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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음주운전 사고로 홀로남은 내 아이 누가 책임지나

미국, 음주운전 가해자에 피해자 자녀 ‘양육비’ 지급 법제화
교통사고 피해 유자녀 실태조사·지원정책 미흡한 한국…여야, ‘한국판 벤틀리법’ 추진

입력 2023-04-02 13:26 | 신문게재 2023-04-0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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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음주운전 차량
지난 23일 오후 인천시 서구 청라동 한 도로에서 불에 탄 승용차가 멈춰 서있다. 음주 측정 결과 40대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였다. (연합)

 

사회적으로 ‘음주운전’은 잠재적 살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아직도 유명 인사를 비롯해 일반인의 적발 사례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타인의 일방적인 사고로 인한 뒷감당은 온전히 피해자 몫이라는 점에서 그 고통은 더욱 크다. 특히 미성년자인 자녀가 부모의 사망으로 홀로 남을 경우, 양육비 등 지원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해외에선 입법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상황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아들 내외 잃고 두 손자 키워야 했던 노모…‘벤틀리법’ 제정 최대 기여자로

국회 입법조사처의 ‘음주운전 사망 피해자 자녀에 대한 양육비 지급법’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의 경우, 미국의 ‘이든, 헤일리, 그리고 벤틀리법’(Ethan’s, Hailey’s, and Bentley’s law)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음주운전으로 희생된 피해자에게 부양해야 할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가해자는 피해자의 자녀가 18세가 될 때까지 양육비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벤틀리법’은 미국 미주리주에서 음주운전으로 희생된 부모의 자녀 중 남겨진 큰아들의 이름인 ‘벤틀리’에서 따왔다. ‘이든과 헤일리’는 뺑소니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테네시주 경찰관 니콜라스 갤링거의 두 자녀 이름이다. 우리나라 ‘윤창호법’처럼 피해자 이름을 딴 소위 ‘네이밍 법안’인 것이다. 

 

세실리아 윌리엄스와 손자
세실리아 윌리엄스(Cecilia Williams)와 손자(메이슨·Mason,벤틀리·Bentley)
네이밍 법안은 실제 사건과 관련된 인물이 직접 연관됨에 따라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이다. 벤틀리법 또한 최초로 시행된 테네시주를 중심으로 미전역 20여개(앨리배마·하와이·미주리·뉴욕 등) 주까지 도입을 검토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만큼 아들 내외와 막내 손주를 잃고 남겨진 두 손주를 키워야 했던 세실리아 윌리엄스(벤틀리의 할머니)의 입법 운동에 미 사회가 반응한 것이다.

벤틀리법에 따른 처벌은 명확하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가 미성년 자녀의 부모일 경우, 법원은 관련 요인을 고려한 후 가해자에게 산정한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선고한다. 지급기간은 자녀가 18세에 이르러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다.

무엇보다 가해자가 수감 또는 양육비 지급 불가 상황일지라도 예외는 없다. 가해자는 석방 후 1년 이내 반드시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고, 연체금에 대한 지급 계획도 세워야 한다. 특히 양육비 지급 시점(피해자 자녀 18세 도달시)이 끝나더라도, 남아있는 연체금 지급 완료 때까지 양육비 지급 의무는 지속된다.


◇한국, 피부로 느낄만한 지원정책은 여전히 미흡…여야 “한국판 벤틀리법 필요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1년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916명, 이 중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사람은 206명에 이른다. 문제는 최근 음주운전 교통사고 피해 유자녀에 대한 실태조사는 물론 지원 정책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과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등에 따라 피해가족지원 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만 대상이고 지원 금액도 분기 최대 45만원 수준이다.

결국 한국판 ‘벤틀리법’ 도입이 필요하다는 요구와 함께 정치권도 발 빠르게 움직인 상태다. 여야 모두 ‘한국판 벤틀리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 자녀에게 실질적인 지원과 함께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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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송기헌, 음주운전 사망사고로 가정경제 ‘심각’…가해자, 양육비 채무 규정 명시

우선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강원 원주을)은 “음주운전 사망사고로 인한 피해 가정의 경제적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지만, 정책·보험사 위자료 등은 충분치 못하다”며 ‘한국판 벤틀리법’을 발의했다.

송 의원의 벤틀리법은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 이행법) 개정을 통해 음주운전 등으로 부모를 사망케 한 가해자에게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현행 법률은 미성년 자녀를 직접 양육하는 부 또는 모가 양육하지 않는 상대방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송 의원은 이 법안 제2조 6항 ‘양육비 채무자’에 가해자를 포함해 범위를 확대하고, 구속 등으로 가해자의 양육비 지급이 불가능할 경우 형 집행종료 6개월 이내에 양육비 납부를 시작하도록 규정했다. 미국의 벤틀리법과 가장 유사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송기헌 의원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난해 11월 법안을 준비할 때부터 양육비 이행법에 초점을 맞췄다”며 “저희가 판단하기에 양육비 의무, 청구권은 양육 부모에게만 있고 제3자에게 물을 수 없는 채권의 성질이기 때문에 양육비 이행법이 적절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양육비 채무자’의 범위를 넓혀 지급이 가능하게 했다”며 “법안을 낼 때 중심적으로 본 것은, 우선 소위 심사 등 절차에서 통과될 수 있게 기틀을 잡아두고,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국힘 김성원, 현행법 처벌에만 집중 ‘유자녀’ 지원은 제한적…가해자, 배상명령 대상 포함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경기 동두천·연천)도 “현행법은 음주 운전자 처벌에만 집중해 음주운전으로 희생된 피해자 유자녀에 대한 지원 제도는 매우 제한적”이라며 ‘한국판 벤틀리법’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소송 지연 방지 및 분쟁처리 촉진 내용을 담고 있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송촉진법)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제11제1항의 죄(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치사상)를 배상명령 대상에 포함하고, 배상 범위에는 ‘일실수입’(피해자가 사고로 잃게 된 장래소득) 내용을 담았다. 즉, 법원이 배상명령시 미성년 유자녀에 대해 경제적 필요·자원·생활 수준 등을 고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입법조사처는 “소송촉진법에 의해 형사법원이 양육비 지급을 결정한다면, 민사소송 등으로 인한 피해자 측의 비용 부담 등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또한 “고령의 조부모가 유일한 보호자일 경우, 복잡한 소송 절차 및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양육비를 장기간 걸쳐 지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주훈 기자 jhk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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