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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뮤지컬 ‘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린아 “사랑이야기 속 은유된 환경문제 그리고 지금 우리”

[人더컬처]

입력 2024-08-16 18:00 | 신문게재 2024-08-1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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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데스타운 린아
뮤지컬 ‘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역의 린아(사진=이철준 기자)

 

“신들과 인간들이 공존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이고 지금 누구나 겪고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의 오르페우스처럼 스스로를, 상대를 못 믿고…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요. 그게 적나라하게 너무 잘 담겨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아차’ 하게 하는 작품이죠.”

뮤지컬 ‘하데스타운’(10월 6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페르세포네(김선영·린아,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린아는 작품에 대해 “사랑이야기지만 지독한 현실”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극작가 아나이스 미첼(Anais Mitchell)의 동명 앨범을 극화한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성스루(Sung-through, 대사 없이 노래로만 구성된) 뮤지컬이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초연된 데 이은 두 번째 시즌이다.

“오르페우스(박강현·조형균·멜로망스 김민석)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에우리디케(김수하·김환희)를 하데스(김우형·양준모·지현준)가 지하세계로 데려오는 것도 페르세포네이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서예요. 손에 잡히지 않은 아내를 어떻게든 잡기 위한 노력이랄까요. ‘How Long’이라는 노래 중간에 하데스가 ‘저 여자애는 나한테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하거든요. 신들의 사랑이지만 되게 인간적이죠.”


◇신화 속 사랑, 그에 빗댄 지독한 현실 “당신이라고 다를 것 같아?”

HADES TOWN _ 공연 사진_린아
뮤지컬 ‘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역의 린아(사진제공=에스앤코)
“마치 클럽처럼 밴드가 무대에 함께 하고 배우들 옷이나 색감, 음악진행, 돌아가는 회전무대의 활용 등 기존에 없던 형식과 스타일들, 구성 등이 세련됐어요. 그리고 무대와 이야기, 움직임, 연출 등의 합이 너무 잘맞는 작품이죠. 그냥 사랑 얘기 같지만 굉장히 은유적이어서 알고 보면 더 재밌을만한 요소들이 너무 많아요.”

은유와 대구, 상징 등으로 꾸린, 한편의 시와도 같은 ‘하데스타운’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Orphee et Eurydice), 죽은 자들의 왕이자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봄과 씨앗의 여신이자 저승의 여왕인 페르세포네 부부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사랑이야기에 극한 현실을 빗댄 작품이다.

끝없는 개발과 산업화로 지하세계를 구축한 하데스,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자유를 헌납하고 지옥행을 선택한 사람들, 착취와 억압에도 숨죽인 채 살아가는 현실, 쳇바퀴 도는 듯 고단한 일상 그리고 일년의 반은 지상에서, 나머지 반을 지하에 머무는 페르세포네를 자꾸만 빨리 데리러 오는 하데스로 인해 균형이 깨져 버린 계절들….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지하세계로 몸을 던지는 이들에 대해 “당신이라고 다를 것 같아”라는 헤르메스(강홍석·최재림·최정원)의 반문처럼 그리고 린아의 표현처럼 “그 안에 내포된 이야기들은 사랑과 희망 뿐 아니라 환경문제, 시대에 대한 풍자와 비판 등까지 다방면으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사랑이 인간세계의 계절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람들이 고통받아요. 지상을 너무 사랑하고 이 세계가 제대로 돌아가게끔 해야 하는 신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아무리 호소해도 이들의 사랑에 금이 갈수록 환경적인 문제들이 발생하죠. ‘바다가 땅을 덮쳐, 이건 정말 정상 아냐’ 등의 가사들이 환경에 대한 경고 메시지 같아요. 단박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가 지금 깨우쳐야할 환경에 대해 계속 메시지를 던지죠.”

하데스타운 린아
뮤지컬 ‘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역의 린아(사진=이철준 기자)

 

그의 귀띔처럼 무차별적으로 공장을 세우고 네온사인을 밝히며 비틀린 방식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하데스, 그런 하데스에 ‘이 추운 계절에 여기는 왜 이렇게 뜨거워’ ‘일년 중 가장 어두운 때에 여기는 왜 이렇게 눈부셔’ 등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하는 페르세포네의 관계 속에는 환경, 노동, 권력 등 사회문제들이 내포돼 있다.

“오르페우스의 ‘라라라’ 송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옛날에 나눴던 사랑 노래고 에우리디케가 어느 순간 어깨를 아파하며 잡는 건 방울뱀에 물려 죽게 된 신화 속 설정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 방울뱀이 동전 소리를 내는 지옥행 열차 티켓으로 표현되며 신화와 연결시키는 것도 너무 흥미롭죠.”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믿으면서! 사랑

하데스타운 린아
뮤지컬 ‘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역의 린아(사진=이철준 기자)

“처음 대본 리딩을 했을 때부터 페르세포네는 너무 이해가 갔어요. 저 이제 결혼 10년차거든요. 결혼한 부부로서 겪어야 할 모든 것들을 한번씩 겪고 풍파도 맞아보다가 이제는 잔잔하면서 고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죠. 그 정도는 다르지만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상태도 그 기간 중 겪었던 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어 “세월이 흐르고 관계가 지속될수록 싫지만 포기하거나 받아들이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그 사랑마저 퇴색해 버린 지경에 이른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지만 두 사람 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곤 “그래서 하데스는 1년 내내 붙잡고 있을 수도 있지만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일정기간 보내주고 페르세포네는 지상에서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고 말을 보탰다.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해 설레고 달달하죠. 그들에게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사랑과 복선이 있어요. 음악도 그렇고 ‘원래 알고 있던 사람 같은 느낌이었어요’라는 오르페우스의 말도 그렇고.”

