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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저출산 대책에 빠진 '비혼 출산' 지원…출산율 제고 대책될 수 있나

‘결혼 안 해도 출산 OK’ 청년층 비혼 출산 인식 ‘개선’
프랑스 비혼 출산 비중 60%…한국 2% 수준
서구와 다른 한국 문화 ‘수용성’ 낮다 지적…다양한 가족형태 인정 필요
“정부, 혼인 관계 여부로 복지 혜택 주는 사례 발굴해야”

입력 2024-07-14 13:38 | 신문게재 2024-07-1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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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달 19일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 신설, 특별회계·예산 사전심의제 도입 검토, 저출생의 원인인 일·가정양립과 양육, 주거 등 3대 핵심분야를 총력 지원한다는 내용이 주요 정책 방향이다. 또 사회인식 변화를 위한 범사회적 역량도 결집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이번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서는 ‘비혼 출산’ 제도화·지원 내용이 빠졌다. 비혼 출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주로 법적 결혼(혼인신고)은 하지 않으면서 이성 커플간(비혼 동거) 혹은 여성 혼자(미혼모, 자발적 비혼 출산) 출산·양육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비혼 출산은 기존 가족 간(시댁·처가) 결합·법적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출산·양육을 하고 싶은 이들을 중심으로 제도화 요구가 있어 왔다.



정부, 저출산 대책에 비혼 출산 빠져…우선 순위 밀리고 ‘사회적 수용성 낮다’ 판단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도 올해 초 심각한 저출산 문제 대응의 방안 중 하나로 비혼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피력하며 사회적 수용성 제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서는 물론 지난 2020년 발표한 법정 계획인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에서도 비혼 출산에 대한 제도화·지원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우선 순위가 낮고 사회적 수용성이 아직 높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그럼에도 비혼 출산 제도화·지원 논의는 심각한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기존 결혼 제도 편입은 꺼려지지만 출산은 희망하는 이들에게도 출산·양육과 관련한 지원을 법적 부부와 같이 동등하게 지원해 출산율을 좀 더 높이자는 취지이다. 이 같은 비혼 출산 ‘제도화’ 요구는 특히 청년층의 인식 변화가 큰 영향을 줬다.

통계청이 지난해 8월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비혼 출산에 동의하는 청년(19~34세)은 2022년 기준 39.6%로 10년전(29.8%)보다 10%포인트 가량 높아졌고 전체(34.7%)보다 높은 수준이다. 비혼 동거에 동의하는 청년은 80.9%로 10년전(61.8%)보다 크게 늘었다.



청년 비혼 출산 동의 39.6% 10년 전 대비 10%포인트 상승

여기에 프랑스와 노르웨이, 스웨덴 등 주로 유럽 국가의 높은 비혼 출산율도 한국의 비혼 출산 제도화에 대한 필요성을 높이는 근거로 쓰인다. 2022년 5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프랑스의 비혼 출산 비율(2018년 기준)은 60.4%에 이르고 노르웨이는 56.4%, 스웨덴은 54.5%으로 나타났다.  

 

15_OECD주요국혼외자출산율_333

 

반면 한국은 2.2%로 OECD 평균(40.7%)에 한참 못 미쳤고 프랑스의 약 30분이 1 수준이다. 한국과 결혼·출산 문화가 비슷한 일본도 2.3%에 그쳤다. 한국은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이 ‘개선’ 되는 것과 다르게 실제 비혼 출산 비율은 2006년 1.8%에서 2018년 2.2%로 제자리 걸음했다. 반면 프랑스는 2006년 50.5%에서 2018년 60.4%로 높아졌고 스페인의 경우 28.4%에서 47.3%로 상승했다.

