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의약품·백신 '印의 장막' 탄탄대로

권기철 객원기자
입력일 2021-02-22 07:00 수정일 2021-05-28 11:09 발행일 2021-02-2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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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철의 젊은 인도 스토리] (하) 인도 제약산업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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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제약시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가졌다. 사진은 인도에서 생산된 백신이 인도 인접 6개 국가에 긴급히 항공편으로 수송되고 있는 모습. 사진=인디아 익스프레스
인도는 세계 제약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파머징 국가다. 파머징(Pharmerging)이란, 의약품을 뜻하는 ‘Pharma’와 신흥을 뜻하는 ‘Emerging’을 합친 신조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의 BRICs 국가와 태국, 이집트 등의 의약품 산업 신흥시장을 의미한다. 이러한 파머징 국가들은 전세계 의약품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며 많은 제약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맥킨지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의약품 시장규모는 파머징 시장 확대 등에 힘입어 글로벌 제약 시장 규모가 2019년 미화 3424억 2000만 달러, 2020년부터 2027년까지는 13.74 %의 연평균 성장이 예상된다. 2027년에는 약 9008억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세계 의약품 시장은 미국, EU, 일본 등 선진국 의약품 시장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파머징 지역 경제성장에 따른 시장 확대와 고령화, 의료수요 증가 등으로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특히 인도는 파머징 국가의 약 7.2%(2017년 기준)를 차지하는 작은 시장이나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이다.

인도는 세계 인구 2위 국가로서 대규모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으며, 빈곤 및 질병 문제가 심각해 의약품 산업이 고속 성장이 가능한 지역이다. 2020년 기준 인도의 GDP는 세계 6위로,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고급 약품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많은 제약회사들도 이러한 인도 시장의 풍부한 잠재력을 보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헬스케어 분야는 인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다. 2022년 3720억 달러(약 439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의 의약품 산업은 2020년 550억 달러(약 62조원) 규모에 달했으며,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22.4%의 가파른 성장을 보였다. 향후 이 성장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도의 의약품 수출은 2020년 200억 달러(약 23조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코로나등으로 인해 이 숫자는 급격히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전세계 제네릭 의약품의 20%를 공급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생산 국가다. 백신 세계 수요의 62%도 인도에서 공급되고 있다. 미국 제네릭 의약품의 40%, 영국 전체 의약품 시장에 유통되는 의약제품 25%는 인도산이다. 인도는 미국 이외 지역에서 가장 큰 US-FDA 준수 제약 공장(원료 의약품 생산을 포함하여 262개 이상)을 가진 유일한 나라다. 인도에는 WHO-GMP승인을 받은 약 1400개 이상 제약 공장, 유럽 품질 의약품 총국(EDQM)의 승인을 받은 253개의 최신 기술을 갖춘 공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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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SII에서 생산된 백신을 운송하고 있는 장면. 사진=로이터

인도는 6만 개의 제네릭 브랜드의 공급원이며, 500개가 넘는 다양한 원료 의약품(API)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WHO 사전 인증 목록의 57%를 차지하며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규모다. 3000개 이상의 제약 회사가 있으며 1만 500개 이상의 제조 시설과 강력한 제조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인도가 글로벌 제약 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데는 교육이 잘된 고급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AIDS(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 퇴치에 사용되는 항 레트로 바이러스 약물의 80 %이상은 인도 제약 회사에서 공급하고 있다.

한편, 최근 백신 생산으로 주목받고 있는 SII는 생산량에서 세계 최대의 백신 제조사다. 50년 전 설립된 이 회사는 인도에서 접종 되는 거의 모든 백신을 공급뿐만 아니라, 코로나 백신 수출이 본격화되면 전세계에 많이 공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컨설팅 기업 피치 솔루션스사의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국가의 백신 접종은 3개 그룹으로 분류된다. 1그룹은 6월까지 의료 종사자 및 노인 등 우선 대상자의 대부분에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국가, 2그룹은 9월까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국가, 그리고 3그룹은 더 오래 걸리는 국가다. 인도는 제 1그룹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소득이 낮은 국가다. 이 그룹에는 홍콩과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이 포함된다.

현재까지 1000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한 인도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은 백신 생산과 다른 방식의 속도전에 돌입했다. 인도 정부는 1월 16 일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의료 종사자와 50세 이상의 사람부터 접종을 시작하고 8월까지 3억 명을 대상으로 접종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인도 정부는 1월 3일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등 백신의 위탁 생산을 진행하는 SII 이외에도 인도에서 자체 개발한 바라트 바이오테크의 백신을 긴급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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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럼 인스티튜트 오브 인디아 (SII)의 근로자들이 인도 남서부 푸네 소재 백신 생산기지에서 작업 중이다. 사진= ASSOCIATED PRESS
인도 국내에서 개발 한 바라트 바이오테크 개발 백신은 임상 시험 부족으로 인한 유효성과 부작용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억제를 우선시 하는 정부 정책에 따라 긴급하게 승인이 되었다. 현재 위 두 회사는 6000만 회분을 생산했다. 접종 및 물류에 종사하는 11만 4000명을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했고, 의료진 등 3000만 명을 대상으로 접종이 진행중이다.