그리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두 사람도 그런 사랑을 했다”며 “저 역시 그런 사랑을 했고 10년간의 결혼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부분들과 연결되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그 예로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노래하는 ‘All I‘ve Ever Known’을 예로 들었다.

“저는 페르세포네가 처음 등장해 봄을 불러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막 사랑에 빠진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를 보는 장면에서 다운된 이면을 좀 표현하고 있어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우울함이요. 저도 남편도 어디 한 구석에는 불같은 성질이 있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그렇게 싸우고 밖에 나가 사람들과 즐겁게 보내지만 한편에는 너무 우울하고 극심한 슬픔이 있거든요. 뭘 해도 즐겁지가 않고 ‘우울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 아픔이 있죠.”

이를 린아는 “굉장히 참고 오히려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참아내는 페르세포네도, 비틀려 감정을 표현하는 하데스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방식이 잘못돼 먼길을 돌아오다 보니 손 쓸 엄두조차 나지 않는 관계가 돼 버린 상태”라고 표현했다.  

 

하데스타운 린아
뮤지컬 ‘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역의 린아(사진=이철준 기자)

 

“원래 있던 지상에 내려왔을 때 페르세포네는 술에 엄청 취하고 편안하지만 하데스타운에는 내 자리가 없어요. 이 남자, 하데스 때문에 있는 거죠. 처음엔 초록색 옷을 입고 등장을 하다가 하데스타운으로 가면 검은색 옷을 입잖아요. 제 색을 잃어버리는 거죠.”

더불어 “자신을 잃은 채 방관자처럼, 목소리를 잃고 흘러가는 대로 지켜만 보던 페르세포네가 절망하는 지점은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찾아 온 오르페우스에게 내뱉는 ‘이곳에 있는 건 모두 내 소유’라는 외침”이라고 짚었다.

“그런 하데스에 페르세포네는 ‘나 역시 소유물’이라는 생각에 힘을 잃어버리고 목소리를 못내죠. 그래서 하데스타운에서 저는 하늘을 자주 봐요. 지상을 그리워해서기도 하지만 내가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절망과 무기력함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극의 주제를 담은 ‘If it‘s True’와 마음을 울리는 ‘Epic III’ 중 하데스와의 왈츠

하데스타운 린아
뮤지컬 ‘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역의 린아(사진=이철준 기자)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사람의 관계에는 늘 새로운 어려움들이 있죠. 그래서 저도 로맨틱한 드라마를 보면서 사랑하던 때를 떠올려요. 요즘은 보지 못했던 ‘눈물의 여왕’을 비롯해 ‘사랑의 불시착’ ‘푸른 바다의 전설’ 등을 보고 있어요. 극 중 이제 막 시작되는 주인공들의 풋풋하고 설레는 사랑을 보면서 내 옆의 남자를 사랑의 눈으로 보게 돼요. 그렇게 다시 사랑할 힘을 얻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역시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를 보면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페르세포네와 하데스가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를 보면서 작지만 변화한다”며 “두 사람의 사랑에 변화하는 하데스를 보면서 그를 변하게 하고 싶은 용기를 가지게 되는 페르세포네에 중점을 두고 표현 중”이라고 덧붙였다.

“오르페우스가 얻어맞고 떠나려고 일어나면서 하데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일꾼들을 선동하는 ‘If it’s Ture’라는 장면이 있어요. ‘나는 변할 거라고 믿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강해’라면서 선동하는 장면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와 닿아요. 바로 다음 넘버인 ‘How Long’으로 이어지면서 페르세포네도 변해야지 하면서 목소리를 내죠.”

그리곤 “오르페우스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일꾼들도 절규하는 그 장면에서 몇번이고 소름이 끼친다”며 “그렇게 일꾼들도 한명씩 변하면서 모자를 벗고 나가는데 앙상블 배우들도 눈물을 흘리고 저도 울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펑펑 울어요. 연습실에서도 몇번을 그랬어요. 다들 진짜 푹 빠져서 하는구나. 이 작품을 너무 사랑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또 울게 돼요.”

 

[하데스타운] 공연사진자료01(자료제공_에스앤코)
뮤지컬 ‘하데스타운] 공연장면(사진제공=에스앤코)

더불어 가장 가슴을 울리는 장면으로는 ‘Epic III’ 중 하데스와 추는 왈츠를 꼽았다. 한쪽은 집착하고 또 다른 쪽은 포기해 버리며 비틀린 두 사람이 오르페우스의 노래로, 그 노래로 피운 꽃으로 왈츠를 추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이 사람이 다시 돌아왔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보이네’라는 놀라움으로 왈츠를 추거든요. 정말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죠.”


◇작은 변화가 쌓여 세상을 바꾼다, ‘라라라’ 노래하듯!

하데스타운 린아
뮤지컬 ‘하데스타운’ 페르세포네 역의 린아(사진=이철준 기자)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보니 노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표현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그렇다고 생각해요. 오르페우스처럼 ‘난 내 갈 길을 가겠어’라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과 정의를 올곧게 지켜가는 사람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불러오잖아요. 헤르메스 대사에 있듯 노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오르페우스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너무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고 변화시키죠.”

그리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해 칭송받을 때도 있지만 그 보다 더 많이 실패를 한다. 그럼에도 생각이 다른 사람이 실마리가 돼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것 같다”며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역시 “점점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극 막바지 페르세포네가 ‘벌써 봄’이라며 하데스에게 ‘기다려줘’라고 인사하면서 헤어지거든요. 그 때의 애틋함, 하데스와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 그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지상으로 가는 거죠. 조금씩 조금씩, 아주 작은 변화에 주목하고 거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우리 극이 말하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믿어요.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 변화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도 좋은 사이로, 그래서 더 이상 지상의 사람들한테 피해를 안 끼치는 그런 사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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