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그라운드] 불화 딛고 무대 선 배우들의 십시일반…연극 ‘무인도에서 생긴 일’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9-08-28 22:00 수정일 2019-08-28 22:00 발행일 2019-08-28 99면
인쇄아이콘
프랑스 앙드레 루생의 희곡 ‘라 쁘띠뜨 위뜨’(작은 오두막)를 무대에 올린 '무인도에서 생긴 일'
이전 제작사와의 불화를 딛고 배우 김민수, 이종오 번역·작·연출과 김현균, 주원성, 박형준, 구옥분, 문하연, 채종국, 박병준 등 배우들 의기투합
무인도, 비독점 다자연애 폴리아모리 등 극단적인 설정으로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에 대한 코미디
무인도에서 생긴 일
연극 ‘무인도에서 생긴 일’(사진제공=프로맥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이 십시일반으로 출연료 없이, 스태프들과 극장까지도 러닝개런티로 공연을 올리게 됐습니다. 저희 나름대로는 큰 의미죠.”

28일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무인도에서 생긴 일’(8월 29~9월 29일 예그린씨어터)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이자 새로운 제작사 프로맥엔터테인먼트 김민수 대표는 작품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6월 ‘라 쁘띠뜨 위뜨’라는 제목으로 초연, 올해 5월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을 맞는 ‘무인도에서 생긴 일’은 제작자와의 불화로 공연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에 초연부터 출연했던 배우 김민수가 제작사를 설립해 이종오 번역

연출과 김현균, 주원성, 박형준, 구옥분, 문하연, 채종국, 박병준 등의 배우들이 의기투합해 무대에 올렸다.

김민수 대표는 “공연 제작사가 도산해 자살하거나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 연극도 비일비재한 일”이라며 “시즌3까지를 공연했던 이전 제작사가 너무 힘든 상황에서 배우들과 소통이 너무 안되다 보니 의혹이 증폭됐다”고 의기투합 과정을 설명했다.

무인도에서 생긴 일
연극 ‘무인도에서 생긴 일’(사진제공=프로맥엔터테인먼트)

‘무인도에서 생긴 일’은 스페인의 카슬레스 솔데빌라(Cares Soldevila)의 1921년작 ‘그대로 문명적인’(Civilitzats Tanmateix)을 프랑스의 극작가 앙드레 루생(Andre Rossin)이 ‘라 쁘띠뜨 위뜨’(작은 오두막)라는 제목으로 변주한 작품이다.

크루즈 여행 중 난파돼 무인도에 정착하게 된 필립(김민수

김현균,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과 수잔(구옥분 문하연) 부부, 필립의 친구이자 수잔의 숨겨진 연인 앙리(박형준 주원성)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원주민 왕자(박병준 채종국)가 꾸려가는 왁자지껄 코미디다.

‘일부일처제’라는 법적 굴레,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코믹하게 비트는 작품으로 무인도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한 여자와 세 남자가 구조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칫 불륜, 삼각

사각 관계, 폴리아모리(Polyamory, 독점하지 않는 다자간의 사랑) 등이 부도덕한 남녀의 이야기처럼 비춰질지 모를 가능성과 프랑스 특유의 냉소적인 스토리텔링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았다.  

번역을 비롯해 각색까지 책임진 이종윤 연출은 “대본을 받자마자 3일만에 번역을 끝냈을 정도로 재밌었다”며 “한국화, 현대화보다는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성(性)적이기만 한 ‘폴리아모리’가 아니라 정신적인 것들에 집중했어요. 여성이 더 우월하다기 보다 여성도 사랑이나 사회적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고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성에게도 충분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죠.”

이어 “사실 마지막까지 고민한 건 수잔이라는 여자가 헤퍼 보이진 않을까 였다. 원래 지닌 의미와 달리 거부감이 생기거나 관객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배우들과 토론을 정말 많이 했다”며 “(이전 시즌들에 비해) 좋아졌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김민수 대표는 “1947년작, 72년 전의 작품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동시대에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 표현”이라고 말을 보탰다. ‘무인도에서 구조된다’는 플롯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제도 혹은 법 테두리에 갇혀 서로 혹은 나 자신의 진짜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폴리아모리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진정으로 서로를,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무인도에서 구조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사는 중년 부부는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임감과 사명감만 가지고 가족처럼 사는 부부들에게 진정 사랑하는 부분을 찾아내시기를, 여성의 모습이길 원하는 아내의 심경을 느끼고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그 깨달음이) 가족들에게 환원돼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