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밥상'으로 건강세상 만드는 텃밭농부·된장선생님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14-10-21 07:42 수정일 2014-10-22 18:00 발행일 2014-10-2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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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능 하늘농장에서 작물을 솎고 함께 식사를 하는 ‘집밥협동조합’ 모임에는 웃음이 넘쳐난다.

“먹거리 관련 시민단체나 센터 등은 있지만 협동조합으로는 유일해요. 안전하고 따뜻하고 배려가 있는 밥상을 추구하는 강사들이 모인 협동조합이죠.”

이희정(59) 이사장이 설명하듯 ‘집밥협동조합’(이하 집밥)은 서대문구의 먹거리와 텃밭 강사들이 모여 결성한 협동조합이다.

함께 밥만 먹는 모임이 아니다. 보다 안전한 밥상과 친환경적인 먹거리 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강사들의 공동체다. 그들은 아이들이 생태적 환경에서 성장하기를 꿈꾸는 부모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합원 대부분이 주민인 서대문구에 집중해 활동하는 강사 협동조합이다.

그들이 서오능 하늘농장에 모였다. 김장을 위해 심은 배추와 무 등 작물을 솎고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는 웃음과 맛있는 음식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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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와 무, 고추를 솎고 있는 김종남(50) 감사와 최종자(55) 교육팀장
◇국내 유일의 먹거리·텃밭 강사들의 협동조합시민운동활동가 출신의 먹거리 강사 이희정 이사장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 인큐베이팅 전문가 김종남(50, 이하 가나다 순) 감사, 강원도 홍천에서 4000평 규모의 농사를 짓는 텃밭강사 박순웅(53) 목사, 아동요리 강사 출신의 조혜원(45) 이사, ‘장의 여왕’ 최종자(55) 교육팀장이 정식 조합원이다. 이외에 서대문구청 소속의 전은자(53) 친환경 급식지원센터장을 비롯해 조합원은 아니지만 강사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2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서대문구 내 유치원,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된장·간장 등 한국 전통 장 담그기, 텃밭 조성·운영과 수확작물을 이용한 요리법, 채소·콩·쌀 수업, 친환경 먹거리 문화 등을 강의한다. 2013년 5월 준비를 시작해 올해 3월 정식 출범한 집밥은 6개월 동안 200번 이상의 강의를 진행했다.

“외부 강사가 아닌 지역에서 잘 할 수 있는 분들을 발굴해 모셨어요. 서대문구에 먹거리, 텃밭 관련 우수 강사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 분들이 왜 서대문구를 두고 외부로 강의를 다니실까 안타까웠죠.”

김종남 감사는 “집밥 조합원은 강사이자 정을 나누는 서대문구 이웃”이라며 “외부강사가 강의를 하면 내용만 남는데 지역강사가 강의하면 사람과 관계가 남는다”고 조합 출범 동기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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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생태적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부모이기도 한 ‘집밥협동조합’ 조혜원(45) 이사와 둘째 아들 동우

◇건강한 밥상, 관계회복을 위한 서대문구 전담 강사들의 고군분투“A/S가 가능하다”며 웃는 최종자 팀장은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서 장 담그기 수업을 하고 있는 ‘된장선생님’이다. 더불어 장을 담근 곳에서 장이 이상하다고 SOS를 치면 바로 달려가 해결하는 ‘장닥터’기도 하다.

“뿌듯해요. 왜 장을 직접 담가 먹어야하는지를 아이들이 알아들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잘 기억하고 재밌어 해요. 내년에는 1년 동안 먹을 장을 담그고 싶다는 유치원도 점점 늘고 있어요.”

서대문구 내 25개 유치원 중 12개원에서 그녀의 장이 숙성되고 있다. 최근 그녀는 유치원 및 학교의 김장 담그기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조혜원 이사는 아동요리 강사였다. 수입밀가루로 머핀, 쿠키, 타르트, 튀김 등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고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서울시 친환경 식생활 강사과정을 수료하고 집밥에 합류하면서 친환경 먹거리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직접 채소를 키우고 그 채소를 만지고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친환경 먹거리와 가까워져요. 색소와 설탕 범벅 음료수 대신 오미자 화채 등을 만들어 먹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해요.”

엄마의 마음으로 시작된 지역 먹거리·텃밭 강사들의 강의는 이웃 간 신뢰를 회복하고 허약해진 마을공동체를 건강하게 한다고 믿는다.

8월의 옥수수를 시작으로 고춧가루, 쌀과 쌀 라면, 감자 등 집밥에서 준비한 산지와의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호응을 얻고 있다.

텃밭에서 만난 주민들과 함께 직접 농작물을 수확해 피클 담그기, 전부치기 등을 하는 텃밭 요리교실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시작한 먹거리, 텃밭 강의는 아파트, 동네주민 등 서대문구 전역으로 무한 확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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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유치원을 찾은 집밥협동조합 이희정(59) 이사장이 유치원생들에게 안전한 먹거리교육을 하고 있다.
◇공동의 지혜와 노력으로 안전한 서대문구를 꿈꾸다“혼자 준비할 때는 그냥 90분짜리 강의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함께 지혜와 생각을 모아 강의를 준비하면서 보다 새롭고 풍성한 수업을 할 수 있게 됐죠.”

조 이사의 말처럼 함께 하면서 보다 안전하고 즐거운 먹거리 문화를 강의할 수 있게 됐다. 그들과 시작을 함께 했지만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자진탈퇴를 해야 했던 전은자 센터장은 조합원들의 관계를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저마다 강사로써 능력이 출중해요. 하지만 주강사, 보조강사 등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참여하고 함께 해요. 그 과정에서 강사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들만의 콘텐츠가 생겨나죠.”

장 담그기, 김장 담그기, 텃밭 요리교실 등 현재 ‘집밥’ 강좌가 이 같은 방식으로 탄생했고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강좌다. 통째로 먹는 ‘메크로바이오틱’, 자투리 식재료 활용 및 요리법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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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에서 4000평 규모의 농사를 짓는 박순웅(53) 목사는 ‘집밥협동조합’의 식자재와 텃밭 강의를 맡고 있다.(집밥협동조합 제공)

이희정 이사장은 “쓰레기 중 30%가 음식물 쓰레기”라며 “4인 가족이 한끼 식사를 하는 데 드는 전력이 TV를 16시간 연속 시청할 때와 맞먹는다”고 음식물 쓰레기의 심각성을 전한다. 덧붙여 “수입농산물, 온실에서 재배한 농산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 등은 로컬 푸드, 제철밥상, 친환경 조리법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건강한 밥상이 환경문제와 더불어 우리 농민 살리기, 안전한 먹거리 문화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종남 감사는 “돈은 회사에서 혹은 외부에서만 버는 게 아니다. 일할 노동력과 기술, 오랜 세월 쌓은 어르신들의 노하우 등 동네 골목골목에 돈 벌기 요소가 있다”며 마을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집밥으로 매일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집밥은 서대문구 골목에서 재밌게 일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강사활동을 비롯해 친환경 농작물 직거래 장터, 텃밭 요리교실 등 수익사업 정교화 작업에 돌입했다.

서대문구 장 축제, 직장인들을 위한 친환경 제철 도시락을 파는 ‘그때그때 도시락 카페’ 등을 구상 중인 집밥은 ‘음식으로 세상 바꾸기’ 그리고 ‘서대문구 자체가 건강해지는 그 날’을 꿈꾼다.

글·사진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공동체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