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주문 받고, 체온 재고, 대신 쇼핑하고… 삶 속에 스며든 로봇

채현주 기자
입력일 2021-02-08 07:00 수정일 2021-05-13 17:06 발행일 2021-02-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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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주의 닛폰기] 일상생활 파고든 서비스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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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 파롤 카운터 (사진=페퍼 파롤 영상 캡쳐)

“저희 카페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주문과 선결제 후 자리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페퍼)

“땅콩 버터 바나나 캬라멜 와플하고 커피 한잔요.”(손님)

“당신과 어울리는 건강하고 스윗트한 메뉴를 선택하셨네요.”(페퍼)

일본 도쿄 시부야의 ‘페퍼 파롤’ 카페 카운터에서 손님에게 주문을 받고 있는 로봇 ‘페퍼(Pepper)’ 의 모습이다. 페퍼는 손님과 눈동자를 마주치며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어깨까지 들썩거린다. 게다가 손님 기분을 파악한 듯 재치스러운 멘트를 던지면서 겸손하게 대응한다.

페퍼 파롤은 ‘로봇’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100년째 되는 지난 12월,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일본 번화가에 오픈 한 미래형 로봇 카페이다. 이 카페는 ‘로봇과 직원이 함께 일하는 곳’이라는 콘셉트로 오픈과 동시에 주목을 받고 있다. 페퍼 파롤에선 로봇이 손님 응대와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청소 등 세 종류로 나눠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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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 파롤에서 일하는 로봇들(사진=페퍼 파롤)
우선 카페에 들어서면 카운터에 10여대의 로봇 페퍼가 손님을 맞이한다. 카운터에서 페퍼는 손님의 인원수를 파악하고 주문 안내와 계산을 도와준다. 손님이 메뉴를 고민하고 있으면 추천도 해주는데, 표정을 읽고 “고민이 많아 보이네요”,“정열적인 당신과 어울리는 메뉴예요” 등의 멘트를 써가며 재치있게 주문을 받을 줄도 안다.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는 로봇이기 때문이다. 페퍼는 신장 120㎝의 서비스 로봇으로, 내장된 카메라로 손님의 표정, 나이, 성별, 감정을 읽고 대응하며 상황에 맞는 대사를 선택한다. 손님 입장에선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셈이다.

페퍼와 합석이 가능한 테이블도 마련돼 있다. 테이블에 앉으면 페퍼가 이름을 말하며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손님의 나이 등을 물으며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또 자신이 갖고 있는 운세, 숨은 글자 찾기 등의 게임을 자랑하는 등 재미를 더해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층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엔터테이먼트는 60cm 가량의 작은 인형 로봇 ‘나오(Nao)’ 담당이다. 15분마다 팔의 각도로 시간을 알려주고 1시간 간격으로 다양한 나라의 춤을 선보인다. 특히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는 특별한 춤도 선사한다. 이곳 카페는 바닥 청소를 로봇에게 맡기고 있다. AI 로봇 ‘위즈(Whiz)’가 카페 문을 닫은 심야시간에 자율 주행을 하며 바닥 청소를 실시하는 식이다. 소프트뱅크 그룹 측은 “향후 로봇의 종류를 더 늘려나갈 예정”이라면서 “페파 파롤은 사람과 로봇이 함께 공존하는 미래를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공간이다”라고 소개했다.

◇ 코로나19가 단번에 성장시킨 로봇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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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뮤(사진=히타치제작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상 생활에서의 로봇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비대면 수요가 늘면서 돌봄은 물론 주방 서빙이나 안내, 청소, 방역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용 로봇 시장 성장이 가속화 되고 있다. 특히 초고령화 사회, 일손부족이 심각한 일본에선 서비스용 로봇의 활약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일본에선 서비스 로봇을 시범적으로 도입시킨 곳이 많다.

코트라 일본 무역관에 따르면 의료현장에서 체온 측정, 코로나19 의심 증상에 대한 문진 등을 수행할 수 있는 의료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본에선 히타치제작소의 ‘에뮤(EMIEW)’,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의 ‘페퍼’ 등 내방객과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로봇을 속속 도입했다.

