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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연극 ‘벚꽃동산’ 전도연 “감히 기대 이상, 해보지 않은 선택들을 꿈꾸며!”

[人더컬처]

입력 2024-06-12 18:47 | 신문게재 2024-06-1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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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연극 ‘벚꽃동산’으로 27년만에 무대에 선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

 

“감히 기대 이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제 머릿속으로는 이 정도의 그림이나 상상을 하지 못했었던 것 같아요. 공연 열흘 전에 세트가 옮겨진, 제가 서야할 무대를 객석에 앉아서 봤어요. 제가 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놀랍고 궁금하고 기대도 되고…제가 생각했던 이상인 것 같습니다.”

연극 ‘벚꽃동산’(Вишнёвый сад, 7월 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으로 ‘리타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무대에 오르는 데 대해 전도연은 “기대 이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성의 있는 거절 위해 본 ‘메디아’로 “그의 ‘벚꽃동산’이 궁금해졌어요”

벚꽃동산 전도연
연극 ‘벚꽃동산’ 송도영 역의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
LG아트센터 2024년 레퍼토리인 연극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동명 유작을 바탕으로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이 연출은 물론 대본까지 집필했다.

사이먼 스톤은 ‘더 디그’(The Dig), 입센의 ‘야생오리’(The Wild Duck)를 기반으로 한 ‘나의 딸’(The Daughter), ‘더 터닝’(The Turning) 등의 영화감독이자 영국 내셔널시어터,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ITA 등과 협업해 ‘메디아’(Media), ‘입센하우스’(Ibsen House), ‘예르마’(Yerma) 등을 선보인 연출가다.

출연 제의를 받고 ‘벚꽃동산’ 원작을 읽은 전도연은 “재미가 없어서” 거절을 결정했었다. “거절에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국립극장 영상 레퍼토리 ‘엔톡 라이브 플러스’(NTOK Live+) ITA Live로 사이먼 스톤의 ‘메디아’(Media)를 접하면서 “그의 ‘벚꽃동산’이 궁금해졌다.”

어린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벚꽃동산까지 경매에 붙여야할 지경까지 몰락해 6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귀족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카야(류바), 지속적으로 재정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제안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는 농노의 자식이자 신흥사업가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자극은 그의 손을 거쳐 한국화됐다.

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거대기업의 송도영(전도연)과 송재영(손상규), 송씨 집안 운전수의 아들로 자수성가한 신흥사업가 황두식(박해수), 집안사업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며 두식과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입양한 딸 강현숙(최희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둘째 딸 강해나(이지혜)와 이상주의자 변동림(남윤호) 등이 급변하는 사회상과 그에 따른 갈등, 혼란 등을 풀어낸다.


◇이해받기 어려운 송도영, 누구나 겪고 있는 시간

연극 벚꽃동산
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

 

“송도영은 누구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요’라는 생각을 했죠. 좀 당황스러웠어요. 제일 이해가 안 됐던 건 나의 상처와 고통, 아픔을 딸들한테 고스란히 표현하고 전가한다는 게 좀 납득이 안 됐어요.”

하지만 공연 후 가졌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저희 엄마랑 너무 닮았다”는 한 관객의 고민을 접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도, 제 딸도 겪을 수 있고 누구나 겪고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벚꽃동산 전도연
연극 ‘벚꽃동산’ 송도영 역의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
“그런데 생각해보면 부모들은 상처나 아픔, 치부 등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지만 자식들도 어느 순간에는 알게 되잖아요. 송도영은 단편적으로 한번에 보여지기 때문에 되게 불편할 수 있죠. 하지만 세상에 전무하거나 아주 이해 못받는 캐릭터는 아니구나 싶어요.”

1월 29일부터 일주일 간 사이먼 스톤과 전 출연진이 모여 진행한 “일주일 내내 막말 대잔치여서 당황스러웠던” 그래서 “토론이 아닌 낯선 형식에 제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했던” 워크샵에서 쏟아낸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캐릭터와 이야기들에 스며들어 대본화됐다.

“개인적이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혹은 닮은 사람들 등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얘기되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좀 당황스러운 작업에 자극받아 다음날부터는 류바라는 캐릭터에 대한 생각들을 털어놓았어요.”

