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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 모든 게 정말 기후변화 탓일까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마이크 흄 '기후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입력 2024-07-13 07:00 | 신문게재 2024-07-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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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AFP=연합)

기후위기를 둘러싼 종말론적 관점이 팽배하다. 곧 지구가 어떻게 될 것 같은 공포감이 만연하다. 이른바 ‘기후주의(Climatism)’가 지구와 인류에게 늘 부정적인 메시지를 준다. 기후주의는 기후변화가 더 많은 가뭄과 기근, 집단이주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런 양상은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준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쟁과 이주, 인종차별을 넘어 다른 형태의 ‘파괴’가 잇따를 것이란 암울한 미래상을 던져 준다. 온갖 부정적인 사고의 원인을 기후변화 때문으로 모는 경향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저자는 그러나 기후주의 이론이 100% 맞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후위기 종말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보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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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전부는 아니다|마이크 흄|풀빛

◇ ‘기후’에서 ‘기후주의’로

저자는 ‘기후주의’를 ‘사회적 경제적 생태학적 현상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이 곧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라는 확고한 신념’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런 신념은 자칫 사회 정의와 정치적 자유, 미래의 번영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이동성과 갈등, 도시 디자인과 교통 계획, 관광, 인구 출신율 등의 문제들이 모두 ‘기후화’로 귀결되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열대 저기압 때문에 생긴 홍수가 단순히 기후변화의 결과로 설명되거나, 방글라데시 일부 해안에서 일어난 바닷물 범람이나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불도 기후변화 탓으로 단순화되곤 한다. 재난의 지배적인 원인은 ‘자연적인’ 기상 위험 요소인데, 기후주의자들에게 거의 모든 기상 재난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결과로 판독된다.

저자는 “신의 행위가 이제 사람의 행위로 대체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30년 이상에 걸쳐 기후변화 속도를 제한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장기 목표지만, 그것을 전쟁을 예방하거나 인종차별주의를 완화하거나 홍수를 억제하기 위한 개입으로 오해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모든 것을 기후변화 탓으로 돌리고 싶은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변화가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때로는 ‘진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어떤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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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AFP=연합)

◇ ‘지구 온도’라는 숭배물

GDP(국내총생산)가 경제 건전성을 정의하는 지표로 20세기 후반 동안 급부상한 것처럼, ‘지구 온도’는 비교적 최근에 세계 기후의 건전성을 정의하는 지표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저자는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연구와 사회과학 연구에서 일어난 수 많은 변화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기후와 기후변화에 책임을 돌리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그러면서 어느 새 지구 온도 수치 자체가 ‘숭배물’이 되어 버렸다고 꼬집는다. 마치 기후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일한 조건인 것처럼, 미래를 기후과학 예측을 통해서만 상상하는 이른바 ‘기후 환원주의’ 사고 방식이 팽배해 졌다며, 그 결함과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기후변화가 어느 새 완전한 이념으로 변신해 ‘기후주의’를 만들어 냈다”고 비판하면서 “이것은 이제 인종차별주의 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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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AFP=연합)

◇ 왜 과학마저 기후주의에 빠지나

저자는 “사실상 금융 부문을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비현실적인 배출 시나리오가 제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이것이 기후주의 이념이 쉽게 빠지는 위험”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 10년 간 많은 시나리오들이 미래 기후 변화 가능성을 과대평가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연구자들이 널리 활용해 온 RCP(대표농도경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는 미래 지구 온도가 섭씨 2도(RCP 2.6) 이래로 상승한다는 것이고, 최악의 시나리오는 석탄 연소가 거의 줄지 않아 21세기 말경 섭씨 4도 또는 5도(RCP 8.5) 수준으로 더 온난화해 지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무의식적으로 RCP 8.5가 기준사례로 적용되고 있다며 “실제 이런 시나리오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기후 과학이 미래 기후 영향을 과도하게 높게 예측하는 편향을 보이면서 의도치 않게 기후주의 이데올로기를 지탱하는 도구가 되고, 결국 잠재적으로 기후 정책을 잘못 이끄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과학자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극적인 결과를 제시하고 대부분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기후변화의 영향 가운데 부정적인 것 들만 강조해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가장 위험한 사례는 ‘손 쓸 수 없는 시점까지 겨우 ( )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식의 왜곡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기후과학이 기후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대중의 도전과 정밀 조사, 관리감독에 대한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후주의가 표현하는 ‘종말’은 허리케인, 산불, 홍수. 가뭄, 얼음 폭풍과 같은 극적이고 강력한 서사의 기후재난 요소들로 설명되기에 더더욱 사람들을 이끌리게 만든다. 그래서 저자는 “기후주의는 우리가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방식에 색을 입히는 색안경과 같다”면서 “기후주의 이념 때문에 기후과학이 왜곡되어선 안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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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EPA=연합)

