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톡] 당국과 노조에 끼인 은행원들…"토끼몰이 당하는 기분"

장애리 기자
입력일 2016-06-19 16:54 수정일 2016-06-19 18:36 발행일 2016-06-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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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민간은행도 성과주의" vs 노조 "9월 금융·공공 40만 총파업까지 감행"
업무도 힘든데 성과급제 입김까지 안게된 은행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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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KPI(핵심성과지표)’에 김일성 목 가져오란 항목을 넣으면, 은행원들이 바로 북한으로 달려갈 걸요.”

은행원들은 KPI에 목숨을 겁니다. 영업점의 성과를 측정하는 실적표이자 인사고과로 직결되는 성적표이기 때문이죠.

은행들은 수익성, 건전성, 정책지표 등으로 구성된 이 지표를 토대로 1등부터 꼴등까지 영업점을 줄 세웁니다.

예를 들어 1000개의 지점을 20개 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에서 1등부터 50등까지 지점의 성과를 비교평가하죠. KPI는 사원에서 지점장까지 영업점 직원에 대한 인사고과로 연결됩니다. 때문에 은행원 사이에선 ‘KPI라면 북한도 갔다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돕니다.

금융노조는 지난 18일 ‘공공·금융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금융노조원 5만여명이 모였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번 모임은 당국의 강제적인 성과연봉제 도입 정책과 국책은행 자본확충 펀드 방안의 중단을 요구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일부 은행의 지점에서는 “이번 노조 결의대회에 KPI가 반영될 수 있으니 나가보라”고 독려 아닌 독려를 했다고 합니다. 은행별로 다르긴 하지만, 통상 1000점 만점의 KPI에 노조는 많게는 40점까지 줄 수 있는데 여기에 이번 결의대회 참석률을 반영하겠다는 얘기가 돌았기 때문이죠. 노조 입장에선 될 수 있으면 많은 조합원이 참여해 당국을 상대로 강력한 반대 의지를 보여줘야 했을 겁니다.

문제는 모든 은행원들의 생각이 같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한 은행 직원은 “나가서 힘을 보태야지 않느냐”는 물음에 “일도 안하고 월급만 많이 받아가는 일부 동료들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성과급제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새벽별을 보며 출근해 저녁별 아래 퇴근하는 은행원들이 주말을 포기하고 여의도까지 나가는 것도 쉽지는 않겠죠.

KPI점수 1, 2점에 영업점 등수와 연봉, 승진이 걸려있는 구조라 노조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직원들은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미 성과연봉제를 적용받고 있어 이번 이슈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지점장, 부지점장들도 이번 결의대회 앞에선 약해졌다”며 “노조가 KPI를 ‘좌지우지’할 순 없지만, 감점을 받으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참여) 강제성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금융당국은 연내 성과연봉제 도입을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입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을 시작으로 민간 은행에도 성과주의를 확산시키겠다고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노조는 올 9월 금융·공공 40만 총파업까지 감행한다며 전면투쟁을 예고했습니다. 은행원들은 “영업, 실적압박에 토끼몰이하듯 하는 성과제 입김까지 더해져 힘이 빠진다”며 “조용히 일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합니다.

당국과 경영진 그리고 노조.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찬반 논란 속에서 정작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장애리 기자 1601chang@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