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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아직도 편견에 갇혔나요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박상현 '친애하는 슐츠씨'

입력 2024-06-15 07:00 | 신문게재 2024-06-1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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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례와 그것을 이룩해 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의 ‘슐츠’는 우리에겐 주인공 ‘챨리 브라운’로 익숙한 만화 <피너츠>로 유명세를 떨쳤던 미국의 만화가 찰스 슐츠다. 그는 백인과 남성 일색이던 만화에 흑인과 여성 캐릭터를 처음으로 넣었던 만화가였다. 저자는 그의 이름을 빌어,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세상에 많은 편견과 차별을 지적하고 그것이 대부분 우리의 ‘무지(無知)’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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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씨|박상현|어크로스

 

◇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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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만화가 찰스 슐츠는 여성과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데 남다른 기여를 한 인물로 기억된다.

 

챨스 슐츠가 <피너츠>에 처음으로 흑인 캐릭터 ‘프랭클린’을 등장시킨 것이 1968년 7월이었다. 킹 목사가 암살 당한 이후였다. 슐츠는 세 아이의 엄마인 흑인 여성으로부터 흑인 아이를 넣어달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받았다. 당시 시대 상황상 사실상 어렵다는 답장을 보냈음에도 그 여성은 주변에 도움을 청해 그것이 얼마나 흑인 아이들에게 힘이 될 것인지를 설득시켰고, 결국 주인공 찰리 브라운의 친구로 프랭클린이 등장하게 된다.

흑인에 대한 편견이 만연했던 시기였기에 슐츠는 약간의 꼼수를 썼다. 프랭클린의 등장 장소를 바닷가로 잡았다. 당시만 해도 흑인은 멀리 바닷가에서나 수영이 가능했다. 흑인은 수영을 못한다는 오해마저 생길 정도였다. 아이 아버지가 전쟁에 나갔다는 내용도 슬쩍 넣었다. 흑인들 역시 국방의 의무를 다하며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

 


◇‘결핍의 덫’과 서머 멜트(summer melt)

돈이나 시간이 부족하면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다. 이른바 ‘결핍의 덫(scarcity trap)’이다. 미국에서 흔한 ’서머 멜트‘가 대표적이다. 고교 졸업생 중 10~30%가 입학허가까지 받아놓고도 경제적 문제에 심지어는 서류 몇 가지를 제출하지 못해 대학을 가지 못한다. 타고난 능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 탓이 크다.

대학 역시 배우려는 가난한 학생은 외면하고, 잘 사는 아이들을 위한 각종 혜택을 늘리는 데 혈안이다. 한국 의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의대 진학생 중 20% 정도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데, 그런 학생들을 위한 장학제도가 있지만 기부자들이 ‘이 장학금은 반드시 수업료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거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생활비로 쓰면 안된다는 족쇄를 거니 학생들은 ‘아르바이트 전쟁터’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 남성과 여성의 궁극적인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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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여자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는 남성의 골격을 거졌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수치심이 느껴질 수 많은 고초를 겪었다.

 

남아공의 여자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는 18세인 2009년부터 걸출한 성적을 올렸다. 문제는 여성답지 않은 그의 골격이었다. 경쟁 선수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는 인권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계육상연맹으로부터 성별 검사를 받았다. 연맹은 결과를 함구했지만 영국의 한 신문이 그가 ‘간성(間性, intersex)’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까발렸다.

이어 스포츠중재재판소는 세메냐에게서 지나치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나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일정 수준까지 수치를 떨어트리지 않으면 여성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황당한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이 호르몬의 양과 경기력을 연구해보니,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된다고 해서 모든 종목에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성 차별 흑 역사가 만들어졌다.

 


◇ 옷과 주머니에 깃든 여성 차별

예로부터 남자 옷에만 주머니가 많았다. 중세 이후 유럽 남자들이 바지 옷을 많이 입게 되면서, 주머니는 남자 옷의 일부가 되었다. 1550년대부터는 아예 안쪽으로 꿰매 넣은 ‘바지 주머니’가 탄생했다. 이후 치마를 입는 사람, 즉 아내는 수동적인 존재로 치부됐다. 영어권 표현 중에 ‘이 집에선 누가 바지를 입나(Who wear the pants in this family)’라는 말은 누가 경제권을 쥐고 있느냐는 뜻이다.

