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비바100] 1949년생 '물의 요정'이 건넌 180km 바닷길!

[#OTT] 넷플릭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미국 장거리 수영선수인 다이애나 나이애드가 64세에 도전한 실화 바탕
스포츠계 미투 고발과 함께 60대의 나이에 미국-쿠바 해협 도전
넷플릭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배우들의 관록 돋보여

입력 2024-06-10 18:00 | 신문게재 2024-06-11 11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1
실제 아네트 베닝은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만 4회, 조디 포스터는 여우주연상을 2회 수상한 베테랑 배우들로 올해 1월 열린 96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나란히 여우 주연상과 조연상에 이름을 올렸다.(사진제공=넷플릭스)

  

한국 나이로 치면 환갑이 넘었다. 극 중 나이애드(아네트 베닝)는 20대 후반의 창창한 나이에 쿠바와 플로리다를 잇는 바다수영에 나섰던 전력이 있다. 마라톤 수영 선수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그는 미국과 쿠바의 외교가 단절되기 직전 무모한 도전에 나섰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엄청난 후원금을 등에 업고 도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50시간을 물에서 버텨야 하는 극한의 상황임을 모른 건 아니었다. 역행하는 조류를 만난 탓에 에너지는 빠르게 소모됐고 설상가상 거리계산이 잘 못돼 여러 번 수정해야 했다. 상어떼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호장치는 되려 속도를 늦추는 요소였다. 급기야 체온이 떨어지고 등과 뺨이 바다의 소금기와 만나 벗겨져 얼룩덜룩 한 채로 나이애드는 결국 물 밖으로 건져진다. 물에 들어간 지 42시간 만이었다.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의료진의 만류와 스폰서들의 설득이 있었지만 “포기하기 싫다”고 울부짖는 나이애드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영원히 뉴스에 박제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세월이 흘러 투덜이 대마왕이 된 주인공의 모습을 비춘다. 한때 자신의 코치였던 보니(조디 포스터)는 10대부터 함께 수영을 했던 사이로 60살 생일파티를 몰래 열어 주려는 게 다 읽히는 순수한 친구다.

“제발 아무 것도 하지말고 서프라이즈도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지만 역시나 지인들이 잔뜩 몰려온다. 10대 때 훗날 미국 수영 명예의 전당에 오른 올림픽 대표 출신 잭 잴슨에게 가르침과 함께 성폭력을 당한 전력이 있는 그는 보니와 한때 연인사이였다. 당시의 트라우마로 남성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두 사람은 그때의 기억을 묻고 각자의 분야에서 때론 경쟁하고 서로 연대하며 긴 시간을 함께 했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가장 좋은 경로를 골라서 가도 최소 이틀 이상 헤엄쳐야 하는 바다 수영에 도전한 실화를 그린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리스어로 ‘물의 요정’이란 이름을 붙여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일까. 나이애드의 수영실력은 남달랐다. 유력한 올림픽 선수로 떠올랐고 장거리 수영선수로 종목을 바꾼 이후에는 맨해튼 둘레(약 45km)를 7시간 57분 만에 헤엄치는 데 성공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 정점에서 쿠바해협 도전에 실패한 그는 스포츠 중계를 하며 늙어가고 있다. 절대로 수영을 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면서.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그런 주인공이 다시 도전에 나서는 과정을 세세하게 그린다. 그것도 다들 은퇴한다는 60세가 넘은 나이에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읽던 책을 발견하면서가 변화는 시작됐다. 남편에게 소극적이고 어린 딸의 불행한 유년시절의 방관자였던 엄마는 문학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지만 요양원에서 시집 한 귀퉁이를 고이 접어놓았다. “귀중한 한 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문장을 읽고 나이애드는 “20분만 물에 들어갈까?”란 생각으로 동네 수영장을 방문한다.