◇ 기후주의의 다섯 가지 위험

저자는 ‘기후주의가 위험한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기후주의는 항상 ‘환경결정론’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태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수 많은 다른 요인들이 배제된다는 얘기다. 둘째, 추상적인 특정 수치 목표가 언제까지는 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 탓에, 위험천만한 ‘시간 부족 담론’이 만들어 진다. 시간이 없다니 서둘러야 하고 결국 단기적 사고가 팽배해질 수 밖에 없다.

셋째, 기후변화의 비 정치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켜 자유와 평등, 다원주의 같은 중요한 정치적 가치를 공공 정치의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다. 넷째, 기후주의 안에 도사리고 있는 비 자유적, 반 민주적 충동을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기후주의의 근시안적인 세계관 때문에 비뚤어진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잦아질 수 있다.

저자는 “좁은 시야로 만든 기후 관련 정책 목표들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일이 그릇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과학과 사회과학이 무비판적으로 기후주의에 빠져 들어선 안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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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 기후주의의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기후변화를 막는다는 하나의 정책 목표에 집착하는 바람에, 기후주의 이념은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복지 목표와 윤리적 의무를 주목하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2015년 12월 채택된 파리기후협약에 대해서도 “특정 수치 범위 내로 지구 온도를 조절하겠다는 목표가 광범위한 복지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는 결과를 낳았다”며 아쉬워했다.

저자는 이에 기후주의의 극단적 과잉을 해독할 방안들을 제시한다. 과학적 불확실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시한부주의를 완화하고, 겸손의 기술을 장려하고,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다원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주의가 가진 ‘과한 자신감’과 특정 숫자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후변화의 상상 속에 자리한 ‘벼랑 끝’에서 추락할 것이란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미래의 모든 복합적인 돌발 상황을 관리할 전략적 기획 능력에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사회생태적 복지 성과를 나타내는 전 세계를 범위로 한 지표를 통제하려 애쓰기 보다는, 그런 복지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정책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기후주의의 문제는 지구 온도를 다른 모든 목표보다 우선시하는 까닭에 절충안을 찾는 일이 방해받는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저자는 심지어 그런 절충안을 논하는 것조차 패배주의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잘못된 환경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기후주의의 추진력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지속가능 발전목표’ 들을 달성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하면서, 그것이 ‘지구온난화’라는 맥락을 인식하는 가운데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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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연합)

◇ 그래도 계속되는 비판들

저자는 여전히 기후주의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논거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기후과학이 헛된 공포를 조장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과학적 주장을 신중하게 판독하고 비판적으로 따져야 하며 오로지 잠정적으로만 수긍해야 한다”고 맞섰다. 기후변화는 실존적 위험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기후변화로 생기는 위기는 심각하지만, 기후변화가 인간 생명을 싹 쓸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며 지구상 모든 생명은 말 할 것도 없다”고 맞받았다.

저자는 “기후변화를 막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자”고 독려했다. 빈곤 퇴치와 기아 근절, 양질의 교육,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확보,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 성장 같은 ‘지속가능한’ 발전목표에 좀더 집중하자는 것이다. 특히 기후주의 이념을 자본주의 이념의 대척점으로 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저자는 “과학이 정치적인 이념의 무기로 전락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한 사람이 기후 공포조장주의자나 기후 반대파 또는 그 밖의 무엇이 되었든, 어떤 딱지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입장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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