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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박천휴&윌 애런슨 “누구나 언젠가는 이방인!”

입력 2024-06-0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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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박천휴(왼쪽)와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너무 상투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 조금은 이질감이 드는 정서가 아마 저희의 유니크하다면 유니크한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요.”

최근 뮤지컬 ‘일테노레’ 초연을 마치고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6월 18~9월 8일 예스24 스테이지 1관) 한국공연 5번째 시즌과 10월 브로드웨이 공연 준비에 한창인 박천휴 작가는 윌 애런슨(Will Aronson) 작곡가와 만들어가는 작품세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창작을 같이 하기 전부터 친구였어요. 취향이나 당장 큰돈을 벌기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가치관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게 존경심이 들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니 서로에게 예술적인 혹은 문화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좋은 음악, 영화, 소설 등을 함께 향유하며 토론하다 보니 자연스레 창작 파트너로서의 색이나 성격이 형성된 것 같아요.”


◇근미래부터 1930년대, 1970년대 경성으로의 여정, 그 끝은 지금의 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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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
“저희에게는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게 되게 중요해요.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쓸 원동력이 잘 안 생기거든요. 지금까지의 작품은 물론 연말에 나올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도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미국 뉴욕에서 친구로 만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번지점프를 하다’를 시작으로 ‘어쩌면 해피엔딩’ ‘일테노레’(Il Tenore)까지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 ‘윌앤휴’(Will&Hue)로 불리며 사랑받는 창작자들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서 자체만으로 보면 묘하게 어딘가 서양문화와 한국문화가 섞인 듯한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음악 스타일도 그렇고 한국 창작자와 미국 창작자가 협업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녹아드는 것들을 유니크하다고 생각해주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박천휴의 전언처럼 “뉴욕에 오래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으로서 느끼는 약간의 이방인 혹은 외국인의 정서, 거기서 오는 어떤 외로움 그리고 이중문화적인 성격들”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들어 유니크한 세계를 구축하곤 한다.

윌 애런슨은 “유니크하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식상하지 않은, 가까운 미래나 1930년대, 1970년대 등 좀 색다른 배경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저희의 목표이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친숙하지 않은, 지금의 환경과 좀 다른 곳으로 갔다가 결국엔 지금의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랄까요. 친숙하지 않은 것에서 친밀한 것을 찾아내는 경험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이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떠나실 때 익숙하진 않지만 그 경험이나 감정 속에서 지금의 현실과 접점을 찾기를 바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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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

 

근미래의 한국, 제주를 배경으로 한 ‘어쩌면 해피엔딩’이 그렇고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서양고전 장르인 오페라를 소재로 한 ‘일테노레’가 그렇다. 그리고 올 연말 선보일 ‘고스트 베이커리’ 역시 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양과자점에 대한 꿈을 키우는 여성의 이야기다.

“사실 공연을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극장이라는 곳에서 2, 3시간 동안 다른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삶이라는 게 저런 거지’ ‘나도 저럴 수 있지’ 혹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의 의미를 찾게 되거든요. 그게 공연을 보는 즐거움이기도 한 것 같아요. 1930년대, 1970년대 경성이든, 2060년 근미래든 호기심을 가지고 함께 떠났다가 결국 ‘이건 내 얘기’라고 느끼게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죠.”


◇‘음악사랑’ 교집합이 만들어낸 ‘어쩌면 해피엔딩’의 재즈, ‘일테노레’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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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박천휴(왼쪽)와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

“음악을 사랑하는 게 저희의 공통점이에요.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가 처음엔 트럼본을 연주하는 설정이기도 했어요. 윌이 고등학교 때 재즈밴드활동을 하며 트롬본을 연주했고 저는 재즈라는 장르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서 대학교 때 트럼본을 연주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죠.”

박천휴의 말처럼 그렇게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과 창작활동, 경험 등 교집합은 ‘어쩌면 해피엔딩’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해피엔딩인 내밀한 사랑이야기를 써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천휴가 좋아하던 영국 록밴드 블러(Blur, 데이먼 알반·알렉스 제임스·그레이엄 콕슨·데이브 로운트리) 보컬 데이먼 알반(노래Damon Albarn)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에서 영감받으며 본격화됐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로봇에 비유한 노래인데 그 안에 어떤 외로움의 정서가 짙게 느껴졌어요. 문득 되게 인간적인 이야기를 로봇들을 주인공으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로봇이 주인공인 작은 이야기’라는 아이디어는 윌과 공유되며 낡아서 버림받은 헬퍼봇들의 사랑이야기로 완성돼 무대에 올랐다. ‘일테노레’ 역시 “클래식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오페라를 공부한 윌의 장점을 극대화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는 박천휴의 바람에서 시작됐다.

“그걸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다 보니 한국에서 최초로 오페라를 공연한 사람을 찾아보게 됐고 윌이라면 이 이야기를 음악으로 너무나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작품마다 음악적 장르가 중요한 소재로 들어갔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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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

 

윌 애런슨은 “사실 ‘일테노레’ ‘어쩌면 해피엔딩’ 뿐 아니라 뮤지컬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특별하고 유니크한 장르를 만들어내는 자체를 굉장히 좋아한다”며 뮤지컬 ‘스위니 토드’(Sweeney Todd: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하데스타운’(Hades Town), ‘헤어스프레이’(Hair Spray), ‘광장의 불빛’(The Light in the Piazza) 등을 예로 들었다.

