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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지능 낮지만 장애 인정 안돼… 전체 인구 14% '경계선 지능인', 학습·고용 불안정… "지원법안 여전히 부재"

경계선 지능인, 약 699만 명… 지적장애인 보다 많아
소속될 곳 없는 '경계선 지능'… 학습도 취업도 어려워
지자체 곳곳서 지원책 마련, 여전히 '지원 법률'은 부재

입력 2024-03-10 14:15 | 신문게재 2024-03-1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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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3일 ‘경계선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허영 국회의원과 관계자들이 국회에서 입법 필요성을 설명하고 법 제정을 촉구했다. (허영 의원실 제공)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IQ)가 70 이상 84 이하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지적장애에 해당하지 않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지능력으로 ‘느린 학습자’라고도 불린다.

전체 인구의 약 14%에 달하는 경계선 지능인은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인구 중 경계선 지능인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에 대한 국가통계조차 없다. 다만 IQ 정규분포도에 따라 전체인구의 약 13.6%가 IQ 70~85에 분포하고 있어 2023년 5월 기준, 총 인구 수가 5140만521명임을 고려하면 경계선 지능인은 약 699만 명으로 추정된다.

초중고등학교 학급별 인원이 30명일 경우 아동 및 청소년 3~4명은 경계선 지능인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지적 장애인이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지적장애 출현율은 지난 2017년 기준 0.38%고, 지적 장애인 수는 18만 7300명(추정치)이다. 전체인구에서 경계선 지능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적장애인 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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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정규분포곡선. 지능지수(IQ) 70 이상 84 이하는 느린 학습자, 즉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한다. (출처=사단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

 

◇‘경계선 지능’, 훈련 통해 개선 가능… “인지 발달 정도, 건강 검진 하듯 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선 지능인은 조기에 문제점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서 대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린 시절 조기에 발견해 당사자의 특성에 맞게 치료하고 교육하면 인지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대부분 부모가 ‘어린 아이의 단순 집중력 부주의’ 등으로 여기며 ‘좀 더 크면 괜찮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일반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김 모 씨(33세)는 “학교 현장에서도 경계선 지능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어서 그런 사례를 발견하더라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부족한 아이’로 낙인 찍힐까 걱정하고 불쾌해 하는 경우가 있어 소견을 전하기가 어렵고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박현숙 경계선지능연구소 소장은 “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까운 복지관, 청소년 상담센터, 민간 심리상담센터 등에서 아이의 전반적인 인지 발달 정도를 꼭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박 소장은 “미리 걱정하거나 거부감을 느낄 필요 없이 건강 검진의 느낌으로 검사해보라”며 “아이의 학습 등이 더딜 때 그것이 심리적 우울감이나 불안감, 방임 등으로 인한 일시적 상태인지, 실제로 인지 발달이 늦어지고 있는 상태인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인지 기능에 영향을 받은 정도라면 학습 부진으로 이어지더라도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 또는 지적장애 수준의 인지 발달 지연이 있을 경우에는 학교 학습과 교육과정 이수 뿐 아니라 또래와의 관계 형성 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선 지능인으로 판명되면 학습 치료 및 대인 관계 수업 등을 통해 인지 기능을 개선해 나갈 수 있다.

박현숙 소장은 “인지 기능이 드라마틱하게 개선 되고 IQ 자체가 오르는 개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지 기능이 떨어져 있는 아이들의 경우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좋지 않은데, 이런 부분을 연습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경계선 지능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그 부분을 타겟으로 잡고 개선을 위한 추가적 노력을 기울여줘야 한다”며 “이런 연습하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시작할수록 좋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중요한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을 조기에 발견하더라도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장애 판정을 받지못한다. 장애등급에 따른 복지 혜택도 없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장애인 ‘특수교육 대상자’로서는 기준이 높아 현재의 교육제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점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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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으로 인해 일부 경계선 지능인 학부모는 아이가 지능검사에서 일부러 틀려서라도 점수를 낮게 받아 지적장애 판명을 받고 지원 받길 바란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지적장애로 판별됐다”고 밝힌 한 경계선 지능인 학부모는 “그때가 오히려 행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을 방치한다면 경계선 지능인이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학습 및 교우 관계에서 어려움이 지속되고, 이로 인한 좌절감과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자아존중감이 낮아지거나 학습된 무기력이 자리 잡기 쉽다.


◇“일반인을 어떻게 이겨요”… ‘고용 불안정’ 겪는 경계선 지능인

특히 성인기에 접어들면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구직이 어렵고 직업 활동을 시작하더라도 부적응으로 인해 지속적인 근로 및 이를 통한 자립이 힘들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경계선 지능 관련 입법 및 지원책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들 위주다. 그런데 사실 경계선 지능이 더 문제가 되는 건 학교를 졸업한 후”라며 “(이들에 대한 지원은) 한발 더 나아가 고용과 자립에 초점 맞춰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학생일때는 학교가 그나마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담당해 끌어줄 주체가 돼 주지만 졸업 후에는 이런 보호를 받지 못하며, 장애가 아니기 때문에 복지 정책 등의 수혜를 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들이 하향 취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도 판단, 대인관계 능력 등 사회적 기술 부족으로 근무 기간이 굉장히 짧아 일자리가 불안정하다.

전문가들은 “경계선 지능인의 고용과 고용 유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고용 문제가 해결돼야 복지와 이외의 것들을 신경 쓸 수 있는데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으니 그 짐을 부모나 가족이 온전히 지게 된다는 것이다.

‘경계선지능인 실태분석 및 평생교육지원센터 설치 기본계획 학술연구용역’ 연구 자료에 따르면, 성인 경계선 지능인은 부모에게 한 달 용돈 10~20만원을 받는 미성년 자녀 수준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계선 지능인 45.5%는 ‘하는 일이 없음’으로 조사됐다.

◇사각지대 ‘경계선 지능인’ 지원, 국가적 ‘컨트롤타워’ 필요


박 소장은 경계선 지능인이 정신질환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경계선 지능인의 정신질환 문제에도 신경 쓰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런 부분을 좌시하고 있다”며 “우울이나 불안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조현증으로도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계선 지능이 정신질환은 아니지만 정신 건강과 관련한 이슈들도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개관해 운영 중이다. 경기도는 지난 2022년 4월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에서는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 아동 바우처를 발급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자체별 지원책 외에 현재 경계선 지능인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 법률은 없다. 제21대 국회에서는 ‘경계선 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안’, ‘경계선지능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경계선 지능 학생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안’ 등 4건의 제정 법률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하지만 다음달 총선을 기점으로 막을 내리기 때문에 이들 법안은 모두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임지원 기자 jnew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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