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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결과 아닌 과정 중심의 교육… '학교'에 답이 있죠"

[맘 with 베이비] 이준설 안동 풍산고 교장

입력 2024-07-09 07:00 | 신문게재 2024-07-0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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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설 풍산고 교장.(사진제공=풍산고등학교)

  

경북 안동시 풍산읍에는 병산교육재단이 운영하는 풍산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농촌지역 학교들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풍산고에는 전국 우수학생들이 속속 모여들어 화제다. 2003년 자율학교 지정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교육 시설과 시스템을 정비한 덕분이다.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과 철저한 진학 지도, 전교생 기숙생활을 기반으로 한 밀착형 생활 관리로 이제 풍산고는 손꼽히는 명문학교, 작지만 강한 학교로 정평이 나 있다. 이준설 풍산고 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간단한 본인 소개부터 부탁 드립니다.

“풍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풍산고에서 35년간 재직 중인 풍산중고등학교 교장 이준설입니다.”


- 한때 폐교 위기에 몰렸으나 지금은 전국 우수인재들이 모이는 명문 학교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나요.

“풍산고는 1968년 3월 1일 풍산상업고등학교로 개교한 이래로 지역 사학의 역할을 잘 수행해 왔지만, 2000년에 접어들면서 학생 모집이 어려워졌습니다. 모교에서 근무하던 저는 ‘전국에서 학생이 찾아오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 전국 명문고를 매주 찾아 다녔는데, 마침 교육부가 자립형 사립고와 자율학교를 공모했어요. 저는 자율학교가 교과 운영의 자율권, 교사 선발의 자율권, 전국 단위 모집권 뿐만 아니라 저렴한 학비를 바탕으로 충분히 눈 높이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2년 여에 걸쳐 ‘2002 학교 혁신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이를 류진 이사장(현 풍산회장)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에 2002년 6월 22일에 전국단위모집 자율학교로 지정됐습니다.”


- 변화의 과정이 멀고도 험난했을 것 같습니다.

“신입생 모집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첫 해 3개 학급 90명 모집에 2개 학급 60명으로 시작했어요. 국·영·수·사·과 평균석차 백분율 상위 30% 이내 학생이 지원할 수 있었기에 나름 희망적인 결과였습니다. 기숙사가 없어 예절실을 리모델링했고, 여학생 전용 기숙사 완공이 늦어져 인근 미분양 아파트 23실을 통째로 빌리기도 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무한 신뢰를 보내 주었어요. 이들이 ‘풍산인’의 자부심을 느끼고 소중한 존재로 대우받고 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3년의 기숙 생활로 자립심과 준법정신, 배려심, 봉사정신이 몸에 배어 지적 역량에 리더의 품성도 갖추게 됐습니다. 이제 풍산고는 학생과 교사, 재단, 교육시설 등 모든 면에서 벤치마킹 대상 학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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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풍산고 전경.(사진제공=풍산고등학교)

 

- 자율학교 풍산고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반계 고등학교가 가기 어려운 길을 잘 달려가고 있는 모범학교라고 생각합니다. 학년 당 100명도 안되는 학생 수지만 부러움을 받는 이유는 사교육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비 수능과목이 수업시간에 자리 잡을 수 있고, 책과 자료를 읽고 토론하는 학생주도 수업이 진행되는 인문계 학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내신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라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학교에 답이 있다’는 풍산고만의 교육과정, 오랫동안 누적된 성공적인 입시 결과가 신뢰를 주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정보·수리·과학 교과특성화 학교로 지정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학고나 자사고와는 달리 일반계인 풍산고는 수학·과학·정보 교과군의 교육과정 편성 운영에 제약이 따릅니다. 이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고자 정보·수리·과학 융합 특성화 학교로 지정받아 4년째 운영 중입니다. 13명 미만의 소수 학생이 과목을 신청해도, 교육과정 이수단위 내에서 희망 교과목 수강 신청이 어려워도 수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선생님만으로 교과 지도가 어려우면 대학 강사를 초빙해 수업의 질을 높였습니다. 재단의 재정적 지원이 없는 학교에서는 이런 만족도 높은 특성화 교육과정 운영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매주 금요일 독서토론 수업 등 다양한 비 교과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압니다.

“독서토론, 과학탐구 실전, 진로맞춤 창의 연구, 토론기반 융합 프로그램 등 양질의 비 교과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능 결과만을 위한다면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생성되는 청소년 시기에 창의성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이 참교육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좀 더디고 실패하기도 하지만 학생들 스스로가 답을 찾고 만들어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다양한 비 교과 활동은 진로 및 전공 적합성과 연결되고 중요한 입시결과로 실제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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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어떤 부문에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지요.

“비슷한 또래가 각자 주어진 목표 달성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상생함으로써 수험생들이 갖는 불안감을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큽니다. 대학입학이라는 같은 목표, 비슷한 고민을 함께 해결하려는 동질적 집단 속에서는 혼자서 감내하기 어려운 해답과 시너지 효과를 얻기도 합니다. 학교는 국내외 최고수준의 명사초청 특강을 열어주고, 진로나 예술·체육 동아리 활성화를 위해 시간과 장소 제공은 물론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합니다. 맛있는 식단을 제공하고, 학교 내 최신 편의점을 설치하는 등 학생복지를 위한 노력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 탄탄한 공교육 체제 속에서 매년 걸출한 입시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어떤 교육 시스템이 이를 가능케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풍산에서는 단 한 명의 학생도 사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의 효율성이 매우 높습니다. 수업 대부분이 토론식이기에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참여도가 매우 높고, 결손학습률이 매우 낮습니다. 이기기 위한 절대적 결과물로 내신 성적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매년 최고의 대학 학과에 합격하고 있습니다. 결과 지향적 수업 학교가 아니라, 과정중심의 학교이기에 수시 대학 입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사교육’이 아닌 ‘학교’에 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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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이준설 교장과 풍산고 학생들.(사진제공=풍산고등학교)

 

- 재단에서도 많은 지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병산교육재단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충효사상을 이어가고자 1947년에 풍산중학교, 1968년 3월 1일에 풍산고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 ㈜풍산이 모 기업이며 재단의 넉넉한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립학교가 재단 전입금이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우리 학교는 250% 정도의 재단 전입금을 교육과정 운영비나 장학금 지급, 교육환경개선 등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풍산이 명문고로 발전할 수 있었던 최대 원동력입니다. 계속 지원을 약속하고 있어, 풍산은 전국 최고 명문고로의 도약을 위해 계속 도전할 것입니다.”


- 학생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풍산에 지원하길 희망하십니까.

“풍산은 자기 주도적 학습 전형 같은 별도 면접을 않고, 중학 내신성적 만으로 선발합니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을 만들어가고 싶은 학생, 누군가를 이겨서 성공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협력으로 더 큰 성공을 이루겠다는 학생이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 졸업생들이 고교 3년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십니까. 

“지시나 강요가 빠른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지 모르나, 창의성과 자발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 형제자매 같은 친구를 보고 싶을 때면 언제라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 아이들을 보내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의 향기가 나는 인재를 길러내고 싶습니다.”


- 인구절벽 시대입니다. 아무리 좋은 학교라도 학생이 없다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워라벨’을 중시하는 요즘 세대는 결혼과 육아를 필수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도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주원인은 주택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인구절벽 위기는 필연이지만, 결혼과 출산을 앞둔 젊은 세대가 편안하게 육아할 수 있도록 보육과 돌봄에 정책적인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사회와 국가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사진=이금재 맘스커리어 대표 겸 브릿지경제 객원기자 ceo@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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