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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낮은 처우에 ‘탈이공계’ 가속화…'한국형 스타이펜드' 대안될까

지난 5년 KAIST 등 4대학기술원 재학생 중도탈락자 1177명
석사 80만원·박사 110만원…편의점 최저임금 수준도 못 미쳐
“우리 사회 문하생이라는 미명하에 노동력 과하게 쓰는 경향”

입력 2024-08-18 13:40 | 신문게재 2024-08-1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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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류광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본사 DB)

 

정부가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학업과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인건비를 지원하는 ‘한국형 스타이펜드(연구생활장려금)’ 도입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될 경우 내년부터 국가 연구개발(R&D)에 참여하는 학생연구자 석사는 월 80만원, 박사는 110만원의 인건비가 보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대학에서 ‘탈이공계’ 현상이 뚜렷하다.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신(新)산업을 연구하는 일부 대학 연구실을 제외하면 낮은 처우와 박사후연구원(포닥) 이후 일자리를 잡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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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엑소더스’…이공계 상아탑 기피하는 최상위권 학생들

18일 대학알리미 공시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9~202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재학생의 중도탈락자 수는 총 1177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연도별로 보면 이탈자 수는 매년 더 가팔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KAIST의 경우 지난 2019년 이탈자는 105명에서 지난해 125명으로 증가했다. 이어 같은 기간 GIST는 14명에서 48명, DGIST는 19명에서 29명, 유니스트는 57명에서 93명으로 늘었다.

더욱이 최근 정부의 의대 증원 이슈와 겹치며, 과학계에서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공계 엑소더스’가 가속화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는 2026년도 의대 2000명 증원과 관련해 재검토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지난 16일 국회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가 개최한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대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에서 “2026년도 의대 증원 규모는 이미 결정됐다”고 말하며 과학계와 정부의 온도 차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탈이공계 현상의 ‘본질’은 의대 증원이 아닌 낮은 처우와 일자리에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 과기원의 한 교수는 “학생들의 자퇴 사유는 개인 사정과 결부됐지만, 대부분 의대 또는 최근 수요가 높아진 수의대 진학을 위해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배터리, AI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 이공계 출신에 대한 낮은 처우와 연봉, 불안정한 미래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섞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스타이펜드 도입 시사…단, 역차별·낮은 처우·일자리 등은 ‘과제’

최근 과학기술정보신부는 내년도 이공계 대학원생에 매달 80~110만원을 지급하는 ‘한국형 스타이펜드’를 운용하기 위해 연구비 관리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5일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류광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한국형 스타이펜드 제도를 도입해 우수 인재를 이공계로 유입시키고 학업·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정책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형 스타이펜드’의 골자는 국가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학생연구자 석사는 월 80만원, 박사는 11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와함께 연구책임자 중심으로 운영되던 학생연구자 인건비 관리를 기관 단위로 확대해 학생연구자들의 처우 개선를 꾀한다. 그간 인건비는 주로 연구자가 속한 연구 책임자 또는 담당 교수가 관리해왔던 터라 임금, 근로시간 등에 관한 학생연구자 처우 개선에 관한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왔다.

이를 통해 정부는 학생인건비 통합관리제(풀링제)를 운영하는 대학에 한해 연구생활장학금을 지원해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매년 말 연구자가 적립한 인건비 일부를 기관에 의무적으로 적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물가상승률과 내년도 최저임금 1만원이 돌파한 것을 고려하면 정부가 구상 중인 스타이펜드의 한 달 생계비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실제 노동부에 따르면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은 올해 9860원보다 1.7% 인상된 1만30원이다. 이를 월 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209만 6270원으로, 정부안으로 유력해 보이는 석사 80만원·박사 110만원은 편의점·식당 등의 아르바이트 임금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친다.

탈이공계 현상은 낮은 연봉과 더불어 이공계 박사배출 대비 박사급 일자리가 급감한 것도 주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25개 정부출연기관의 초임 평균연봉은 지난해 기준 약 4000~5000만원 사이로 추산된다. 최근 중견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이 4000~4500만원대인 것을 고려하면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더욱이 해당 연봉 수준이 석사에서 박사까지 평균 6~7년, 이후 포닥을 거친 뒤 받을 연봉이라는 점에서 최상위권 인재들이 진학해야 할 이유는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이공계 박사배출 대비 박사급 일자리 증가 규모는 지난 1991~1995년 2.6배 수준에서 2016~2020년 0.54배로 급감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같은 기간 박사 배출은 6716명에서 3만1020명으로 늘었지만, 일자리는 1만7443명에서 1만6804명으로 되레 줄었다.



스타트업화한 대학연구실…“문하생 미명하 노동력 과하게 써”

지난 16일 유상임 신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우수 이공계 대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을 확대해야 한다”며 “이공계 대학원생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생연구자의 처우는 녹록지않은 상황이다. KAIST 대학원 총학생회가 시행한 ‘2023년 연구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KAIST 대학원생은 일평균 10시간 근무하고 월 166만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전 의원이 공개한 ‘2021년대학원 인건비 실태조사’를 보면 학생연구원은 평균 석사 63만원, 박사 99만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돼 과기원을 제외한 일반대학의 임금은 더 낮을 것으로 추산된다.

UNIST 석박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A씨는 지난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풀링제로 한 달에 80만원의 수입이 있다고 해도 월세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며 “교수 요청에 따라 주 7일을 일하는 것은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어 “교수가 연구비를 따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해당 사업과 관련된 연구에 할애해야 하는 구조라 개인적인 연구시간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는 스타트업화한 대학연구실의 구조적 한계와 학생연구자라는 모호한 지위에서 오는 모순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소위 교수가 연구비를 따오고 해당 사업을 완료해야만 연구실이 운영되고, 학생연구자의 사실상 근로시간은 학업의 연장 선상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임창근 노무법인 도원 노무사는 “근로자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것”이라며 “교수를 사업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지도교수 밑에 들어가서 연구를 수행하거나 같이 일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문하생이라는 미명하에 노동력을 과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관계자도 “예컨대 특고·플랫폼 노동자처럼 법을 우회해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있지만, 이렇게 하면 형평성 문제와 더불어 법이 누더기가 될 수 있다”며 “해결책은 근로자 수준에 준하는 대우를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정다운 기자 danjung63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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