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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과거와 현재를 잇다… 고고학은 시간 여행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강인욱의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입력 2024-08-31 07:00 | 신문게재 2024-08-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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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월대 복원 및 주변부 정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연합)

고고학(考古學)에 관한 입문서다. 고고학자인 저자가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매력과 숨은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어 썼다. 저자는 고고학의 본질이 ‘시간 여행’이라고 말한다. 유물 속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을 밝히고, 그들이 어떻게 기후와 환경에 적응해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찾아보는 과정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고고학은 언제나 그 끝을 모르는 여행과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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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강인욱|김영사


◇ 고고학,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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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천마총 내부.(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고고학을 ‘유물을 발굴해 잃어버린 과거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유물의 화려함이나 값어치 보다는, 과거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고고학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역사학일 수도, 인류학 혹은 민족학이 될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중세 암흑기가 끝나기 즈음에,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품을 수집 품평하던 모임 ‘딜레탕티즘(Dilettantism)’이 근대 고고학의 시초였다.

고고학의 시작은 ‘지표 조사’다. 유적이 있을 법한 지역을 다니며 땅 위에서 유적의 징후를 찾는 것이다. 주로 찾는 것은 토기 조각이다. 유물이나 유적 흔적이 없다고 해도 일단 시굴 해서 땅 속에 유물이 없음을 완벽히 확인해야 한다. 땅을 파고 살았던 곳은 색깔이나 토질에서 유기물질이 잘 자라, 주변보다 검고 습기가 풍부해 경험적으로 찾아낸다.

저자는 “땅 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 유물을 가장 잘 보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간 곧 파괴되기에 빨리 발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북극권의 ‘영구동결대’가 그렇다. 얼음이 얼기 전에 지구물리탐사 등을 통해 그 속에서 태고의 흔적을 찾아내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가속화하는 지구온난화가 문제다. 시간과의 전쟁에서 고고학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많지 않다.

저자는 “고고학의 진정한 역할은 발굴 직후부터”라고 말한다. 최대한 손상 없이 보존해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보존과학적 지식이 필수다. 현장에서 긴급하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굴된 것이 천마총의 ‘천마도’다. 덕분에 지금은 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개도국에 발굴 및 보존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유물들은 실측 그림으로 증거를 남긴다. 최근에는 3D 스캔으로 간편하게 처리한다. 이후 보고서를 만들고, 유물을 국가에 귀속시켜 수장고에 넣는다. 모든 발굴 유물은 자동으로 국가에 귀속되어 국가가 지정한 국공립 박물관에서 관리된다. 요즘은 일제 때 철도 연결차 건설되었던 폐 터널을 활용한 ‘예담고’라는 수장고가 항온항습 효과 덕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 깨진 유물로 맞추는 그림자 찾기
 

유적 2. 폼페이 유적 발굴 현장
폼페이 유적 발굴 현장 모습.

 

원폭 개발 ‘맨하튼 프로젝트’의 일원이던 물리학자 윌러드 리비는 1960년대에 목탄과 사람 뼈로 과거 연대를 측정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덕분에 ‘반감기’를 활용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 나오면서 “4대 문명에서 세계의 모든 문명이 확산되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변방으로 치부됐던 지역들이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1970년대 후반에 연천 전곡리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출토된 주먹토기는 ‘동아시아는 발달된 석기를 만들 수 없다’던 서구의 주장을 뒤엎은 쾌거였다. 약 6000년 전에 등장한 청동기는 철기와 조화를 이루며 삼국시대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숭실대가 소장한 국보 ‘다뉴세문경’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청동물이지만 표면에 0.2㎜의 미세 선이 1만 3000개나 있을 정도로 정밀해 ‘장인의 명품’으로 평가받는다.

 

사람 뼈에는 나이와 성별, 키, 질병 및 영양상태, 사인, 시신 처리 방법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해골을 숭배했던 아즈텍 문명에서는 해골에 화려한 보석과 황금을 붙여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서양 중세 땐 교회마다 성인(聖人)의 유골을 훔치느라 소동을 빚기도 했다. 베네치아도 828년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골을 훔쳐 온 덕에 국제적 도시로 흥성했다는 얘기가 있다.

인골(人骨) 연구는 최근 DNA 기술과 결합되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무덤은 뼈 뿐만 아니라 시신이 놓인 방향과 방법까지 모두 주요한 자료의 보물창고다. 어느 시대든 전통과 풍습에 따라 무덤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무덤을 썼다는 것은 죽음 이후 내세를 믿었음을 의미한다. 시신을 옆으로 눕힌 경우가 많은데, 이는 죽음이 다시 태어남을 의미해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



◇ 경제와 역설을 넘어 ‘발굴의 역설’

 

유적 4 김포장릉
장릉에서 바라본 김포지역 아파트 단지.(연합)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조사했을 때, 엄청난 국보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옆에는 더 많은 고분이 있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포기했다. ‘가장 좋은 고고학자는 발굴을 하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일본이 식민지 한반도 곳곳을 파헤쳐 금관총, 금령총 등 수많은 신라의 고분을 마구 도굴한 것도, 결국 일본 왕의 묘를 파헤치지 못했던 반대급부였다.

