꺼냈다. 누가 봐도 모를 ‘옥에 티’ 정도다. 하지만 그는 좀더 공들여 찍었더라면 하는 감독의 욕심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었다.

영화 ‘베테랑’ 촬영이 종료된 건 작년 이맘때. 약 1년의 숙성(?)기간을 거쳐 관객을 만났다. 남다른 완성도로 배급사에서 관객 분할을 위해 개봉시기를 조율하면서 영화 특수인 추석과 설을 피해 올 여름을 ‘디데이’로 잡았다. 감독으로서 조급할 법도 한데 도리어 그는 개봉시기를 기다리며 ‘베를린2’의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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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테랑'의 촬영중인 류승완 감독.(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류 감독은 스스로를 ‘배우 복이 많은 감독’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장편 연출작 ‘피도 눈물도 없이’를 통해 이혜영과 전도연을 내세운 여성 투톱 영화를 만들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서는 안성기, ‘주먹이 운다’에서는 최민식이 함께했다. 배우들의 출연 이유는 모두 한결 같다. “류승완 감독과 작업 해 보고 싶어서”와 “시나리오의 기발함”때문이었다.

자신의 작품들 대부분의 각본까지 책임지고 있는 그의 영화들이 가진 힘은 보는 순간 쾌감을 느끼는 액션과 소시민적 소탈함 그리고 울컥하는 드라마 구조 때문이다. 충청도에서 소박하게 보낸 유년시절과 가진 것 없이 서울에서 보낸 20대가 치열했다면 류 감독의 30대는 작품으로 보여지는 치열함으로 점철된 피를 토하는 나날이었을 터다. 그 안에서 탄생한 영화를 보고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제2의 류승완’을 꿈꾸는 충무로 키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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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베를린’에서 호흡을 맞춘 하정우와 전지현이 ‘암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 어떠냐고 묻자 “그런 경쟁이 싫어서 영화를 하는데 무슨 질문이 그러냐?”고 눙치더니 “관객들이 현명해서 ‘베를린’의 모습은 잊었을 거다. 워낙 잘 하는 배우들 아닌가. 그는 기록 경쟁은 언론이 만들어 낸 ‘부추김’일 뿐 정작 영화인들에게 경쟁은 ‘작품’임을 연신 강조했다.

“그간의 작품들이 제 취향대로 찍었다면 ‘베테랑’은 정의에 대한 가치들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찍은 첫 영화예요. 후세대를 걱정하며 찍은 영화랄까. 사회는 여전히 각박하고 점차 살기 힘들어진다고들 하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적어도 사회에 대한 ‘패배감’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제 아이들이 모두 이 영화를 봤어요. 너무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짜릿했죠.”

류 감독의 가족은 영화 제작사 대표(영화사 외유내강)인 아내와 배우인 류승범까지 모두가 영화를 업으로 삼고 있다. 이미 둘째는 시나리오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 정도다. 남들과 똑같은 삶보다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선택하라는 의미에서 아이 셋을 모두 대안학교에 입학시켜 놀게하다 얼마 전 아이들 스스로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일반 학교로 전학시켰다.

“아이들은 맘대로 되지 않아요.” 그렇게 그는 ‘직업의 대물림’을 원천봉쇄했다.

“가짜를 진짜로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여전히 즐거워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스트레스가 된다는데 저는 그것조차도 순간은 괴롭지만 너무 행복한거예요. 지금 이 순간도 ‘몇만 명을 예상하냐?’는 뻔한 질문이 없어서 너무 즐거워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거든요.”

개구지지만 밉진 않다. 이미 다 끝난 홍보 일정에도 인터뷰에 흔쾌히 나서면서 ‘가급적 새로운 질문을 달라’는 조건을 내건 감독을 어찌 미워하겠는가. 멋지지만 더 완벽해질 류 감독의 전성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글=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