“이들의 음악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죠.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 유니크한 세상 속으로, 이야기나 캐릭터들에도 빠져드는 느낌이거든요. 박천휴 작가와 일을 할 때도 그런 유니크한 세계를 구현하고 싶어서 사운드, 이미지, 이야기를 고민해요. 단지 음악 뿐 아니라 특정한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끔 스토리, 캐릭터 등 전반적인 구성에 대해 생각하죠.”


◇브로드웨이 입성 앞둔 한국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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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
“한국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하고 2016년 말 뉴욕에서 업계 관계자들만을 모시고 낭독공연을 진행했어요. 그 낭독공연 다음날 제작자 제프리 리처드(Jeffrey Richards)로부터 ‘브로드웨이로 가져가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죠.”

‘비틀주스’(Beetlejuice), ‘매디슨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등의 제프리 리처드는 토니어워즈를 8회나 수상한 브로드웨이 대표 제작자다. 박천휴가 언급한 제프리 리처드의 제안 후 2020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했고 그해 말 정식으로 무대에 오르기로 했던 계획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기한 연기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두 번의 워크숍을 거쳐 드디어 올해 10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한다.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설정도 같아요. 한국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올리버의 옛주인인 제임스도 한국인이죠. 주인공들이 로봇이다 보니 연기할 배우들의 인종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제임스는 무조건 동양인이어야 한다는 건 변함 없어요. 올리버가 재즈음악을 좋아해서 재즈 레코드가 등장하고 반딧불이나 아날로그 정서들도 게속 유지되죠. 올리버도 소년스러움이 강조되는 역할 그대로 가고 그 이미지에 맞는 대런 크리스(Darren Criss)라는 배우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죠.”

“무대가 좀 커지다 보니 좀더 미래적이게 느껴질 수는 있을 것”이라는 박천휴의 말에 윌 애런슨은 “비주얼적으로 다른 점은 (올리버와 클레어가 옛 주인인 제임스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가는 길”이라며 “한국에서는 터널로 가는데 미국에는 터널이 없기 때문에 페리를 타고 간다는 설정 하나가 다르다”고 귀띔했다.

“한국에서는 제임스가 재즈가수까지 같이 연기하지만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는 분리시켰어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좀 달라지는 것들이 있죠. 한국버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고 미국 버전에서는 4곡 정도가 달라집니다.”


◇차기작 ‘고스트베이커리’ 그리고 이방인

박천휴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

 

“1970년대를 배경으로 돈도, 명예도, 친구도, 연애도 필요 없이 오로지 한국 최고의 양과자점을 만들어 성공하겠다는 꿈밖에 없는 여주인공 순희의 이야기예요.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몇십년 동안 비어 있던 허름한 가게를 빌려 양과자점을 차리는데 거기서 예상치도 못한 아주 고집센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의 차기작으로 올 연말 공연될 ‘고스트 베이커리’에 대해 이렇게 전한 박천휴는 “저희가 좋아하는 ‘스위니토드’나 ‘하데스타운’ 같은 다크한 아이디어들이 있었지만 밝고 따뜻한 작품들을 먼저 선보이게 됐다”며 “이 작품은 이전작들보다는 좀더 어른스러운 느낌들이 있고 후반부에는 다소 어두운 면들도 나오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윌 애런슨은 “초반에는 우리도 어두운 걸 해볼까 하는데 결국 이런저런 따뜻한 감성이 들어가게 된다”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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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

 

“인생이라는 게 슬픈 일도 있지만 즐거움도 포함하고 있잖아요. 재밌고 즐겁기도 하지만 반면 슬프고 어둡기도 한 면면들을 담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어떤 장르를 써보자 했다가도 결국 모든 감정을 포함하는 작품으로 완결이 되더라고요.”

이에 대해 박천휴는 “전작인 ‘일테노레’ 중 ‘인생은 되게 비극적이지만 딱 그만큼 아름답다’는 대사가 저희가 이야기나 음악을 만들 때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인인 윌 애런슨이 한국에서 뮤지컬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인인 박천휴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감정들은 두 사람이 추구하는 유니크한 세계의 바탕이기도 하다. 이에 박천휴 작가는 ‘일테노레’ 중 오랫동안 넣고 싶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한 “꿈이 멀리 있는 사람은 모두가 이방인이네”라는 대사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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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윌 애런슨(왼쪽)과 박천휴(사진제공=CJ ENM)

 

“그런 정서를 저희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도 결국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데 대한 그리움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작품에 녹아난 게 아닌가 싶어요.”

윌 애런슨은 “모두가 어떤 순간에는 ‘나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며 “실제로 외국에서 이방인인 채로 혼자 있을 때 그런 느낌이지만 ‘이방인’임을 깨달아서 좋은 점도 있다”고 밝혔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집 혹은 익숙한 데서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런데 막상 혼자이거나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혹은 외국에 혼자있을 때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겠다’ 싶어지거든. 설명 혹은 근거가 생긴달까요. 그래서 집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되게 가치 있는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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