주머니가 많은 바지는 높은 신분을 의미했다. 도제나 하인, 노예에겐 언감생심이었다. 남성에 치인 여성들은 주머니 대신 손가방을 드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성 핸드백의 효시인 ‘레티큘(reticule)’이 등장한 게 18세기 중후반이다. 하지만 이 때도 레티큘을 들고 다니는 여성은 마치 속옷(주머니)을 내놓고 다니는 천박한 존재로 여겨져 신붓감으로 퇴자를 맞기 일쑤였다. 여성에게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 건축물의 ‘가치’를 다시 본 ‘프리츠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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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출신의 첫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가 디자인 한 아프리카의 학교 건물.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Pritzker Prize)의 2022년 수상자는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였다. 그때까지 아프리카 출신 건축가의 수상은 없었다. 백인 남성 수상자가 입도적이었고, 여성 수상자도 우리나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디자인한 자하 하디드가 2004년에 유일했을 정도 대단히 배타적이었다. 그럼에도 케레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의 건축물이 이전의 수상작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건물들은 아름답지만 작고, 멀리 아프리카 마을에 위치해 있다. 유난히 학교 건물이 많았다. 프리츠커는 아프리카 건축이라는 지역적 다양성 외에도 그 건축물들이 가지는 ‘가치’를 재해석한 것이다. 돈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잘 빠진 서구 모더니즘 건물과, 제3세계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 환경과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건물 중 어느 쪽이 더 가치가 높은지를 프리츠커도 뒤늦게 인식한 것이다.

 


◇ 스포츠는 남성들만의 전유물?

보스톤 마라톤을 처음 완주한 여성은 로버타 깁이다. 하지만 1966년에는 여성의 마라톤 참여가 허가되지 않아 기록도 남지 못했다. 여자가 장거리를 뛰면 자궁이 떨어져 나간다는 등 황당한 이유였다. 1년 뒤 캐서린 스위처가 차별에 과감히 도전했다. 이름까지 남자인 양 고치고 참가해 기어이 코치와 애인의 도움으로 풀 코스를 완주했다. 50년이 지난 2017년에 그녀는 70세의 나이에 다시 보스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환호를 받았다.

왕년의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도 슐츠의 도움으로 차별을 극복했다. 1970년대 초 그녀는 미국에서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들이 성별을 이유로 학생의 스포츠 활동에 제한을 두지 못하게 하는 ‘타이틀 나인’이라는 연방법이 현장에서 실행되도록 애썼다. 스포츠 애호가였던 슐츠가 그녀의 여성스포츠재단의 이사직을 흔쾌히 수락했고, 자신의 만화에도 스포츠에 뛰어난 서질을 가진 여자 아이들을 묘사하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 ‘좋은 여성상’에 관한 편견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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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화배우 조니 뎁은 자신의 결혼 생활 중 폭행 사실을 가리려, 전 부인을 ‘악마적 여인’으로 몰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영화 배우 커플 조니 뎁과 엠버 허드는 아쉽게도 결혼 1년여 만에 원수 지간이 된다. 이어 허드는 거짓말쟁이에 악마 같은 소시오패스 여인으로 낙인 찍힌다. 여러 차례 폭행까지 당한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그녀는 한 신문 칼럼에 쓴 ‘나는 가정 폭력을 대표하는 공인이 되었다’는 표현 때문에 큰 고초를 당했다. 뎁은 이 글 때문에 말도 못할 피해를 입었다며, 자신이 마치 피해자인 양 그녀를 몰아 세워 마녀사냥을 했다.

영화계에서 남자 배우는 악역을 맡아도 인기를 끌지만, 여자 배우가 그 역할과 동일시되면서 계속 욕을 먹는 경향이 짙다. 대중들은 허드에게도 착하고 죄 없는 피해자 혹은 남자를 속이고 괴롭히는 소시오패스 중 하나의 역할만 허락했다. 유별난 남자를 ‘독특한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여자가 유별나면 17세기에는 ‘마녀’, 21세기에는 소시오패스가 되는 게 현실이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이 여전하다.

 


◇ 차별받는 여배우의 ‘큰 언니’ 케이트 윈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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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릿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수모와 차별을 겪는 약한 여배우들을 위한 큰 언니 역할을 자임해 헐리우드를 변화시켰다.

 

대작 영화 ‘타이타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릿은 17세에 처음 출연한 영화에서 예정에 없던 노출 신으로 상처를 입었다. 덕분에 그는 여자 배우에게 촬영 현장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와 기화가 얼마나 중요하지를 깨달았고, 약한 여배우들이 촬영 현장의 폭력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하겠다며, 스스로 여배우들의 큰 언니를 자임하고 나섰다.

덕분에 현장에서 여배우들에게 무언의 압력이 이뤄지고 있음이 널리 알려졌고, 이후 변화가 시작됐다. 촬영장에서 여배우를 보호하는 역할의 ‘인티머시(intimacy) 코디네이터’가 생겨난 것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여성이 자신의 장래를 쥐고 있는 남성들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 그러고도 오히려 남성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불평등한 구도”라며 “우리 세대는 이런 구도를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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