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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성찰 모르는 대한민국, 60년간 무얼 쌓았나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김진표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

입력 2024-07-06 07:00 | 신문게재 2024-07-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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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박정희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까지 10개 정권의 공과를 분석 평가한 책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혹 제기 내용이 담겨, 최근 큰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슈에 묻혀 저자가 정작 강조하려 했던 ‘축적이 필요한 대한민국’, ‘팬덤보다 진정한 정치가 필요한 대한민국’에 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져 보여 아쉽다. 저자는 “지금 이 나라는 무엇을 축적해 왔는지 깊이 성찰할 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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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김진표|사이드웨이
 

◇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준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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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군사 쿠테타가 없었더라도 지금 같은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3선 개헌, 인권 유린, 부정부패 같은 과(過)에도 불구하고, 척박했던 시기에 국민들에게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말했다. ‘확인사살 행정’과 ‘군대식 신상필벌’ 조직관리도 높게 평가했다. 특히 해외에서 경제·과학 인재들을 조국으로 불러들여 경제를 재건한 것을 높이 샀다.


실정(失政)으로는 교육과 주택문제를 들었다. 거의 완전히 시장에 맡긴 탓이라고 했다. 중학 입시를 없앴지만 고교·대학 입시를 그대로 둬 사교육비 수요만 늘렸다고 혹평했다.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해 수급 상황을 안 따지고 분양 위주로 부동산 정책을 추진해 ‘투기판’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우국충정에 쿠테타를 일으켰으나, 어느 순간 스스로를 국가 자체로 일체화한 것이 몰락을 불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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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선출된 노태우 후보지명자와 전두환 당시 대통령. (사진=연합)

 

◇ ‘테크노크라트 시대’를 연 전두환

저자는 전두환 대통령이 뛰어난 경제관료들에게 전권을 맡겨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Single is beautiful”이라며 물가와 금리를 한 자릿수로 잡았고, 금융실명제를 건의하고, 공정거래제도와 중소·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펼쳤다.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밑바탕은 그의 손에서 다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연금 도입도 사공일 경제수석의 진언이 받아들여져 노태우 정권부터 실시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일이 되게 만드는’ 관료나 정치인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통치자에도 진언하고 욕먹을 각오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지금은 역사의식을 가진 유능한 테크노크라트가 필요한데, 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주류적 정서가 되어 있다”며 아쉬워했다.


◇ 정치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노태우

저자가 역대 국회의장들에게 ‘최고의 의회주의자’를 물었다. 1위가 김대중, 2위가 노태우였다. 노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국민통합’이었다. 실제로 그는 야당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자신의 역할이 ‘민주사회로의 안정적인 이양’임을 잘 이해했다. 저자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의 정치가 판치는 요즘 여의도에서, 정치인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알려준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노 정권은 ‘가장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 보수정권’이라는 평도 듣는다. 토지공개념 3법(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부담금제)과 함께 의료보험제도 전 국민 확대, 지역인재 의무채용에 최저임금제도 신설했다. 그래서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이란 평가가 나온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는 노태우를 거치면서 비로소 이해관계자들이 타협·양보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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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정치 지도자 시절의 김대중(왼쪽)·김영삼 전 대통령.

 

◇ 개혁… 하지만 기득권을 못 깬 김영삼

저자는 김영삼 대통령이 ‘단순하고 명쾌한, 큰 승부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취임 첫해부터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 단행 등 굵직한 개혁을 이끌었다. 금융실명제의 경우, 제도 도입 과정에서 저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었던 탓에 안양 일대에서 큰 부자로 손꼽히던 장인도 실명제로 인해 큰 손해를 입었다고 했다.

저자는 다만, 삼당 합당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는 어딘가 미진하고 아쉬움 점이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실명제로 궁극적으로 달성하려고 했던 기업과 금융의 유착 단절,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 재벌과 경제의 개혁 등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도 많은 아쉬움을 내보였다. 기존의 기득권을 깨기에는 대통령의 의지와 역량, 비전이 여전히 미흡했었다고 총평했다. 그렇게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 김대중… 가장 존경하는,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시절에 IMF와의 재협상을 요구했다. 멀쩡한 기업들이 고금리에 쓰러지고 서민들 고통이 극심할 것을 예견했다. 집권 후 재협상은 이뤄졌고, 이후 그는 4대 개혁을 밀어 부쳤다. 자유 경쟁과 책임 경영의 원칙 아래 금융과 기업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금융권 회생을 위해 공적자금을 지원했고,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다그쳤다. 가장 고통스러운 노동개혁도 이뤄냈다.

