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정치 · 정책 > 정책

[정책탐구생활] 국가의 기후문제 해결 노력은 충분한가…기후헌법소원이 따져 묻다

아시아 첫 기후소송…“큰 의미 공감, 위헌 여부는 쟁점”
헌법재판소 판결 주목…‘국외사례 반영할까, 현 법 체계 유지할까’

입력 2024-06-23 13:47 | 신문게재 2024-06-24 12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기후소송 마지막 공개 변론 참석 앞둔 최후 진술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일 모습(사진=연합뉴스)

 

정부의 기후 정책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후헌법소원(기후소송) 판결이 이르면 오는 9월 내려진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제사회가 정한 약속에 부합하는지를 따져하고, 감축 목표 강화의 가늠자가 될 기후소송 관련해 그 쟁점과 의미를 살펴본다.


나비효과로 번진 국내 기후소송, ‘기후위기 방관은 위헌’ 목소리

지난 2020년 3월 19명의 청소년들이 낸 헌법소원은 국내 기후소송의 신호탄과도 같았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불충분해 미래세대를 포함한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청구로 첫 물꼬를 튼 기후관련 헌법소원은 이후 나비효과처럼 번졌다.

이듬해인 2021년 시민기후소송, 2022년 아기기후소송, 지난해에는 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 등이 잇따랐다. 헌법재판소는 이들 헌법소원을 하나로 묶어 지난 4·5월 2회에 걸쳐 공개변론을 열었다. 첫 청구 후 4년 만에 열린 공개변론에서 청구인측과 정부 측은,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해결 목표에 관해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다.

청구인측은 정부가 마련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법 제도로는 기후위기에 대한 파국을 막을 수 없고, 국민의 권리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상의 미흡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생존권, 평등권, 인간답게 살 권리,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요지다.

탄소중립법과 시행령은 오는 2030년까지 지난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청구인측은 탄소중립법에 제시된 감축 수치가 국제사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청구인측 대리인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다. 정부가 파리협정 온도(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NDC 대비 1.5도 이내 억제)목표에 상응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감축 목표를 국가의 재량 내에서 마련한 것이며, 다른 국가에 못지않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1·2차 변론에서 정부측 대리인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인 한국은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구조임에도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서 무리한 감축 목표가 기업경쟁력을 약화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적인 목표 수립보다 현실적으로 설정된 목표의 이행이 중요”하다는 것이 정부측 대리인의 주장이다,


세계각국도 기후소송 중…전 세계적 2180건 소송

기후소송을 맡은 헌재 재판관들은 지난 변론기일서 ‘스위스와 미국 등 세계 각국서 비슷한 소송이 제기된 점을 알고 있다’며 충실한 심리를 약속하기도 했다. 재판관들의 말처럼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기후관련 소송이 한창이다. ‘국가의 기후문제 해결 목표’가 부족하다는 시민들의 호소가 지구촌에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서 기후소송(Climate litigation)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대두됨에 따라,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정부 또는 공공 기관 등을 대상으로 기후 변화 완화를 위해 주도하는 소송을 의미한다. 의미조차 생소했던 기후소송이 활성화된 변곡점은 10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3년 네덜란드 우르헨다 판결은 ‘기후위기와 관련해 법적으로 정부 책임을 따지는 기후 소송’의 서막으로 평가된다. 당시 환경단체 우르헨다와 일반시민 수백 명은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책임을 소홀히 해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은 청구인들의 승리로 귀결됐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지난 2019년 12월 네덜란드 정부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5% 줄여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유럽인권조약상 생명권과 개인 생활권 등이 인정받은 결과로 풀이된다.

이후 기후소송은 심화되는 기후위기 속 미국 등 세계 각지서 잇따랐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해 발표한 기후소송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8~2023년 제기된 기후소송은 전 세계적으로 2180건에 달했다. 기후소송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 2021년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일이 그랬다. 독일 연방헌재는 기후변화법이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며 미래 세대의 기본권 침해로 판단한 것이다.


“기후소송 의미 커”…기후소송 결과 예측 불허 속 한계 지적도

국내 첫 기후소송 마지막 공개변론
국내 첫 기후소송 2차 변론에 앞서 최종진술자인 김서경(오른쪽)·황인철 씨, 한제아 어린이가 자리에 앉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주목할 만한 기후 승소 사례가 나오며 국내의 기후소송 판결 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청구인측은 기후소송에 대해 ‘산업화 대비 1.5도 이내 온도상승’ 목표 노력을 제고할 수 있는 소송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청구인들은 승소한다면 2050년 국가온실가스 배출목표(NDC)가 더 엄격해질 것이고, 사회 전반에 변화가 강제될 수 있다는 것이 청구인의 기대다.

기후소송 법률대리인인 김영희 변호사는 “기후문제,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전 국가적으로 이끌어내고, 입법·정책적 목표를 높이기 위한 너무도 중요한 소송”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소송 관련해 ‘위헌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가진 정부측 참고인도 기후소송의 의의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후소송 2차 변론서 정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사무총장은 “기후소송은 기후위기 심각성을 인식시켜 주고, 기후위기 대응 시급성을 강조해 의미가 크다고 본다”며 “기후행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측면서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국회에서는 탄소 감축은 국제사회의 모두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지적하며, 인간의 기본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영역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이성조 국회 기후변화 포럼 사무처장은 “미래세대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극 나서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대한민국이 기후 위기의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아닌 상황”이라며 “타국의 노력이 함께 없다면 기후변화 영향은 더 심각해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에 기본권을 지키는 것은 다른 대책차원에서 마련돼야 할 필요도 있다”고 진단했다.

기후소송의 결과는 예측키 어렵지만, 법률 제정 측면에서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에 따르면 그간 법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구체적인 목표나 수치를 가진 처분적 법률을 지양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런데 최근 외국의 기후목표나 탄소중립 관련 법에 있어 구체적 수치나 목표를 담는 경향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점에 비춰 볼 때 헌재가 이번 기후소송서 국외사례를 반영하거나, 우리 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에 따라 판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장은혜 법제연구원 미래법제본부 기후변화법제팀장은 “국외사례에서 법 제정에 특정대상, 특정수치를 넣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독일 기후보호법 등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이를 우리 헌재가 얼마나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한국은 그런 예가 많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곽진성 기자 pen@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