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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왓챠독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 주는 슬픔

[#OTT] 왓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
일본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주인공 오스칼의 실제 모델로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외모로 유명했지만 미소년의 아이콘이 된 후 불행시작
비요른 안드레센의 화려했던 과거와 상대적으로 쓸쓸한 현재를 되짚어
최근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2019)에서 백발의 노인으로 등장해 화제

입력 2023-06-21 18:00 | 신문게재 2023-06-2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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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죽음
비요른을 일약 스타덤에 앉힌 영화 속 모습. (사진제공=왓챠)

 

전세계를 돌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을 찾아나선 감독이 있다. 밀라노 출신의 귀족이자 백작이었던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인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읽고 제작사와 주변의 반대에도 의지를 꺾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원작은 노년의 유명 작곡가가 10대 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보수적인 당시의 분위기와 정서상 소년은 소녀여야 했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 했지만 사실 비스콘티 감독은 동성애자였다. 유복한 집안을 등에 업고 타고난 취향과 지적 호기심을 한편의 영화에 갈아넣은 그는 당시 명감독으로 칭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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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촬영에 대해 그는 당시를 “학교를 가지 않아서 좋았다”고 기억한다. 자신에게 쏟아진 끈적한 시선 따위는 전혀 모르는 순수한 열 여섯이었다. (사진제공=Films Boutique)

 

소설에 나온 10대 초반의 미소년을 캐스팅하기 위해 비스콘티가 스웨덴에서 오디션을 열었을 때 비요른 안드레센은 문을 열고 들어온 6번째 ‘상품’이었다. 그저 피아노를 연주하고 고작 10개월 차이가 나는 ‘반쌍둥이’ 여동생과 노는 게 마냥 좋았던 평범한 소년이었지만 외할머니는 ‘유명인의 보호자’ 행세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쨌거나 조각 같은 외모와 원작에 표현된 회색빛 눈동자를 지닌 비요른은 비스콘티 감독의 심장을 저격했다. 원작에 나온 이미지보다 키가 컸지만 그 조차도 수정해 캐스팅할 정도였다.

주인공 타지오 역할이 확정되자 영화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스태프가 모두 동성애자로 이뤄졌던 촬영팀에게 감독이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모두가 무서워하는 성격이었다는 그는 “절대 성적인 접촉을 하지 말 것”이란 특명으로 내렸다.

3년간 모든 초상권을 자신이 가진 것도 오롯이 비요른의 황금기를 독차지하고 싶어했던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비요른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게 “걷고 멈추고 돌아선 뒤 웃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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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흥행은 이루지 못했지만 명작으로 불리는 ‘베니스에서의 죽음’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왓챠)

 

왓챠에서 독점 서비스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은 평생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 남자의 다큐멘터리다. 죽음을 앞둔 음악가가 요양차 들린 리도 섬 호텔에서 한 소년을 우연히 마주치며 벌어지는 순정의 세레나데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비스콘티 감독이 남긴 불멸의 명작으로 완성시켰다. 베니스에서의 촬영에 대해 비요른은 “학교를 가지 않아서 좋았다”고 기억한다. 자신에게 쏟아진 끈적한 시선 따위는 전혀 모르는 순수한 열 여섯이었다. 전세계 최초 프리미어에는 당시 영국 앤 여왕이 참석했고 다음해 열린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는 모두가 비요른 안드레센의 이름을 외쳤다. 

이름이 생소하다면 일본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주인공 오스칼을 떠올리면 된다. 영화 공개 직후 일본에서만 매일 한 자루의 팬테러가 쇄도하자 외할머니는 “돈도 벌고 새로운 세상도 탐험하라”며 비요른 만드레센의 등을 떠밀었다. 

그는 일본에서 최초의 아이돌로 불리며 지금도 회자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서양스타로는 이례적으로 일본어 음반을 발매했으며 콘서트를 열었을 정도다. 그는 밤에만 무려 7~8곳이 넘는 무대에 올라 팝송을 부르거나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에 출연한 60대의 비요른 안드레센은 “당시에 기분이 좋아질 거라며 빨간 알약 두세 알을 매일 먹었다. 그걸 먹으면 기억이 사라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팬덤을 겪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됐다는 트라우마를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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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촬영 중에 연기를 지도고 하고 있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사진제공=Films Boutique)

 

사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본 관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의 비요른을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선 노년의 비요른은 깊은 주름과 은발의 수염 그리고 긴 머리를 한 채 늘 담배를 핀다. 흡사 도인과 같은 모습을 한 그는 가족과도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고 걸레 수준의 이불을 덮고 가스렌지를 키고 생활해서 집주인에게 쫓겨날 신세다.

한때는 연기학교에서 만난 여자와 가정을 이뤄 남매를 낳았지만 어린 아들이 10개월도 안돼 돌연사하자 가족은 파탄났다. 그는 덤덤히 “딸은 남동생도 잃었지만 동시에 아빠도 빼앗겼다”며 눈물을 흘린다. 성인이 된 딸과는 가끔 만나지만 여전히 먼저 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상처로 우울증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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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중반인 그는 “아들이 살아있다면 32살”이라며 여전히 슬픈 눈을 한 채 카메라를 응시한다. (사진제공=Films Boutique)

 

자아가 형성되기 전 자신을 떠난 어머니가 자살하고 외할머니는 자신을 돈벌이로 이용했다는 걸 알고서 그는 망가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일찍 드러난 그를 보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비요른은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을 통해 자신을 박제하고자 했던 대중의 심리를 날카롭게 저격한다. 하지만 피해자 코스프레 만큼은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찬란한 외모 뒤에 숨겨졌던 예술혼이 불타오른 건 되려 깊은 주름과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 덕분인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 명성과 환호에 지친 탓에 고작 5편의 필모그래피 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그는 여전히 연기를 즐긴다. 영화 ‘미드소마’에서 5분 남짓의 출연이 다시금 회자 되는 것도 그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었던 덕분이지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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