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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잘못 배달된 도시락은 '사랑'을 타고…영화 '런치박스'

[#OTT] 영화 '런치박스'
인도의 존경받는 직업군 '다바왈라'의 삶 엿볼 수 있어

입력 2024-06-17 18:00 | 신문게재 2024-06-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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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 충실하지만 일라는 늘 밖으로만 도는 남편과 아이가 채워주지 못하는 외로움을 알게 된다. (사진제공=(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시작은 악명 높기로 유명한 인도의 기찻길이다. 역 앞에는 구두를 닦는 소년과 바쁘게 열차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곧 화면은 바뀌어 흰 모자와 의상을 세트로 맞추고 자전거를 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비춘다. 최근 유튜브와 다수의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이 사람은 ‘다바왈라’(Dabbawala)라 불리는 도시락 배달부다.


영화 ‘런치박스’가 국내에 공개된 시점은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다. 매일 점심 도시락을 남편과 자녀에게 전달해주는, 인도만의 특별한 서비스를 하는 5000여명의 도시락 배달원 이야기가 스크린을 만났다.

중산층의 평범한 주부 일라는 딸을 배웅한 후 윗집 아줌마의 레시피대로 특별 양념을 넣어 카레를 만든다. 철로 만든 3단 도시락을 가득 채울 때쯤 이 동네를 담당하는 다바왈라가 도착한다.

카메라는 곧 그의 빠른 속도를 따라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들은 한치의 실수도 없이 기차역 앞에 모여 전용 칸에 도시락을 밀어넣고 또 다시 역에서 내려 담당자들에게 구역별 도시락을 할당한다. ‘런치박스’에서 일라의 녹색 도시락가방은 한 빌딩으로 들어서고 점심시간을 앞두고 한 직원에 의해 각자의 책상 위에 놓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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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박스’의 남자 주인공은 인도의 국민배우 이르판 칸이 열연한다.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쥬라기 월드’ ‘인페르노’ ‘라이프 오브 파이’에 출연했던 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사진제공=(주)팝엔터테인먼트)

 

곧 퇴직을 앞둔 사잔은 매일 오는 도시락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그는 가까운 식당에서 도시락을 배달해 먹는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식당에 혼자 앉은 그는 무심코 도시락을 열고 깜짝 놀란다. 첫칸부터 냄새가 남다르다. 무심코 집어 먹어보니 맛도 환상이다.

두 번째 칸과 세 번째 칸에는 특제 카레와 함께 정성스럽게 구운 난까지 들어있다. 바로 그릇에 덜어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주인공. ‘런치박스’는 다시 녹색 도시락통이 다바왈라의 손에 이끌려 일라의 집에 도착하는 과정을 담는다.

그 시간 일라는 도시락이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 들어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깨끗하게 핥아먹은 그릇을 보게 된다. ‘런치박스’는 대놓고는 아니지만 소원해진 부부의 일상을 내비친다. 남편은 매일 늦고 집에서는 늘 전화기를 끼고 산다. 가끔 세탁기에 빨래를 넣기 전 냄새를 맡아보지만 이 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그렇게 일라는 음식으로라도 남편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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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가정식을 소박하게 그려낸 ‘런치박스’,(사진제공=(주)팝엔터테인먼트)

 

사잔은 퇴근 후 도시락을 주문한 식당에 들린다. 그는 곧 은퇴할 예정이라며 이번 달 까지만 도시락을 넣어달라고 하고 “오늘 요리가 정말 맛있었다. 계속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동네에서 깐깐하기로 유명한 그는 집 앞에서 노는 아이들을 쫓아내고 문 안에 떨어진 공도 주워주지 않는 냉정한 남자다.

그런 그도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도시락을 먹으며 점차 변한다. ‘런치박스’는 절대 바뀌지도 않고 과학적으로 0.02%에 불과한 배달사고를 가졌다는 100년 전통의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통해 두 남녀의 외로움을 그린다.

영화 중반부는 도시락이 바뀌는 걸 알면서도 보내는 여자 그리고 그 걸 먹으며 삶의 의미를 되찾는 남자의 사연에 집중한다. 일라는 도시락 밑에 편지를 써 비워진 도시락을 보고 몇 시간 동안 행복했음을 그리고 요리의 즐거움을 다시금 깨달았음을 전한다. 현실이라면 배달부에게 바뀐 사실을 전하고 다시는 배달사고가 안 나게 처리하겠지만 ‘런치박스’는 남자가 쓴 답장으로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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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배달사고를 통해 인도에 뿌리내려진 차별과 결혼 관행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다. (사진제공=(주)팝엔터테인먼트)

 

고맙다는 말도 없이 “음식이 너무 짰다”는 한줄 뿐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음식 타박을 받은 여자는 전투적으로 변한다. 일부러 매운 고추를 넣어 보냈건만 “그 덕에 바나나 두개를 먹으니 배변에 좋을 것 같다” 적힌 쪽지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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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도시락인가.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도는 요리가 적당히 들어있는 영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다바왈라만이 아는 도시락 출발지와 배달지를 통해 엇갈리는 두 남녀의 끝을 가늠하게 만든다. 돌고돌아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사잔은 거울 속에서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조우한다. 시대에 순응하는 삶이 행복의 기준이었던 일라는 용기를 내 남자의 직장에 찾아가지만 아쉽게도 이미 은퇴를 한 뒤다.

사실 아내를 잃은 뒤 모든 삶이 똑같았던 사잔의 일상도 변했다. 동네 아이들에게 다정해졌고 곁을 주지 않았던 회사 동료에게도 마음을 연다. 그렇게 끝날 것만 같았던 도시락 로맨스는 기차에서 퇴근길 노동요를 부르고 있는 다바왈라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그들 사이에 껴 있는 사잔이 일라와 만났을지는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 채.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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