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장수상품] ③ 삼양라면/ '제 2의 쌀'에서 '친구라면'이 되기까지…

조은애 기자
입력일 2014-07-28 14:57 수정일 2014-08-26 17:44 발행일 2014-07-2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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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삼양식품은 복고마케팅 전략으로 ‘삼양라면 더 클래식’을 출시했다.(삼양식품 제공)

‘인간의 주식(主食)은 밥과 빵과 라면이다.’

삼양에서 운영하는 대관령 양떼목장에 가면 볼 수 있는 문구다. 피식하고 웃음이 터지겠지만 목장 아래에 있는 휴게소에 들어서는 순간, 삼양라면 한 사발 들이마시는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적어도 한국인에게 라면은 주식이다. 한국에서 한 해 생산되는 라면은 약 35억개. 이를 인구 5000만명으로 나누면 국민 1인당 한해 평균 64개의 라면을 먹는 셈이다. 라면의 발상지인 일본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는 데는 삼양라면이 그 중심에 있다.

삼양라면은 1963년 9월 15일 삼양식품공업주식회사에서 태어났다. 첫 출시됐을 때 가격은 10원, 커피가 35원이고 꿀꿀이 죽이 5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대다. 당시 한국은 6.25 전쟁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가난에 빠져있었다. 미군이 먹다 남은 음식을 끓인 이른바 ‘꿀꿀이 죽’이라도 먹겠다고 줄을 선 모습을 본 당시 삼양식품 故 전중윤 회장은 식량난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삼양라면이다.

한 봉지에 100g짜리 닭고기 육수로 나온 삼양라면은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라면의 ‘면’을 섬유로 이해한 사람도 있었다. 맛을 떠나 라면에 대한 인지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삼양이 실시한 마케팅 전략은 무료시식이었다. 삼양식품 임직원과 직원 가족 모두 동원된 대대적인 캠페인이었다. 이와같은 전략은 먹혀 들었고 라면 끓이는 냄새만 나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70년대가 되어서야 라면은 국민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안정적인 성장도 잠시, 1989년 삼양라면은 큰 위기를 맞는다. 삼양이 면을 튀길 때 공업용 쇠기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사건은 루머로 판명났지만 삼양라면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생산까지 중단되면서 회사 존폐 위기로 이어졌다. 이에 삼양의 피나는 노력으로 비록 재기에는 성공했지만 라면계의 1위 자리는 결국 농심에 내어주게 된다.

하지만 삼양라면의 위기는 또 찾아왔다. 2008년 삼양과 농심 라면 모두 이물질이 발견됐지만 당시 한 언론사에서 삼양라면만 문제를 삼았다. 이에 반발한 누리꾼들 사이에서 ‘삼양라면 구매운동’이 확산되기도 됐다. 다만 이 사건으로 삼양라면의 매출은 반대로 늘어났고, 결국 위기가 기회로 바뀐 셈이다.

‘라면하면 삼양’이 떠오르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삼양라면은 꾸준히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09년에는 복고 마케팅을 펼치며 ‘삼양라면 더 클래식’을 출시했고, 최근에는 청양고추에 버금가는 매운 맛으로 승부한 ‘불닭볶음면’을 내놓으며 젊은층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인생도, 역사도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기 마련이다. 60, 70년대 국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삼양의 재도약을 기대해본다.

조은애기자 sincerely.ch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