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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주 최대 69시간’ 설득 못하고 폐기 몰린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70년 낡은 틀 깰 것’ 선언에도 ‘주 69시간’ 프레임 못 벗어나
연장근로 관리 단위 ‘주’ 단위 이상 변경…‘유연한 근무’ 핵심
“근로시간 유연성 확대”vs“초장시간 압축노동 조장” 노사 엇갈려
윤 대통령 “주 60시간 이상 무리”…50시간 중·후반대 결론날 듯

입력 2023-03-19 14:21 | 신문게재 2023-03-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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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개편안 보완되나'<YONHAP NO-3715>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의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연합)

 

“70년간 유지된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근로시간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며 닻을 올렸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여론의 거센 반발이라는 커다란 암초를 만나 좌초 위기에 놓였다. 유연한 근로시간 도입을 목표로 했지만, ‘주 69시간’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노사 자율로 ‘주’ 외에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다. 이는 기존 ‘주 최대 52시간’을 ‘주 평균 52시간’으로 바꾼다는 의미다.

당시 노동부가 개편방안 QnA를 통해 설명한 사례를 보면, 월 단위 1째주 69시간(연장 근로시간 29시간)을 일한다면 2째주에 63시간(연장 근로시간 23시간) 근무하고, 3~4째주에는 연장 근로가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주 평균 12시간 동안 연장 근로를 해 실 근로시간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만일 연장근로 단위 기간이 월을 넘길 경우 관리 단위기간에 비례한 연장근로 총량을 감축하는 내용도 담겼다. 월 단위 연장근로는 감소 없이 최대 52시간, 분기는 156시간의 90%인 140시간, 반기는 312시간의 80%인 250시간, 연은 625시간의 70%인 440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해 진다. 또 ‘4주 평균 근로시간 64시간 이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또는 1주 64시간 상한’ 등을 통해 건강권 보호에 나서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노사의 대등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대표제를 제도화하고는 내용도 담기로 했다. 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투명한 근로시간 기록·관리에 나서고, 포괄임금 오남용을 막기 위한 대책을 곧 발표하고, 야간근로 건강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이었다. 휴가를 활성화하기 위해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하고, 10일 이상 유럽식 장기휴가 활성화를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추진하는 한편 선택근로제·탄력근로제를 활성화 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발표 당시 노사의 반응은 크게 상반됐다. 경영계는 “근로시간의 유연성과 노사선택권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한국경영자총협회)이라며 환영했고, 노동계는 “초장시간 압축노동을 조장하는 법”(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라며 반발했다.

여야의 반응도 엇갈렸는데, 여당에서는 “주 69시간제는 노동자와 기업이 동반성장 할 수 있는 법안으로, 2030 청년층의 경우 다들 좋아한다”(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는 반응과 “휴식 없는 장시간 노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워라밸’이 없어진다는 이야기”(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러던 중 정부의 우군으로 여겨졌던 이른바 ‘MZ 노조’에서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에 관한 의견문’을 통해 “연장근로 단위관리 확대는 국제 사회 노동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만큼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다수의 여론조사에서도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우려를 표하는 여론이 확인됐다.


◇‘주 69시간’에 근로시간 연장 우려…장기휴가 활성화도 물음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은 왜 여론의 반대에 부딪혔을까. 가장 큰 논란이 됐던 것은 ‘주 69시간’이다. 노동부가 제시한 건강권 보호 대책 중에는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이 포함돼 있다. 하루 24시간 중 11시간 휴식을 보장하면 13시간이 남고, 4시간 마다 30분의 휴식을 보장하면 일 최대 근로 시간은 11시간 30분이 된다. 일주일 중 하루 유급휴가를 보장해 휴식을 하게 되면 6일간 일하게 돼고, 매일 11시간 30분씩 일하면 주 69시간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산재 과로인정 기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노동부는 뇌혈관·심장 질병 발병 전 12주 평균 60시간, 4주 평균 64시간 이내를 초과해 일할 경우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길게 잡을 경우 과로인정 기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 근로시간 단축에도 의구심이 남았다. 지난 2021년 기준 한국의 연간 실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인 1716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1915시간이다. 아직 근로시간이 높은 상황에서 주 52시간제도가 정착되지 못했는데, 제도적 기반 마련 없이 상한선을 높이면 근로시간 단축에 도움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또 장기휴가 활성화를 통해 일하는 날짜를 줄이고, 이를 통해 근로시간을 줄이겠다는 주장에도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컸다. 2021년 기준으로 연차를 모두 사용하는 기업이 절반(40.9%)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시간만 늘어날 뿐 이에 대한 보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기휴가 활성화 대책이 ‘캠페인’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주69시간제 폐기 촉구 기습시위<YONHAP NO-3873>
민주노총 청년 활동가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근로시간 기록·관리 우수 사업장 노사 간담회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를 향해 주69시간제 폐기를 촉구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연합)


◇정부·경영계 “극단적 상황 가정해…핵심은 유연성”

노동부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특정 주에 많이 일하면 다른 주에는 일할 수 없고, 상한을 부각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한다는 주장이다. 권기섭 노동부 차관은 “주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지향점을 깨는 것이 아닌, 실 근로시간 단축이 목표”라며 “극단적 상황은 어느 상황에서나 있을 수 있다. 현재 주 52시간제 내에서도 주중에는 8시간씩 일하고, 주말 이틀에도 12시간을 나눠 일할 수 있지만 그렇게 일하는 곳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박했다.

경영계에서는 효율적인 연장근로 단위기간 선택이 가능해져 현장에 맞는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산업 현장 수요에 따라 노사선택권을 확대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대응해 경영애로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제도개편안이 근로시간 총량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주문량 증가나 업무량 폭증 등 업무집중이 필요한 경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상시적인 주 69시간 근로가 이뤄지는 것이 아닌, ‘일이 몰릴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유연한 근무시간 운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69시간이라는 숫자에 메달리지 말고, 법정 근로시간 총량이 정해진 상황에서 유연한 활용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제도 개선의 궁극적인 목표”라며 “단순히 ‘시간’에 대한 부분이 아닌 총량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입장이었는데 논의점이 달랐던 것 같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주 60시간 이상 무리’에 50시간 중·후반대로 결정될 듯

그러나 여론 반발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개편안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특히 구체적인 상한선까지 제시한 만큼 근로시간 개편안의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정부안이 장시간 근로를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며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입법예고된 정부안에서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노동부가 의견 수렴을 거쳐 내놓을 보완책에는 주 최대 근로시간이 50시간 중·후반대가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 꼽히는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대책 발표 브리핑도 미룬 채 의견수렴에 중점을 두고 제도 개편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노동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의 취지는 경직적인 근로시간 운영 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해 실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만, 현장에서는 제도 악용의 우려가 있다”며 “입법예고 기간인 만큼 제도 취지 구현을 위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견을 들은 뒤 보완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세종=김성서 기자 biblek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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