몇 십년 만의 물 속은 그렇게 5시간이 흘러도 지치지 않고 수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후 매일 출근도장을 찍으며 결국 한 라인을 통째로 장악하고 수영장의 불이 꺼져야 나오는 주인공의 일상이 보여진다. 물속에서 나이애드는 애써 외면해 왔던 자신의 본능 그리고 다시금 천직을 찾고서 전율한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3
할리우드에서 당당하게 레즈비언임을 밝히고 두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는 조디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보니의 걱정도 커져만 간다. 운동처방과 더불어 체력 단련을 시키는 직업으로 꽤 유명한 자신의 삶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꾸 쿠바행을 권한다. 선수로서 나이애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코치로서 승승장구 했던 보니는 사실 이렇게 늙어가는 자신이 싫지 않다. 황혼의 나이에 전문가들도 모두 실패할 거라 단언하는 도전을 하는 전 연인이자 현 친구인 나이애드가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엔 다들 비웃음 뿐이다. 후원자가 없어 집을 저당 잡혀야 하고 그나마 구한 사람들은 열정은 넘치지만 재능기부에 가깝다.

하지만 그 역시 어느 새 나이애드가 말하는 “가슴 떨리는 일”에 도전한다. 자신은 비록 수영을 그만 뒀지만 그를 돕는 것만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영화는 도전에 실패하는 모습을 실제 다큐멘터리와 함께 교차시킨다. 그 사이사이 주인공이 겪은 훈련 과정과 성적 학대 그리고 도전의 결과물들은 시대상을 고스란히 재연한 다른 연령대의 배우들이 소화한다.

2011년에 다시 도전한 나이애드는 62세로 고작 86km를 남기고 아쉽게 실패한다. 두 번째 도전은 고작 7주 후로 알려진다. 젊은 시절의 실패로 상어보호망 없이 도전에 나선 그의 복병은 해파리였다. 흐른 세월만큼 지구 온난화가 심해졌고 발전된 과학은 상어의 접근은 음파로 퇴치할 수 있었지만 바다에 떠있는 해파리의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생화학자가 발명한 수트와 함께 세 번째 도전에 나섰지만 이번엔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잠도 못 자고 90분 마다 엄청난 칼로리를 먹으며 생리현상까지 해결해야 하는 나이애드의 모습은 실화여서 더 경이롭다. 보니와 더불어 생업까지 포기한 베테랑 선장 그리고 해양 전문가들의 노력에도 사활을 걸었던 네 번째 도전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2
2013년 8월 31일 아침 출발한 그는 해파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실리콘 마스크와 전신 수영복, 장갑과 부츠까지 탁용하며 바다에 뒤어들었고 9월 2일 오후 쿠바 해안에 도착했다.(사진제공=넷플릭스)

 

첫 도전에 몰려들었던 언론과 대중들의 환호가 사라진 다섯 번째 도전은 사실상 마지막이었고 계절상 더이상 강행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이애드의 다섯번째 파도’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한 인간의 도전기를 한때 할리우드를 미모와 연기력으로 사로잡은 두 배우를 통해 완벽 부활시킨다. 화장기 하나 없이 주름 투성이 피부, 그마저도 잔뜩 그을린 상태에서 바다와 배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은 세월의 슬픔보다 우러러 나오는 존경심으로 가득찬다. 영화의 말미에는 실제 나이애드가 해변에 도착하는 뉴스를 삽입하는데 그 사실성을 살린 감독과 배우들의 연기에 절로 물개 박수가 쳐진다.

실존인물인 다이애나 나이애드는 2013년에 성공한 60시간이 넘는 해협횡단을 자서전으로 내놨고 이후 아네트 베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로 완성됐다. 그렇다고 ‘인간극장’급 감동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다만 이 역할을 위해 65세의 아네트 베닝은 1년 넘게 수영 훈련을 받았고 61세의 조디 포스터 또한 매일 8시간 넘게 체력 단련을 하며 캐릭터에 녹아들었다고 전해진다.

나이애드는 자신의 도전이 결코 혼자 해 낸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수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배울 수는 있어도 발전하려면 뭐든 ‘같이’해야 즐거운 게 스포츠 정신의 진수니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