도쿄의 아리아케 병원은 현관에 ‘에뮤’를 설치하고 열 감지 카메라를 사용해 체온을 체크한 뒤, 2주 이내에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었는지 등을 체크하는 등 의료진을 보조하도록 했다. 에뮤는 신장 90㎝의 자율주행형 커뮤니케이션 로봇이다.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며, 다국어 음성 대화 기능 및 배터리 자동충전이 가능하다. 오피스 빌딩이나 병원 및 복지시설을 중심으로 낮에는 안내업무, 밤에는 경비업무 역할을 하며 인력 부족 기업에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감염 확대로 의료 종사자의 부담이 가중됨에 따라 의료현장에서 의료진의 부담을 경감하는 서비스 로봇 역할을 해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히타치제작소는 에뮤를 통해 얻은 데이터와 개선 과제를 바탕으로 의료 현장에서의 활용사례를 늘려 가겠다는 방침이다.

소프트뱅크 로보틱스의 페퍼 역시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도쿄 하치오지에 위치한 경증 환자들을 위한 요양시설에 페퍼를 시범적으로 도입해 입주 접객업무 및 입주자의 식사 제공과 다양한 업무 보조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 페퍼의 공로를 인정해 ‘코로나 대책 서포터즈’로 위촉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주문 결제 기능이 있어 레스토랑 등 최근 다수의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8년 2월 문을 연 시부야의 로봇만 활용하는 ‘이상한 카페’는 시범 사업에 그치지 않고 아직까지 영업 중이다. 이 카페에는 로봇을 관리하는 점원이 한명 뿐인데, 2년 반이 지난 지금 흑자를 달성하며 운영 중이다. 커피 제조부터 주문 결제까지 모두 로봇이 하고 있다. 로봇만을 활용해 장기간 운영해 성공한 일본 최초 비즈니스 모델인 것이다. HIS는 로봇이 점원으로 있는 ‘이상한 호텔’도 운영하고 있다.

‘이상한 시리즈’ 를 개발한 HIS의 회장 사와다 히데오는 닛케이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이제 로봇의 사회적 구현의 새로운 단계에 있다”며 “코로나19가 이상한 시리즈를 단번에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 인간 움직임을 재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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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뉴미 (사진=아바타인)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 되면서 일본서 인간의 움직임을 실시간 재현하는 ‘아바타 로봇’의 개발과 도입이 빨라지고 있다.

ANA가 설립한 벤처 회사 아바타인은 원격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아바타 로봇 ‘뉴미(newme)’를 개발했다. 컴퓨터의 키보드 조작을 통해 로봇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아바타인은 후타고타카가와에 위치한 츠타야 서점을 통해 자택에서 책을 쇼핑하는 시범 운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책이 위치한 곳에 가서 표지부터 내용까지 실제로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과 비슷한 환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재현했다.

아바타 로봇만 쇼핑할 수 있는 매장도 한 달 동안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점원과 아바타 로봇이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쇼핑 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인터넷쇼핑과 실제 매장에서의 쇼핑 융합인 셈이다. 한 달 동안 시범 운영되면서 고객과 점원의 커뮤니케이션이 깊어져 구매율도 평소대비 상승하는 등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아바타 로봇은 주로 경비업무, 안내, 화장실 청소 등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업무 분야에서 주로 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서비스 로봇 비중, 산업용 보다 커져

일본의 국립연구개발법인 신에너지 산업기술 종합 개발기구인 NEDO에 따르면 일본의 로봇 시장 규모는 2015년 약 1조 6000억엔(10조 6000억원)에서 2020년 약 2조 9000억엔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 일본의 제조업 DX(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투자 증가로 2035년 로봇시장 규모는 약 9조 7000억엔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대권 코트라 일본 도쿄 무역관은 “기존에는 산업용 로봇이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최근 서비스 로봇의 비중이 늘면서 오는 2025년에는 산업용 로봇보다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산업용 로봇은 공장에서의 작업 공정을 자동화 하는 로봇이며, 비산업용 로봇은 사람이 하는 작업을 도와주는 일명 서비스 로봇을 말한다. 현재 가장 급격한 성장세가 돋보이는 분야는 자율주행 자동차, 무인운반로봇 등으로 올해 물류 및 운송 분야에서 활약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이어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돌봄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이동 보조 로봇과 용변 처리 로봇, 시설 청소 로봇의 매출이 급성장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엇보다 일 할 사람이 부족해 폐업이 늘고 있는 일본서는 로봇이 일손을 채워줄 고마운 역할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의 한 로봇 개발자는 “일본에선 로봇과 협력해 일하는 것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며 “현재는 큰 도시에서 주로 볼 수 있지만 앞으론 지방 중소기업에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도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도입으로 대형마트, 편의점, 요식업 등에서 무인 혹은 로봇 점포 운영을 시도하는 분위기다. 코트라 일본 무역관은 “이상한 카페 등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 서비스 로봇 모델을 분석해 벤치마킹하면 국내에서도 시장가치를 창출 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채현주 기자 1835@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