류바에 대한 전도연의 생각은 “여리고 상처를 잘받으며 계속 도망 다니는 인물”이었다. 남편과의 사별, 아들의 죽음, 어린 남자친구와의 헤어짐 등에서 도망치는 류바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대사를 언급한 전도연은 “저 역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부연했다.

“사이먼이 인물이나 대사 속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작은 변화를 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에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상처 받는 데 힘들어하는 모습들은 저랑 좀 닮아 있다는 얘기를 했죠.”


◇전도연의 송도영, 지독히도 사랑스러운!

연극 벚꽃동산
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

 

그렇게 워크샵 기간 동안 배우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들로 완성된 송도영은 모든 가족원들 앞에서 딸의 남자친구에게 키스를 하고 “나는 세월을 비껴갔는데”라거나 “아직도 빛나지 않아?” 등 스스로를 향한, 전도연의 표현을 빌자면 “낯 뜨거운”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인물이다.

“사이먼이 나를 사랑스럽게 봤구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캐릭터에 너희들이 투영됐기 때문에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거니까 대본이 늦게 나와도 걱정하지 마’라고 했거든요. 처음에는 송도영에 도대체 내 어디가 투영됐는지, 왜 이런 모습을 나에게서 봤을까 했는데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원작 속 류바 캐릭터의 공통되는 점을 가져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구체적으로 ‘이렇다’ 얘기한 건 아니지만 사이먼은 류바가 사랑스러움으로 납득되는 캐릭터로 보여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연극 벚꽃동산
연극 ‘벚꽃동산’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라도 그 말을 당사자 스스로가 내뱉었을 때는 오만하게 느껴지거나 불편한 분위기를 자아내곤 한다. 하지만 전도연을 통하면 이상하리만치 다른 뉘앙스, 분위기가 되곤 한다.

“전도연 이즈 뭔들” “전도연이 연기를 잘하는 건 모두가 아는 거고 그걸 뽐내거나 보이고 싶어서 연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전도연 연기 진짜 잘하더라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들어서 저한테는 어떤 자극이나 감흥도 되지 않아요”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지만 본인 입으로 내놓기 쉽지 않은 이 말들도 전도연이어서 밉지 않다. 그렇게 원작의 류바를 바탕으로 한 송도영은 전도연을 만나면서 지독히도 사랑스럽고 그래서 어떤 행동이나 상황도 납득시키며 극 중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인물로 변주됐다.

전도연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둘째 딸 해나의 생일파티로 꼽았다. 그리곤 “뜨거움으로 시작해 되게 차가움으로 끝난 그 장면이 이 가족의 끈끈함을 짧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진다”고 이유를 밝혔다.

“사이먼 스톤의 ‘벚꽃동산’ 메시지는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두식이 ‘새 시대가 올 거야’라고 하는데 그 새 시대가 무엇인지 저희들도 궁금했어요. 모두가 오기를 바라는 ‘새 시대’지만 각자가 바라는 이상향은 다르잖아요. 그렇게 스스로가 생각하는 ‘새 시대’를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죠. 저도 새로운 시대가 왔으면 좋겠는데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모르겠어요. 그저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에게는 지금 우리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각자가 꿈꾸는 새 시대, 결국 관객의 몫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전도연
연극 ‘벚꽃동산’으로 27년만에 무대에 선 전도연(사진제공=LG아트센터)

“27년간 공연을 할 생각을 못했던 건 갇혀 있었기 때문이고 갇혔다는 건 두려움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전히 관객과 시선을 맞추거나 무대를 즐기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눈 마주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 노력해 보려고 해요.”

“여전히 관객과 시선 맞추기가 어렵다”는 전도연에게 ‘벚꽃동산’은 그렇게 “장르적으로 연극이기는 하지만 ‘도전이라기보다 제가 해보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하는 과정 중 하나”다.

LG아트센터에 따르면 ‘벚꽃동산’은 2025년 해외 투어를 목표로 전도연을 비롯한 전 출연진과 논의를 진행 중이다.

“첫 무대부터 마지막 무대 같았고 매 공연이 마지막 무대인 것 같아요. 아직까지 7월 7일 마지막 공연은 사실 감히 상상조차 안돼요. 다만 마음껏 뭔가 풀어놓고 연기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저에게 폭넓은 선택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가 돼요. 저 LG에서 또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다른 것들도 경험해보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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