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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노동부 ‘핵심 업무’라지만 열심히 해도 서러운 근로감독관

노동단체, ‘늦장 처리’, ‘합의 종용’ 지적하며 ‘직무유기’ 비판
인원 늘었지만 업무 복잡·난이도 높아져 ‘업무 과중’
연 1조원 임금체불 저리에 행정력 집중…체불 전담기구 필요성 제기
감독관 교육·역량 제고 등 전문성 강화 한 목소리
‘근로감독법’ 제정 되면 명확성 높아져

입력 2023-08-13 13:14 | 신문게재 2023-08-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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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감독(관)은 고용노동부의 핵심 업무 중 하나이자 ‘독점적’ 권한으로 노동부 업무의 ‘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2019년에는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품(MBC)’이 방영돼 인기를 얻으며 근로감독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근로감독관은 많은 업무량과 때론 ‘악성 민원’에 치이면서도 노동자는 물론 사용자 쪽에서도 종종 불만을 들으며 ‘끼인 신세’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근로감독관 인원 확대와 전문성 강화, 관련 법 정비·제정 등 근로감독에 대한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부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연구용역 보고서 ‘근로감독 행정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협업방안(국제노동법연구원 수행)’에 따르면 근로감독제도는 헌법과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 관련 법이 명시하고 있는 근로자의 권리와 근로조건이 실제 사업장에서 제대로 보장·이행되고 있는지 여부를 관리·감독한다.



근로감독관, 법 명시 근로자 권리·근로조건 보장 관리 감독…근로기준법에 근거

근로감독관(제도)은 근로기준법(제101조)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실제 구체적인 임면과 업무 규정은 근로감독관규정과 사법경찰직무법, 근로감독관집무규정에 담고 있다. 특별사법경찰의 역할을 하며 소관 법률은 19개에 달한다. 근로기준법은 노동 관계 법령에 따른 현장조사나 심문 등의 수사는 검사와 근로감독관이 전담해 수행한다고 명시하며 근로감독관에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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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업무 과다, 처리 지연 등 근로감독관 및 제도에 대한 문제점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다. 아쉽게도 최근에도 근로감독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 근로감독 행정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협업방안 보고서는 한국의 근로감독행정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정기감독 등 보다는 노동자의 신고사건 처리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근로감독행정에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하고 체계적·계획적인 근로감독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동단체에서는 근로감독관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9월 내놓은 ‘근로감독관 갑질 보고서’에서 지난 2021년 노동자가 청원한 10건 중 3건(31.9%)만 근로감독을 실시해 2016년(69.2%)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이는 노동부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근로감독 청원 실시율 ‘뚝’…직장갑질119 “노동부 직무유기”

직장갑질119는 “실제 근로감독 청원을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거절당하거나 신고 후 익명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근로감독 운영 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보고서에서는 근로감독관이 미온적으로 판단하거나 피해자에 대해 제대로 배려하지 않으면서 합의를 종용하는 문제를 제기한 건데 그런 제보들은 여전히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오진호 위원장은 일부 근로감독관의 업무 처리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근로감독관의 ‘감정노동’을 유발하는 업무량 경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합의를 종용하거나 사용자가 처벌돼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미온적으로 나오고 오히려 피해자에 ‘이런 걸 신고해봤자 인정되지 않는다’, ‘적당히 마무리해라’식으로 나오면서 2차 피해를 입도록 하는 근로감독관의 업무 태도가 문제로 보인다”며 “한편으로는 근로감독관들이 처리하고 있는 사건 수가 여전히 많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근로감독관(산업안전보건 감독관 포함)은 3089명으로 2020년(2995명)에 비해 94명이 늘었다.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을 제외한 일반 근로감독관(근로기준법 등)은 2017년(1450)년 비해서는 833명이 증가했다. 산업안전 근로감독관은 2020년 705명에서 지난해 806명으로 100여명이 늘었다.

