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방송·연예

[비바100] 인간은 사소한 것에 분노한다, 고로 무너진다!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OTT] 할리우드 접수한 동양계 배우들 총출동한 A24 제작의 '성난사람들'
넷플릭스 화제작으로 등극,원제는 'Beef'

입력 2023-04-26 18:30 | 신문게재 2023-04-27 11면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23042618
영화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만든 제작사 A24 작품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 이성진이 감독 및 제작을 맡은 ‘비프’의 한 장면. 30분 분량의 부담없는 구성으로 매회 어디로 튈지 못하는 이야기가 몰입감을 더한다.(사진제공=넷플릭스)
 

제목만 보고 마블링 가득한 소고기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넷플릭스 ‘비프’(Beef)의 출연자들은 가운데 손가락은 애교 수준이고 앙숙이었던 동서와 급 커밍아웃을 하는가 하면 백수 남동생과 살을 섞는다. 시작은 난폭 운전이었다. 무려 3번이나 물건을 반품하러 간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 대니(스티븐 연)는 영수증이 없다는 이유로 환불을 거절받는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그 상황에서 안전띠는 엉키고 후진하려던 순간 갑자기 고급차량인 벤츠 SUV가 아슬아슬 스치는가 싶더니 신경질적인 경적을 울리며 사라진다.

 

낡은 트럭을 몰던 대니는 이웃들의 마당을 짓밟고 쓰레기통을 치면서까지 쫓아가지만 결국 속도에서 지고 만다. 다행히 외워둔 차 번호를 조회해 벤츠 운전자가 성공한 아시아계 원예 사업가인 에이미(앨리 웡)임을 알게 된다.

 

BEEF
국내 팬들에게는 ‘에이미 파리에 가다’로 익숙한 애슐리 박의 존재감도 남다르다. 그는 이웃사촌인 에이미를 질투하는 동남아(동네 남아도는 아줌마)로서 자격지심이 있지만 이후 시누이인 조던(마리아 벨로)과 커밍아웃해 연인관계가 되는 복잡한 캐릭터를 소화한다.(사진제공=넷플릭스)

 

국내 개봉명은 ‘성난사람들’이지만 원제는 ‘비프’다. 소고기라는 뜻 말고도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란 뜻으로도 통한다. 각본을 쓴 이성진 크리에이터는 자신이 직접 겪은 난폭운전에 현대인이 겪는 분노와 원망, 짜증, 슬픔 등을 녹여냈다.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성난 사람들’은 다크 코미디를 표방한다. 사실 대니는 미국에 이민 온 부모를 둔 가족의 장남이다. 매사에 성실하고 근면하지만 갱스터가 된 사촌과 코인에 미친 채 한탕만 노리는 동생 등 가족을 건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나마 교회에서 만난 첫 사랑은 찬양팀의 리더와 결혼해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는 터다. 

그렇게 재미교포 2세대인 대니는 비빌 언덕이 없는 존재다. 부모는 한국에서 진 빚 때문에 미국으로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자신의 기술 역시 한인사회에서나 전전할 뿐 전문적이지 않다. 그가 대형마트에 환불하려던 건 자살하기 위해 피우려던 숯그릴이었다.

성난사람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 대니(스티븐 연)와 성공했지만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업가 에이미(앨리 웡) 사이에서 벌어진 난폭 운전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며 그들의 일상마저 위태로워지는 이야기를 담은 ‘성난사람들’의 공식포스터.(사진제공=넷플릭스)

 

베트남계 미국인 이민자인 에이미 역시 한량인 남편과 어린 딸을 먹여 살리느라 청춘을 다 바쳤다. 유명 예술가인 아버지를 뒀지만 예술적 DNA는 물려받지 않은 남편은 한량의 삶을 살고 있다. 그나마 하고 있는 건 금발의 미녀직원과 정신적 바람이다. 시어머니는 사랑보다 가풍‘만’ 보고 시집 온 며느리가 늘 탐탁치 않다. 번듯하게 키운 브랜드를 대형매장의 여성 CEO에게 넘기기 위해 2년 간 공들였지만 잘 풀리지 않은 그때 하필이면 똥차 대니의 트럭이 갑자기 후진을 한 것이다.

BEEF
‘성난 사람들’이 큰 인기를 끌자 극중 사촌형 아이작으로 나온 데이비드 최의 발언이 다시 재조명됐고 이에 제작자와 출연배우까지 나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과거 마사지사와 관련된 상상을 실제인 것처럼 발언해 논란이 됐다.(사진제공=넷플릭스)

 

상황만 보면 두 사람 모두 그저 일진이 안 좋았을 뿐이다. 하지만 대니는 주소를 조회해 수리공인척 들어가 화장실에서 방뇨를 하고 에이미는 대니의 사업후기에 악플을 달아 밥줄을 끊어놓는다. 설상가상 자신이 아닌 쭉빵 여직원의 사진을 도용해 미인계를 써 혼줄을 내려던 인스타그램에 대니의 남동생이 진짜로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두 사람은 불륜 관계로 발전한다.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대니는 대노하고 결국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에이미의 남편에게 접근해 소울메이트가 됨으로서 ‘성난사람들’의 복수는 점차 가늠할 수 없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실력파 아시아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이례적인 캐스팅과 정서 자체가 한국적이어서 이질감이 없다. 제목과 함께 등장하는 타이틀 아트워크는 대니의 사촌형으로 나오는 배우이자 화가인 데이비드 최가 직접그린 그림이다. 에이미의 남편인 죠셉 리 또한 화가로 출연 배우들의 줌 미팅때 서로의 그림이 거실 뒤편에 걸려있는 훈훈함이 연출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BEEF
재미교포의 삶과 한인교회의 끈끈함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 ‘성난사람들’의 한 장면.(사진제공=넷플릭스)

 

낯선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거친 운전 사건의 여파는 사실 후반부로 갈수록 과한 감이 없지 않다.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아 좌절감을 품고 사는 대니와 자수성가했지만 허울뿐인 사업가 에이미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 ‘분노의 질주’ 한 장면처럼 사막 위로 추락한다. 누가 봐도 즉사해도 무방하지만 한 사람은 발목이 부러진 채, 한 사람은 어깨가 상했지만 살아남는다. 처음으로 툭 터 놓고 대화한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해 사막을 걸어나와 살아남는다. 

하지만 결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10개의 에피소드에는 이 세상의 별 만큼이나 얼키고설킨 오해와 주변인들의 질투 그리고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나오는 상황들이 연속된다. 그리고 가장 훈훈하고 아름다운 엔딩이 연출된다. 그냥 한편만 보고 말 거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결코 한편만 볼 수 없게 만드는 게 OTT만의 특징이라지만 ‘성난사람들’은 그 정점을 찍는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