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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통상교섭 기능 산업부냐 외교부냐…치열한 신경전의 이면

산업부 산업·공급망 등 이해 있어야…외교부, 산업부 농·어업 이해 관계 조정 어려워
전문가들도 의견 엇갈려…통상교섭본부 독립화 의견도

입력 2022-04-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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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은 정부의 정책을 조목조목 따져봅니다. 정책이 나오게 된 배경, 이유를 살펴보고 정부가 놓치고 있거나 마련하지 못한 대책을 점검·제시합니다. 그래서 기획 이름도 정책탐구생활로 정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정책탐구 내용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 가겠습니다.

여한구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왼쪽)이 지난 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영상회의실에서 모드 아민 루 압둘라 브루나이 재정경제부 제2장관과 화상 회담을 하고 있다.(연합)

 

지난달 통상교섭 업무 이관을 둘러싼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의 갈등·신경전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교통 정리와 이후 내각 인선 발표로 일단락 됐다. 하지만 정부조직 개편의 가능성이 남아 있어 언제든 다시 부각될 수 있다.

지난달 산업부와 외교부는 통상교섭 업무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신정부 출범을 앞두고 통상교섭 업무를 되가져오려는 외교부는 열심히 논리전을 전개했다. 와중 지난달 말 한 언론에서 미국 정부 관료가 산업부의 통상교섭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한국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산업부는 바로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외교부는 발끈하며 확인 결과 미국 측은 한국 정부 조직 관련 사항은 한국이 결정할 내정 사안으로 통상 기능을 어느 부처가 소관하는지에 대한 선호가 없다는 요지의 ‘분명한’ 입장을 알려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교부는 보도 출처를 산업부로 짐작하며 “국익과 국격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소위 타국 정부 ‘입장’으로 왜곡해 국내 정부 조직 개편 관련 논리로 활용하려는 국내 부처의 행태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난했다. 통상교섭 업무를 놓고 산업부와 외교부 정부 부처간 신경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실 통상교섭 기능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이관을 반복해 왔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통상 기능은 현 산업부(당시 통상산업부)가 담당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통상교섭과 대외경제 관련 외교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시행하기 위해 1998년 통상 업무가 외교부(외교통상부)로 넘어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와 2013년 통상교섭 및 자유무역협정(FTA) 업무를 추가하면서 산업부(산업통상자원부)로 다시 이관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통상교섭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하려고 검토했지만 결국 산업부에 남겼다.

이렇듯 통상교섭 기능이 정부 교체 때마다 산업부와 외교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외교부는 이번 시기에 ‘탈환’을 노린 것이다. 현재 정부조직법(37조 산업통상자원부)은 통상·통상교섭·외국인투자 등은 산업부가 관장하도록 하고 있다.

통상교섭 기능을 갖고 있으면 우선 조직 규모는 물론 위상도 올라간다. 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차관급)에는 3실 2국이 있다. 외교부로 통상교섭 기능이 옮겨 간다면 조직은 크게 작아진다. 반면 외교부는 그만큼 조직이 커진다. 또 갈수록 확대하는 다자간 무역협정·경제안보 측면에서 담당 부처의 역할과 중요성도 커진다.

산업부는 산업·수출·투자에 대한 이해가 통상교섭에서 중요하다며 전문성이 높은 산업부가 통상교섭 기능을 갖고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공급망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통상과 산업의 협업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외교부는 통상의 기본 기능이 부처 간 이해 관계 조정인데 제조업 위주 담당 부처가 민감한 농업과 어업 등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어 통상과 외교는 분리가 어려운 데 업무 영역을 놓고 다투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통상교섭 기능을 어느 부처에 두는 게 효과적인지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진교 선임연구위원은 “통상교섭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하는 게 점수로 따지면 90점짜리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지만 산업부에 두기 보다는 외교부로 이관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통상교섭은 단순히 산업통상이 아니라 안보와 인권, 노동, 환경 등의 문제가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데 산업부가 이 같은 이슈를 다 종합하기에는 제조업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국익을 위한 종합적인 조정을 하는 데는 이해 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에 산업부가 통상교섭 기능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산업부 논리와 같이 수출 주도의 국내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반영해야 하므로 산업부에 통상교섭 기능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경제학부)는 “통상 업무는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의 산업적 이해 관계를 반영하도록 하는 게 맞다”며 “그 관점에서 나중에 협상을 하고 외교 채널이 이용될 수는 있지만 이 자체를 외교 채널이 주도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편 통상교섭 업무를 독립시키자는 목소리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연구실장은 “어느 쪽으로 이관하든 다 장단점이 있다”며 “차라리 통상교섭 업무를 분리시켜 통상교섭본부 등 제3의 기구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상교섭 기능의 독립기구화에 대해서도 전문가 의견은 나뉜다. 서진교 선임연구위원은 “안보와 행정부, 국회와의 관계를 포함해 전체 통상을 아우를 수 있는 독립된 부처를 만드는 일은 장기적으로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가 반영돼야 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혼란만 일으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성태윤 교수는 “산업 이해 관계 반영이 우리나라와 같은 대외 무역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국가 입장에서는 맞다”며 “(독립 기구는)잘못하면 현실 산업하고 동떨어진 부서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통상교섭 기능의 이관 문제는 부처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종=이원배 기자 lwb21@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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