그는 적재적소 실용인사로 이런 위기와 난제들을 극복해 갔다. 유·불리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 기준이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국민보다 반 보 앞서 간다’는 원칙을 실천했다. 저자는 김대중을 ‘멀리 크게 보면서도 세세한 것까지 챙기는’ 원모심려(遠謀深慮)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우리가 가져본 대통령 중 최고였다”며 가장 준비된, 가장 특별한 대통령이었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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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당시 청와대 집무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 반대편 생각도 수용한 ‘탈 권위’ 노무현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점을 ‘반대 생각까지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수평적 소통이 주를 이뤘고, 상명하복 대신 토론과 논쟁이 활발했다고 전했다. 수평적 탈 권위의 리더십, 토론의 리더십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은 우리 정치사에 노무현이 유일하다고 단언했다. ‘존경받는 김대중’의 리더십과 ‘사랑받는 노무현’의 리더십이 조화되는 대통령을 아쉬워했다. 저자는 ‘참여정부는 실패한 정부’라든가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부정했다. 시장과 경제에 대한 무지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기자실 대못’으로 대표되는 언론과의 전쟁, 수급을 통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부동산 정책은 아쉽다고 토로했다. 세금으로 단박에 부동산 문제를 풀려했던 당시 정부에 공급 위주 정책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전 국회의장 김진표. 최근 이 책의 극히 일부인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만 부각되는 느낌.


◇ 정치인의 결단이 아쉬웠던 문재인

저자는 문재인 정권의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아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등 5대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많은 정책이 로드맵대로 시행됐지만, 보육과 교육 분야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방대학 경쟁력 이슈가 여전하고 어린이집 대란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원전 폐기 정책도 “신재생 에너지 20% 달성을 전제로 한 것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저자는 문 정부가 문화적 성취나 코로나 방역 등에서 성과를 냈지만, 피아를 구별하는 정치라는 ‘치명적 실수’를 했다고 비판했다. 조국 사태처럼 양보 없는 대결로 ‘통합의 정치’에 실패했다며 아쉬워했다. 부동산 정책 역시 너무 이념적으로 접근한데다 공급정책에서 실기(失期)해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법조인의 원칙이 아닌 정치인의 결단을 내렸다면 어땠을까”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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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 사전 검증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이명박·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이 정동영 후보를 압도하고 대통령이 된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작용했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그 때와 한참 달라져 있었다. 정치적인 것에 매달리기 보다는 철저히 실용적, 실리적인 것에 몰입했던 이명박은 그래서 무리하게 정책을 강요하는 일도 잦았다고 저자는 회고했다. 다만, 그런 실리적인 정권 운영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그의 실리주의가 ‘공익’ 보다는 ‘사익’에 치중되었다는 협의가 짙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탄핵’이라는 큰 화두를 남겼다. 저자는 심각한 부와 기회의 불평등 속에서 ‘경제민주화’는 매우 훌륭한 정책적 기획이었으나 “빚내서 집사라”는 ‘초이노믹스’는 가계부채 급증을 부른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여야 모두 당 대표 일극의 권력구도로, 오로지 ‘오너’의 의중과 심기에 맞춰 행동하는 우리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촛불민주주의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효능감이 권력에 대한 올바른 감시가 아니라 ‘팬덤’으로 옮겨가고, 그 팬덤이 의회를 좌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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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 “NO”하는 측근이 없는 윤석열

저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를 ‘비토의 정치’로 규정했다. 초기에는 개헌과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에 긍정적이라 기대가 컸으나 아직 진전이 없다며 의지와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만난 자리에서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에 당혹했음을 술회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강력하게 ‘NO’라고 진언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저자는 “의회주의의 본령은, 주어진 제약 조건 아래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정치’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극렬한 진영 갈등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일관성 있는 저출생 대책을 추진하기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출산·보육·주거는 나라가 책임지겠다고 헌법에 못을 박아야 한다고 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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