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경제일반 > 경제일반

[정책탐구생활] 중국 반도체 굴기 견제 '팹4'…피할 수 없는 선택인가

미국, 한·대만·일 반도체 공급망 협력 제안…정부, 말 아끼며 신중 입장
전문가, 중국 보복 가능성 낮고 장기적 관점에서 이익…“참여해야”
중국 반도체 기술에 대규모 투자 한국 따라잡을 것…팹4 통해 기술 격차 벌릴 필요

입력 2022-08-28 13:57 | 신문게재 2022-08-29 14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삼성전자, 세계 최초 3나노 파운드리 양산<YONHAP NO-2961>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초도 양산을 시작했다고 지난 6월 30일 밝혔다.화성캠퍼스 3나노 양산라인에서 3나노 웨이퍼를 들고 기념 촬영하는 정원철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상무(왼쪽부터),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연합)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패권 경쟁 사이에서 한국에 또 하나의 고민 많은 선택지가 놓였다. 바로 미국 정부가 제안한 ‘팹4(FAB4, 팹은 반도체 제조공장을 의미)’이다. 흔히 ‘칩4’로 알려졌지만 정부는 팹4 혹은 4자간(한국·미국·대만·일본) 반도체 협의체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팹4 참여를 제안하고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설명에 따르면 팹4는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대만, 일본 반도체 선진 4개국이 참여하는 반도체 협의체이다. 미국은 설계 및 핵심 장비 분야 선진국이고 한국과 대만은 파운드리(제조공정) 분야에, 일본은 소재와 부품 분야에서 각각 경쟁력이 있다. 이 같이 각 분야에 경쟁력이 있는 국가가 참여해 상호 호혜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자는 취지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이 지금 반도체와 관련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 나라와 양자 간에 활발하게 협력을 하고 있다”며 “다만 좀 더 시너지를 위해 미국 정부가 팹4를 제안해 왔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고 있지만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을 좀 더 잘해보자 이런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경제적인 측면 외에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견제·배제하게 된다. 특히 중국은 자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며 반도체 굴기를 추진 중이다. 반도체 강국의 위치를 되찾으려는 미국 입장에서는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다. 팹4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중국의 반도체 산업 성장세도 견제할 수 있다.



왜 반도체인가…IT뿐 아니라 첨단무기 필수 부품

반도체는 정보통신(IT)산업뿐 아니라 첨단무기에도 빼놓을 수 없는 전략 물자가 됐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우리의 대응 전략-반도체·인공지능을 중심으로’ 보고서는 반도체는 자율주행차와 바이오헬스, 인공지능, 5G, 사물인터넷 등 디지털 전환을 위한 핵심 기술이고 최첨단 반도체의 안정적 확보는 디지털 경제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또 반도체는 각종 첨단무기의 성능을 결정하는 주요한 부품으로 대표적인 민군겸용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한국 입장에서는 ‘팹4’참여가 부담스럽다는 점이다. 경제와 안보동맹 관점에서는 팹4 참여가 유리하지만 반도체와 수출 등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경제 보복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수준이고 이 가운데 40%(홍콩 포함 60%)가 중국으로 수출된다. 중국과의 반도체 교역은 지난해 760억 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다.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 1·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은 수교 이후 서로의 중요한 경제 상대국이 됐다. 지난해 기준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2대 투자대상국으로 한국은 중국의 3대 교역국으로 성장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은 1629억1300만 달러로 수교 전인 1991년(10억300만 달러)에 비해 162.4배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3%에 달한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 ‘ 팹4’에 불편한 심기…경제 보복 우려

정부로서는 한국과 교역 비중이 큰 중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팹4’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9일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부장이 “중·한 양측은 시장 규율을 위반하는 이런 행동을 공동으로 저지하고 양국과 전 세계 산업망·공급망 안전과 안정을 함께 수호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이는 왕이 부장이 미국 주도의 팹4 움직임에 ‘거부감’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입장을 밝히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의식해 4개국 협의체가 아닌 4자 협의체(대만이 정식 국가가 아니라는 것)라고 말할 정도로 중국 정부를 신경 쓰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의 경우 아직 참여할지 결정은 안 됐다”며 “예비 미팅을 하자라는 제안이 있기 때문에 그거는 저희가 한번 들어보고 판단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정부 “참여 미 결정…들어보고 판단” 신중 , 전문가들 “원천기술 강국 미국과 협력이 더 이익”

전문가들은 중국도 한국의 반도체가 필요해 경제 보복 가능성은 낮지만 보복이 다소 있더라도 반도체산업 미래 경쟁력 확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팹4 참여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미국이 원천기술과 핵심 장비를 보유하고 주도권을 쥔 상황에서 회의체 불참에 따른 경쟁력 하락, 공급망 체계 이탈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원호 경제안보팀장은 “한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중요한 플레이어로 팹4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가 빠지는 게 전략적으로 맞지 않다”며 “협의체가 중국 견제 의도가 없지는 않아 보이지만 논의 주제나 내용이 완전히 협력에 관한 내용으로 굳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19일 내놓은 ‘미국 반도체와 과학법의 주요 내용과 영향’ 보고서는 “미국 바이든 정부는 한국과 미국, 대만, 일본 등이 참여하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 형성을 추진 중으로 미국은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를 비롯한 필수 광물, 제약과 함께 반도체를 4대 핵심제품으로 평가, 안정적 공급망 확보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며 “반도체 IP 코어 및 설계, 장비 역량을 갖춘 미국과의 협력 관계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있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반도체 IP 코어는 성능 향상 및 개발시간 단축을 위해 이미 개발되고 검증된 기능블록. 재사용이 가능하며 제3자간의 거래도 가능한 반도체 설계 자산이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연구위원은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지만 제조 원천 기술, 핵심 장비들에는 미국 기술이 다 들어가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만약에 미국에 협력하지 않고 독자 노선을 가겠다고 했을 때 최악의 경우 미국이 우리도 중국과 같은 제재 대상국으로 올릴 수가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중국은 반도체 자립화를 위해 엄청나게 투자를 하고 있고 언젠가는 성공을 할 것”이라며 “성공하고 나면 한국 제품들은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 팹4와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그렇게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원배 기자 lwb21@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