주목해야 할 사항은 백신 접종에 대해 디지털 플랫폼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 정부는 백신 접종 디지털 플랫폼 ‘Co-Win’을 개발했다. 2017년 전국적으로 실시된 개인 주민등록제도(아드하르)에 의거해 등록된 인구 13억 5000만 명의 등록 데이터를 활용해 우선 접종 대상자 선정과 접종에서의 부정을 방지하고 접종 간격·회수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인도 정부는 접종 증명서를 디지털로 발행하고 있다. 각자 자신의 핸드폰에 설치된 모바일 앱에서 정부가 발행하는 디지털 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클라우드를 통해 발행하는 인증서는 위조가 불가능하다. 첫 회 접종은 잠정 증명서가 발급되고, 두 번째 접종 후에는 완전한 인증서가 발급된다. 레스토랑 등을 이용할 때 제시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앱에는 1차 접종 후 일정 기간(원칙적으로는 3주) 후에 다시 접종 일시를 통지해주는 기능도 내장되어 있다. 백신의 재고 확보 및 분배 등에 대한 통계 등도 제공해 정부의 백신 관리 부담을 크게 줄여줄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디지털 공공 인프라의 선진국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정부 주도의 인도 고유식별청(UIDAI)이 설치되어 인도 국민의 약 90% 이상이 아드하르(Aadhaar, 힌두어로 기반이란 뜻) 발급을 완료했다. 아드하르는 12자리 개인번호와 홍채·지문·얼굴 등 생체 정보까지 담긴 인도의 디지털 신분증 시스템이다. 현재까지 이를 통해 220억건 이상의 개인 인증이 이뤄졌고, 아드하르와 연결된 은행 1만4000 곳, 우체국 1만3000 곳을 통해 연결된 개인 계좌로 정부의 생활 보호비 등을 지급하는 제도(DBT)가 운영되고 있다. 개인간 전자 결제 플랫폼(UPI) 등이 가동되고 있으며 디지털 결제를 비롯한 다양한 활용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심지어 홍채를 통한 결제 시스템도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다. 이러한 디지털 공공 인프라 제도는 ‘인디아 스택(India Stack)’이라 불리며 모로코 및 필리핀 등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들의 관심을 갖는 이유는 호적 제도가 없어 빈곤층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인도가 아드하르를 통해 경제적·사회적 기반을 다지는 것을 생생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백신 접종으로 보여준 인도 아드하르의 위력은 아드하르를 도입하기 원하는 국가로 하여금 다시 한번 도입의 당위성을 인식할 수 있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백신의 국내 접종 뿐만 아니라 세계 보건기구 (WHO) 주도의 코백스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전세계 140여개 국가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와 별개로 방글라데시 정부와 3000만 회,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와 150만 회 외에 미얀마 및 여러 국가들과 백신 공급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인도의 백신 제조 경쟁력은 높은 생산성과 낮은 가격과 안전성 그리고 서구와 중국 및 러시아 사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의 정치적 위상과도 연관성이 높다.

인도 의약품 제조 산업을 들여다보면 이름이 알려진 바이엘, 화이자, 머스크 등을 비롯해 전세계 모든 제약사들은 인도에 다 진출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전 세계 Top 50개 제약회사 중에 미국 17개, 일본 10개, 스위스와 독일이 각 각 4개, 영국 3개, 프랑스 2개, 인도 2개, 이탈리아 2개, 이스라엘-남아공-스페인-덴마크-벨기에 등이 각 1개씩 차지하고 있다. 아쉽게도 한국 제약업계의 글로벌 시장 내에 존재감은 미미하다.

인도 의약품 산업의 규모가 내수 및 수출 모두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우리 기업들도 인도 시장 진출 가능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인도 의약품 산업은 제조기반이 튼튼하기 때문에 현지 업체와 합작투자, 기술협력 등의 방법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대웅제약이 2009년 국내 제약사 가운데 처음으로 인도 하이데라바드 지역에 의약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연구 활동에 착수했고, 뭄바이에 지사를 설립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셀트리온 등 몇몇 제약사들은 인도를 제품 생산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코로나 시대 이후 세상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전세계 의약 산업의 위상을 고려해 본다면, 더 많은 기업들의 관심이 요구된다.

권기철 국제전문 기자 speck00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