최근에는 발굴을 아예 않는 조사기법도 다수 개발되고 있다. 소형 로봇을 무덤 안으로 넣어 확인하거나, 수 ㎞의 거대 고분을 드론이나 구글 맵으로 살피기도 한다. ‘탐침’으로 땅 속에 전류를 흘려 파악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건설업계와 고고학자간 갈등은 첨예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접점을 찾는 것이 솔로몬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조선 인조의 양친인 원종과 인헌왕후를 모신 김포의 장릉은 정작 아파트가 건설될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문화재청이 별도 관리하지 않았고, 관할 지자체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문화재 관리 주체가 전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사단이 난 것이다. 2022년 김해 구산동 고인돌 유적 발굴 때처럼, 고고학자의 참여 없이 지자체가 사업을 주도하면서 유적을 훼손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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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앞바다 보물선 인양 모습.(사진제공=신안군)

물 속도 땅 속 다음으로 유물 조사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2022년까지 고작 29건의 수중문화재가 발굴 조사되어 한 해 1800건이 넘는 육상 문화재와 대조를 이룬다. 1976년 신안 앞바다 도자기가 그 시작이었다. 워낙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들어 수중문화재 발굴은 강대국의 상징이 되었다. 스웨덴이 1962년에 ‘바사호’를 인양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부었으나 지금은 이 나라 대표 관광상품이다.

 

 

◇ 가짜와 진짜, 고고학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을 고대 외계인이 남겼다는 주장이 있다. UFO에 고도로 집착했던 1960~1980년대에 외계인설이 극심했다. 저자는 “신기하게도 모든 사람의 손에 고성능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폰이 들리면서 UFO 얘기가 사라졌다”며 일축했다. 아라라트산에서 발견되었다는 노아의 방주나 마야 문명의 팔렝케 유적에서 발견된 석관을 외계인의 흔적으로 보는데, 고고학적으로는 정식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

미스터리와 저주, 음모론도 유적과 불가분의 관계다. 1993년 시베리아 알타이 초원의 여성 샤먼(사제)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 ‘알타이의 공주’가 대표적이다. MRI 조사를 통해 고고학은 그녀가 일반인이며 골수염을 앓았고 유방암 4기였음을 밝혀냈다. 그런데도 후손들은 조상인 얼음공주의 안식을 방해했으니 큰 화가 닥칠 것이라며 재매장을 촉구했다. 지금도 미라만 나오면 수많은 음모론과 저주가 등장한다.

저자는 “상징적인 연대와 실제 역사를 구분 못하는 것은 고고학의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반 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그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고 말한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기원전 2333년으로 간주해 민족의 기원을 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번 잘못 형성된 과거에 대한 인식을 교정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

저자는 또 “가짜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교한 복제는 유물의 느낌을 모두에게 전하는 동시에 유물을 제대로 보전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복제품이 진품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고구려 벽화들이 그렇다. 무작정 돌문을 열었다가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화가들이 그린 복제 모사화가 대신한다. 저자는 “복제품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진품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 고고학, 미래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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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한 유적 발굴현장 모습.(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이 고고학에 새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유물의 기록, 분류, 실측, 보관 같은 1차적인 현장작업의 상당수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 실측 과정을 통해 일일이 유물과 유적을 그리는 대신 3D 스캔이 해결책을 준다. 보존이 어려운 벽화나 오래된 유물은 3D프린터로 발굴 당시의 가장 정확한 정보를 기준으로 복제품을 쉽게 만들어낼 수도 있다.

비슷한 유물을 같이 묶어서 배열하는 형식학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발굴 보고서 작성도 인공지능이 맡게 될 전망이다. 발굴 때 정밀 촬영 및 분석을 통해 그 유물의 시대와 용도를 추정해낼 수도 있을 전망이다. 기존 발굴 자료를 유추해 전체 유적의 정보를 추정해, 미 발굴 유적의 현황도 예측할 수 있다. 고고학이 인공지능을 비롯한 수많은 새 기술에 ‘열린 자세’여야 하는 이유다.

미래 고고학자에게 또 다른 도전은 21세기 디지털 자산의 보존이다. 빠르게 쌓여가는 디지털 데이터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가 큰 현안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 중인 백남준의 1988년 작품 <다다익선>은 이제 브라운관 수명이 다했다, 새 모니터로 바꿔야 할 지, 폐기해야 할 지 기로에 서 있다. 저자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디지털 시대에 쌓여가는 유물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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