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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겉도는 ‘질병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지자체는 ‘제도 몰라’

2015년 AI 사태 교훈 이후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도’ 운영
질병 걸린 야생동물 조기 발견, 방역 위한 국내 시스템 허점
일부 지자체 신고 매뉴얼 따르지 않고, 야생동물 질병관리원 검사 수 한정 한계

입력 2023-02-12 13:33 | 신문게재 2023-02-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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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종(種) 안에서 다른 종으로 변이돼 꿈틀대는 단 하나의 바이러스였을 것이다. 동물, 나아가 사람까지 감염시키며 종을 초월한 위협이 되고 있는 인수공통감염병. 미지의 영역에서 자라난 ‘어둠의 병원체’는, 때때로 인류의 ‘무관심’을 숙주삼아 종을 절멸위기로 몰아가는 괴물로 자라난다. 코로나19가 그랬다. 박쥐서 변이된 바이러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것은 인류사에 유례없는 팬더믹까지 야기하며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공포를 배가시켰다. 인수감염병 예방과 신속 방역을 위한 방안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 과제가 됐다. 그러나 질병 걸린 야생동물을 조기에 발견하고 방역하기 위한 국내 시스템은 여전히 허점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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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 ‘감염확산 방지 골든타임’ 기대감 속 2015년 시행


새(조류)에게 있어 ‘죽음의 독감’이 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를 비롯해 메르스, 구제역 우결핵 등 여럿 인수공통감염병들은 종을 넘나들며 인류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국내에선 AI 확산이후 인수감염병 질병관리에 고민이 커졌다. 그 고민의 산물이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도’다. 환경당국은 지난 2015년 조류인플루엔자(AI) 발병 등 야생동물에 대한 질병 관리의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관련 제도를 마련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질병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도’는 질병의 체계적 관리기반 마련을 위한 취지로 야생생물법 개정을 통해 그해 3월부터 시행됐다. 인수공통감염병, 가축 전염병 등을 조기 감시해 확산을 방지하고, 야생동물 개체군을 보호하기 위해 질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거나 걸렸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는 야생동물(폐사체 포함)을 발견해 신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 제도는 질병이 의심되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와 양서류(폐사체 포함)를 대상으로 한다”며 “양서류와 파충류는 항아리곰팡이증이 의심되거나(피부 벗겨짐, 변색 등의 증상) 농약중독에 의해 집단 폐사한(동일지점과 동일시점에 5개체 이상 폐사해 발견된 경우) 동물 등이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도가 인류에 위협이 되는 인수감염병을 조기에 규명하고 신속한 방역이 되게 하는 등 ‘감염확산 방지 골든타임’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적잖았다.



허점 투성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지자체도 모른다

그러나 현장에서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 신고제도’는 반쪽자리로 운영되는 양상이다. 의심 개체가 있다면, 6하 원칙에 따라 질병(의심) 개체를 해당지역 지자체 환경과나 정부민원콜센터 등을 통해 신고하는 것이 매뉴얼이지만 일부 지자체는 이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브릿지경제가 취재한 결과, 대전의 A 구청과 부산의 B 구청 등 일부 지자체는 이 제도의 운영 취지를 숙지 못한 채, AI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관련한 신고만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민원콜센터 역시 제도 문의시 구청의 담당자를 알려주는 대신, 대표번호를 ‘매뉴얼’이라며 안내해 주기도 했다. 시민들은 야생동물이 질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 돼 신고를 하려해도, 제대로 접수가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셈이다.

본보가 환경부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에 요청해 제공받는 ‘2021~22년 야생동물질병관리원 포유류 검사의뢰’ 문서에 따르면 AI와 ASF를 제외한 검사건수는 지난 2021년 알파카(24건), 라마(15건)을 비롯해 66건, 지난해는 산양(28건), 라마(18건) 등 125건이었다. 질병 의뢰종류는 코로나19(6건), 우결핵(115건), 구제역(26건), 요네병(26건), 광견병(1건) 등 5건이었다.

검사 의뢰는 주로 서울대공원 등의 동물원이나 국립생태원 등의 기관서 이뤄졌는데, 신고대상자의 상당수 역시 동물원 관계자 등 야생동물 전문가들이었다. 실제로 일반 시민이 지자체에 신고해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검사한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의 의뢰는 지난 2021년 경주시, 지난해 제주시와 홍성군 정도 있었다는 것이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의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신고자에게는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향후 동 신고제도와 요령에 대해 일반국민들이 널리 알 수 있도록 지방청, 지자체, 야생동물 질병진단 유관기관 등과 함께 지속적으로 홍보·안내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질병 검사 수 한계…질병관리 역량 강화 절실

AI나 ASF를 제외하고 질병에 걸린 동물에 대해 신고자나 접촉자에 대해서 별도의 격리 매뉴얼이나 검사제도가 구비 돼 있지 않는 등 사각지대가 엿보인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격리 매뉴얼, 검사 여부 등) 지적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개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질병에 걸린 야생동물에 대한 관리는 지난 2020년 5월 야생동물 전담기관인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을 중심으로 개편, 국가의 야생동물 질병관리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야생생물법을 개정해 이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개원한지 1년여가 지났지만 AI와 ASF를 제외하곤 야생동물 질병 대응에 있어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AI와 ASF를 제외하고 검사 의뢰받는 191건 중 질병이 확인된 숫자는 43건(우결핵)이었다.

야생동물질병관리원 관계자는 “저희가 (의뢰 받아) 검사한 것은 (그동안) 검사항목 5개에 대해서만 (제각각) 한 것”이라며 “야생동물에 대해선 다른 질병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야생동물에 한해서는 검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결핵, 구제역 등 가축에서 나타나는 질병이 야생동물에서 있는지 확인하는 운영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의 설명이다.

야생동물질병관리원 관계자는 “(신고받은 야생동물에서 검사받은 항목 외) 인수공통감염병의 존재 가능성을 0%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환경당국과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질병청 등과 협의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표준진단법 확대 등을 통한 질병관리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올해 실험심 검사(정도관리) 대상 질병을 확대하고 검사 수행능력 평가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 올해 질병위기 대응체계 고도화 대비해 진단기법·진단절차(검사장비, 시약 등) 등을 표준화 할 방침이다.

야생동물질병관리원 관계자는 “(앞으로) 진짜 위험하다 생각하는 질병에 대해서는 감시 준비체계를 갖추려 하고 있다. 의뢰를 받으면 준비를 해서 그때그때 검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곽진성 기자 pe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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