근로감독관 수는 늘었지만 업무량은 정체하거나 오히려 증가한 경우도 있다. 일반 근로감독의 경우 근로감독 사업장수는 2020년 1만5797개에서 2021년 2만2252개, 지난해 2만7180개로 늘었고 취업규칙 심사 등 각종 심사·인허가 건수는 2020년 13만3744건에서 2021년 14만3746건, 지난해 13만9939건으로 매년 14만건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산업안전 관련 점검·감독 사업장은 2020년 2만478곳에서 2021년 2만7648곳으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2만3544곳으로 다소 줄었다.



직장 내 갑질·플랫폼 노동 증가…업무 복잡해져

노동부는 근로감독관의 수는 늘었지만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시행으로 새로운 유형의 신고 사건 처리, 직장 내 괴롭힘 관련 특별근로감독 추가, 2021년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화 시행, 지난해 가사근로자법 시행 등으로 업무량은 늘고 사건 처리 난이도는 높아져 실제 업무량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새로운 근로 형태인 플랫폼 노동의 증가도 근로자성 판단 등에 있어 업무 처리의 복잡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산업안전 감독의 경우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수사·조사, 법 적용이 복잡해지고 처리 기간도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감독의 제도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근로감독관 수를 확대하는 일이 1순위로 꼽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근로감독관 수를 크게 늘리는 일은 쉽지 않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 사건을 모두 처리하려면 근로감독관은 한 2만명은 돼야 할 것”이라며 인원 확대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경찰, '끼임 사망사고' 성남 샤니공장 압수수색
근로감독관은 경찰 등과 조사·수사를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한다. 경기 성남중원경찰서가 지난 11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샤니 제빵공장에 수사관 19명을 투입해 압수수색을 벌였다.(연합)

 

이에 근로감독관의 업무가 집중되는 임금체불 사건에 대해 체불 예방 강화, 타부서 분담 등을 통해 체불 처리 업무를 줄여 근로감독 행정력을 다른 사건에 더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임금체불 액수는 2021년 1조3505억원(청산액 1조1308억원), 지난해 1조3472억원(청산액 1조1352억원)에 달하는 등 매년 1조원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 매년 1조원이 넘는 임금체불 사건 처리에 행정력이 집중되다 보니 사업장 관리·감독, 예방 활동 등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부 내부에서는 물론 외부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주문하는 대책은 근로감독관에 대한 조사·수사 역량 제고, 체계적 교육 확대 등을 통한 전문성 강화이다. 노동부가 최근 공개한 ‘근로감독 행정 전문성 제고 방안 연구(한국노동법학회 수행)’ 보고서는 근로감독관 전문성 제고를 위해 교육 예산·인력 등에 대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재직자 교육의 경우 장기 전문과정을 도입해 교육 내실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과학화’를 위해 정보통신(ICT) 활용이 필요하며 이와 관련해 다른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직자 장기 전문과정 도입, ICT 활용 필요…산업안전감독관 자가진단키트 개발

이 보고서는 특히 근로감독의 실질화를 위해서는 임금체불 처리에 대한 효율화가 필요하다며 임금체불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나아가 임금체불 처리 전반에 대한 제도 개선도 주문했다.

노동부가 맡겨 지난해 12월 나온 연구용역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전문성 강화에 대한 연구(한국직업능력연구원)’ 보고서는 산업안전 근로감독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성 평가를 위한 자가진단키트 개발과 산업안전보건 경력개발 모델, 현장형 교육훈련 내실화, 다양한 교육훈련 기회 제공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법적 기반이 약한 근로감독 관련 규정을 개선하기 위해 이른바 ‘근로감독에 관한 법’ 제정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근로감독 행정 전문성 제고 방안 연구 보고서는 현재 19가지 법률과 관련 시행령 등을 집행·시행하는 근로감독관의 법적 근거를 근로기준법에 두는 것은 현행 법체계상 부합하지 않다며 별도의 근로감독에 대한 법률이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귀천 이화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근로감독 관련 법 제정에 대해 “직무규정에서 상세한 내용을 담았는데 법률이나 시행령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명확하게 근거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취지”라며 “명확하게 근거가 있는 것이 행정 집행에도 더 안정적이고 근로감독 개선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이원배 기자 lwb2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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