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이것은 경제서적이 아니다 '누가 내돈을 훔쳤을까?'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17-09-01 07:00 수정일 2017-10-24 22:44 발행일 2017-09-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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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기자들이 쓴 '경제의 진실'
천만 청취자가 응답한 생활밀착형 팟 캐스트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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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전직 기자들이 사고(?)를 쳤다. 경제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지루하게 늘어놓는 ‘경제 논리’를 영화대사와 SNS, 유행어에 맞춰 깔끔하게 정리한 책 ‘누가 내돈을 훔쳤을까?’가 출간됐다. 그들의 출발은 간단했다. 

재벌과 언론의 상생, 기자들이 ‘까는 기사’를 쓰고 받아오는 광고성 기사와 ‘빨아주는 기사’에 질린 독자들과 자녀들 앞에서 당당한 기자가 되기 위한 일종의 고백서와 같았다. 같은 일간지 선후배였던 이국명·박성훈 작가의 ‘누가 내 돈을 훔쳤을까?’는 벌어도 벌어도 노예가 되는 돈에 관한 진실을 조근조근 알려준다.

누가내돈
이국명, 박성훈 저 ㅣ 빈티지하우스 ㅣ1만5000원

◇1000만 영화만 있냐? 1000만 청취자도 있다! 시작은 팟 캐스트

시작은 팟캐스트였다. 생활밀착형 경제 팟캐스트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은 2년 6개월 동안 누적 스트리밍 1000만회를 넘긴 화제의 프로그램이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진짜 궁금한 진실에 집중한 덕에 큰 인기를 얻었다. 귀로 들었던 청취자들에게 눈으로 팟 캐스트를 경험하도록 하자는 출판사의 제안에 의기투합했고 ‘누가 내 돈을 훔쳤을까?’가 출간됐다. 

이 책의 구분은 그래서 뻔하지 않다. 각각 1, 2부로 나눠 큰도둑과 작은도둑이라 이름붙인 회사와 기업간의 기상천외한 ‘돈 뺏기 신공’은 사회인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라 충격적이다.

현재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베이비부머 다음 세대, 1970년대생들이다. 근면하면 부자가 되고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다고 보고 자란 첫 세대다. 지루하고 어려울 거란 걱정은 일단 대화식으로 진행되는 각 챕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세금해방일’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1월 1일부터 시작해 3월 26일까지 버는 돈은 모두 나라가 가져간다고 봐야한다. 흔히 잘사는 나라로 구분되는 독일이나 벨기에 같은 곳은 각각 7월 8일에서 8월 8일, 그만큼 세금이 많이 나가는 걸로 보이지만 세금누진율이 발달해 있다. 이를 보며 고소득자가 세금을 덜 내고 저소득자가 세금을 더 낸 대한민국 현실을 개탄하게 된다.

또 ‘사축’이라 불리는 회사원들의 애환이야말로 프리젠티즘으로 이어진다는 경고는 실제 주변에서 보고 겪는 일이기에 더욱 와닿는다. 법적인 근무시간이 당연시 될수록 질병이나 스트레스로 정상적인 회사업무를 보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은 프리젠티즘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가진 한국의 기업들이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정의로운 경제는 의심에서 시작된다

저자들은 국민들이 너무나 쉽게 경제라는 시스템에 속아왔다고 강조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기업·정부·언론이 무지한 국민들을 너무 쉽게 속여 왔다는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온 청년실업률에 숨겨진 꼼수가 그 예다. 취업하는 것 만큼 믿기 힘든 게 실업률 통계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복무라는 특수성을 들어 청년층을 15세에서 29세(통상적으로 24세까지)로 늘려 잡아 실업률을 낮췄다. 공시족, 휴학생, 전업주부, 알바 등은 모두 실업률 통계에서 빠져 국제적으로 이용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실은 ‘헬조선’이지만 사실은 ‘살 만한 나라’로 통용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프랑스 백수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없는 걸 들고 일어나는데 우리나라 백수들은 다 지탓인 줄 안다. 자기가 못나서 그런다”는 영화 ‘깡패 같은 애인’의 명대사를 들어 말하는 우리의 현실은 그래서 더 서글프다. 저자들은 당당히 국가에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유행이란 이름의 계획적 노후에 휘둘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특히 기업이 제품 차별화라는 명목으로 깨지지 않는 스마트폰 액정과 수많은 옵션으로 제품구매를 권할 때 가성비 좋은 제품에 눈을 돌리는 패스트컨슈머가 되어 기업의 계산에 역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꼭 소비재에 국한된 조언만 있는 게 아니다. 항공료, 워터파크, 스키장 혹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가격차별이란 달콤함으로 ‘호갱’(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손님)을 모집하는 브랜드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단호한 소비자 행동에 나서라고 격려한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꾸준하게 대체 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대체재를 적극 사용함으로써 그들에게 ‘긴장감’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내 돈을 훔쳤을까?’의 백미는 우리가 무심코 누르는 휴대폰 안의 뉴스도 사실은 광고이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인다는 데 대한 경고다. 어쩌면 알면서도 방관하거나 당했던 현실을 다시 한번 각성시키면서 행동하라고, 저자들은 지루하지 않은 문체로 독자들을 일깨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소비’되고 ‘호갱’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현실은 분명 어제와 달라진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