청년층의 비혼 출산 인식 개선과 달리 한국 비혼 출산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는 여전히 보수적인 사회 문화와 제도 미비가 꼽힌다. 현재 복지 측면에서 ‘사실혼’ 관계나 ‘미혼모’의 경우라도 출산·양육에 대한 지원 차별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가 아닌 영유아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택 공급, 돌봄, 출산지원 등에서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의 비혼 동거 특성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동거로 인해 경험한 불편으로(2020년 비혼 동거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동거 가족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경험함 적이 있다’(50.0%),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한 적이 있다’(49.2%), ‘주택청약, 주거비 대출 등 주거 지원 제도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50.5%) 등이 꼽혔다.



동거인 부정적 시선·주거비 대출 등 이용 어려움 호소…정자 기증 임신 정부 지원 안 돼

동거 관계에 대한 지원 정책으로는 ‘동거 관계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해 동일한 부모 지위 인정’(61.6%), ‘공적 가족복지서비스 수혜 시 동등한 인정’(51.9%), ‘수술동의서 등과 같이 의료적 결정 시 동거인을 법적인 배우자와 동일하게 인정하도록 관련 법 제도 개선’(65.4%) 등을 제시했다.

지난해 6월 강민정·장혜영 의원 등이 주최한 ‘비혼출산지원법을 통해 본 비혼여성의 임신 및 출산 그리고 가족구성권’ 토론회에서 발제한 이민희 연구활동가는 “비혼 상태에서 정자 기증으로 임신과 출산하는 것은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렵다. 시험관 시술 등은 난임 부부를 대상으로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민희 활동가는 그러면서 “결혼에 상관없이 출산을 원하는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란 목소리는 시작됐다”며 “한부모가족이 느꼈던 정책적 소외감이 해소될 수 있어야 한다. 양육비 이행 절차에 있어 어려움이 많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한시적 양육비 지급을 확대하고 나아가 대지급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프랑스의 높은 비혼 출산율은 비혼 출산 제도화·지원의 ‘모범사례’로 거론된다. 프랑스의 비혼 출산 비율이 높은 원인으로 1999년 11월 시행한 연대의무협약(PACS·팍스)이 꼽힌다.

변수정 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팍스는 법적 혼인을 하지 않은 동거(동성 포함) 관계를 보호하는 제도로 출산·양육에 대한 지원 차별이 없는 것은 물론 세금 등의 혜택도 동등하게 지원받는다. 2022년 프랑스 전체 혼인 건수(24만4000건) 중 팍스(19만2000건)는 79%를 차지한다.



프랑스 팍스 비중 약 80%…“관계 보호 측면 젊은 커플 선호”

변수정 연구위원은 “팍스 제도 또한 준혼인이나 소혼인 등으로 그 법적 성격이 규정되는데 그럼에도 당사자 일방 의사만으로 해소가 가능한 점, 친생추정이 적용되지 않는 점, 상속권의 불인정 등과 같은 혼인과 구분되는 몇 가지 큰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변수정 연구위원은 팍스 경험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결혼이 부담스러운 시대인데 그렇다고 전혀 결혼을 하지 않는 것보다 부담을 덜어주지만 관계를 보호해주는 측면에서 젊은 커플들이 더 선호하는 제도로 생각된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혼 출산 제도화는 서구와 너무 다른 한국의 사회 문화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 저출산 대응 방안이 되기에는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변수정 연구위원은 “출산 장려를 위한 비혼 출산 지원 정책에 대한 방향이 적절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며 “동거가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수용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비혼 출산을 지원한다면서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 순서상 맞지 않고 사회적 분위기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출산율 제고보다는 다양한 가족형태를 보장·지원한다는 측면에서 “비혼 동거든, 결혼이든 개인이 선택한 삶에 대해 차별이 없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률혼·혈연 중심의 가족 유형 외에 비혼 동거·비친족 가구 등 가족다양성을 확장하는 일은 필요하다면서도 비혼 출산 지원을 배제할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서로 구속되는 부분도 있어 혼인에 이르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들도 많은 시대 변화를 감안할 때 비혼으로서 출산했을 때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나쁜 기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부에서는 혼인 관계 여부를 중심으로 복지 혜택을 주는 사례가 뭐가 있는지 발굴해서 법률혼 관계와 상관없이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는 혜택을 주는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원배 기자 lwb2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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