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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올해도 현재진행형 중대재해…“노사정, 로벤스 보고서 주목해야”

영국, 1972년 정치·이념 등 배제, 중대재해 원인 분석한 로벤스 보고서 공개
한국, 최근 5년 사고사망만인율 0.43 답보…“복잡한 관리 규정 이해 등 현장 관행 개선 중요”

입력 2024-03-03 13:07 | 신문게재 2024-03-0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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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사고현장
지난달 12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해양 공장에서 구조물 일부가 내려앉으면서 근로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연합)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공사대금 50억원)에 확대 적용됐지만 올해도 중대재해는 그칠 기미가 없다. 정부는 산업안전대진단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노사도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않은 실정이다. 이와관련, 산업현장에서는 ‘노사정’ 모두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지난 1972년 영국에서 발표한 ‘로벤스 보고서’를 주목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지난 1970년 영국의 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고사망자수 비율(사고사망만인율)은 0.4 수준으로 연간 약 1000명이 사고로 사망했다. 이에 영국은 국가의 안전보건 시스템의 작동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검토할 독립위원회를 설치(1970년)했다.

먼저 국영석탄공사 사장이자 노동조합의 신임을 받고 있던 ‘앨프리드 로벤스’를 위원장으로 선정해 일터안전보건위원회(로벤스 위원회)를 설립했다. 그 뒤 로벤스 위원회는 지난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정부 부처, 노조, 사용자 연합, 보험회사 등 산업 안전보건에 관련된 200명 이상의 개인과 기관으로부터 다양한 증거와 자료를 수집했다. 또 여러 산업체를 현장 방문해 실제 안전보건 산업시스템 현황을 검토했고 외국 안전보건 시스템 견학을 위해 해외 방문 시찰도 진행했다.

2년이 지난 1972년 로벤스 위원회는 전 세계의 직업 안전보건의 기념비적인 보고서라고 일컬어지는 ‘Health and Safety at Work’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결과물로 내놓는다.

보고서는 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흔히 ‘로벤스 보고서’로 불렸다. 이후 보고서의 철학과 견해는 영국 사회의 안전보건 역사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

로벤스 보고서의 영향으로 ‘안전에 관한 법률’이 지난 1974년 영국에서 제정됐고 ‘안전보건행정기구(HSE)’가 설립됐다.

로벤스 보고서 서문은 “매년 영국에서 약 1000명이 일터에서 사망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이념·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원인부터 들여다봤다.


노사정 각자만의 사정…중대재해법보다 중요한 ‘본질

지난 1월 27일 중대재해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상시근로자 5~49명)까지 확대 적용되자 노사정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중대재해법은 지난 2022년 시행됐다.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되자 반색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중대재해법을 유예 찬성 의견도 많았지만, 하도급 등 기형적인 한국의 노동구조에 지친 노조원들이 이에 대한 반감으로 중대재해법 찬성에 목소리를 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용자의 경우, 안전 인프라 투자 대비 노동 생산성을 뽑아낼 수 있냐는 현실적인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특히, 최소 수천 만원부터 시작하는 안전 인프라 설치비용은 경기 불황 속 영세사업장에 큰 부담이었다.

아울러 영세사업장의 경우 사업주가 영업·회계·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고려할 때 사업주가 처벌되면 해당 회사는 존폐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업종, 산업별 구체적인 안전 지침 없이 모호한 규정을 근거로 사업주를 처벌할 수도 있다고 하니 경영계의 반발은 거세졌다.

정부의 경우 산업재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예산 등을 고려하면 한계 또한 분명하다.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수사 인력은 기존 100명에서 157명으로 증원됐다. 하지만 만성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국 83만7000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산업안전 대진단도 기본적으로 사업장별 자기진단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업이 참여할지는 불분명하다.

이와관련해 작업 현장에서의 반응은 노사정의 주장과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노사정이 중대재해법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기도 화성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A 씨는 “회사를 경영한 지 3년째지만 중대재해법이라는걸 오늘 처음 들었다”며 “가뜩이나 건설경기가 어려워 일감도 없는 마당에 경영주처벌, 안전관리 체계 마련 등은 다른 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서 현장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는 B 씨는 “회사에서 10년 동안 근무하며 죽는 사람을 20명도 넘게 봤다”며 “인프라가 아무리 완벽하게 설계돼 있다고 해도 조선소 같은 현장에서 100%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작업자도 스스로 조심해야지 경영주처벌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평택의 한 사업장에서 안전관리자로 근무 중인 C 씨도 “대기업 현장은 정부로부터 철퇴를 수도 없이 맞아 안정된 편이지만 영세 사업장은 위험성 평가도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은 마당에 중대재해법에 관심 가질 작업자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장에는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법의 본질은 사라진 채 적용과 처벌이라는 ‘형식과 틀만’ 남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경총이 최근 10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의 94%는 중대재해법 적용에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사고사망만인율 답보…로벤스 보고서의 해법은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 이후 발생한 중대재해는 총 12건으로 모두 사망사고다. 그간 중대재해법 확대를 주장해온 취지가 무색할 만큼 올해도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노동부 자료를 통해 확인한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자’는 최근 5년(2018~2022년)간 900명 내외로 정체됐다. 특히, 사고사망만인율도 지난 2018년 0.51, 2019년 0.46, 2020년 0.46, 2021년 0.43, 2022년 0.43으로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답보상태다.

로벤스 보고서는 상세한 법률 및 체계가 복잡할수록 사업주와 노동자가 안전·보건에 대한 무관심을 촉발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1970년의 영국과 2024년의 한국이 겹쳐 보이는 이유다.

한국은 그간 세월호, 김용균 사건 등 문제가 터질 때마다 법과 규제를 덧붙이는 땜질 방식으로 안전 문제를 대해왔다.

한국노동연구원 한 관계자는 “위험성 평가, 중대재해법 등을 어렵게 인식하게 만든 당국자들의 책임이 존재한다”며 “중대재해법이 본질이 아니고 복잡한 관리 규정을 어떻게 하면 작업자들이 쉽게 인식하게 할 것인가 또 이를 통해 노사문화 관행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로벤스 보고서는 노사 공동 책임의 과감한 수용, 자율감독과 자율규제를 통해 국가 규제에 대한 의존을 줄이자고 말한다. 또 법 개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지적. 안전 규제가 지식과 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순을 꼬집는다.

즉 법과 제도의 한계는 분명하므로 노사 간 협력과 문화 등 관행 개선을 통해 중대재해를 줄여야 한다고 로벤스 보고서는 역설한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나오게 된 원인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만 잘 준수했어도 중대재해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 모두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돌아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세종=정다운 기자 danjung63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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