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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니체, 바그너, 미얀마…SMK인터내셔설 김성민 회장 “의연하게, 파르지팔처럼!”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4-09-13 18:00 | 신문게재 2024-09-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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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초상 앞에 선 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

“대학시절 푹 빠졌던 니체가 언급한 바그너에 빠져들었어요. 벌써 40년도 전의 일이죠. 대학시절부터 니체와 바그너, 헤르만 헤세의 ‘향수’ 그리고 ‘브레이킹 어웨이’라는 영화와 TV시리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 중 킹스필드 교수 파트를 보면서 꿈과 낭만을 키웠습니다.”

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은 그렇게 대학 도서관에서 영사기로 돌려본 영상으로 처음 접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세계관과 그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바그너의 음악을 듣다 보면 제가 바그너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 그렇게 40년을 넘게 바그너는 저의 멘토죠. 힘들 때면 무조건 바그너를 찾습니다.”

바그너로만 꾸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er Festspiele)을 비롯한 푸치니 페스티벌(Puccini festival),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테아트로 마시모(Theatro Massimo di Palermo),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 Festival),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 등을 찾는가 하면 녹록치 않은 출장의 여독을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으로 풀 정도로 그의 예술사랑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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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K인터내셔널 사옥 2층에서 관악산을 굽어보고 있는 바그너 조각상(사진=허미선 기자)

 

그가 40여년 간 키워온 예술사랑은 사옥 2층에서 관악산을 굽어보고 있는 바그너의 조각상, 고재윤 작가의 바그너 초상 회화, 13년 전 열었던 스페인 레스토랑 엘 올리보(El Olivo), 지난해 개관한 K&L뮤지엄 등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니콜라라는 미얀마 이태리 조각가에게 바그너의 대리석 동상을 의뢰할까 고민 중”이라고 귀띔할 정도로 못말릴 김 회장의 예술사랑과 지역 발전에 대한 의지는 개관 1주년을 맞은 K&L 뮤지엄에 응축돼 있다.

한국의 신진작가들을 발굴해 선보인 ‘뉴히어로’(New Hero)를 시작으로 빌리 바길홀(Billy Bagilhole)과 마크 생부쉬(Mark Sengbusch) 2인전 ‘언더 더 트리 트렁크’(Under the Tree Trunk), 권여현의 ‘춤추는 사유’(In a Trance), 오스트리아의 전위 예술가 헤르만 니치(Hermann Nitsch) ‘Gesamtkunstwerk: 총체예술’에 이어 현재 스위스 현대미술가 클라우디아 콤테(Claudia Comte) 개인전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Ascending The Ashes: Tale of Renewal)가 한창이다.


◇미얀마 쿠테타, 글로벌 경제난, 반토막난 매출 그럼에도 “계속된다는 것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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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
“사업은 안정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쿠테타 전에 직원 5000명, 수출액 5000만불이었고 2025년 1억 달러 매출을 목표로 했지만 올해 반토막이 나긴 했어요. 하지만 사업은 그럴 수 있습니다.”

“피아노만 있으면 작곡할 수 있다”며 어디든 피아노를 동반해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낸 “바그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더”는 김 회장은 “미얀마의 상황, 한국경제, 세계 무역경제의 어려움이 오더라도 제 비즈니스 여정은 계속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계속된다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결국 지속가능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니체가 말하는 ‘의지’겠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은 의지로부터 나오는 거니까요.”

대학졸업 후 1985년 대우그룹 섬유개발부서에 입사했던 그는 8년만에 독립해 SKM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자라, 망고 등 글로벌 유명 패션 브랜드를 비롯한 의류 제조기업으로 자신의 영어 이름을 딴 남성 셔츠 전문 브랜드 ‘해리 켄트’를 론칭하기도 했던 그는 2000년 모두가 중국, 베트남 등으로 내달리던 때 미얀마로 향했다.

“일단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우리하고 문화적인 코드도 맞았죠. 제가 베트남에 공장을 안 세운 이유는 그들의 기술이나 사람들의 능력이 당시 이미 어느 수준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없어도 되는 곳이었거든요. 그런 곳에 굳이 공장을 세울 이유가 뭘까 싶었죠.”

본사 건물과 개관 1주년을 맞은 K&L뮤지엄, 13년째 운영 중인 스페인 레스토랑 ‘엘 올리보’가 과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이유기도 하다.

김성민 회장
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K&L뮤지엄 창 너머로 보이는 스페인 전문 레스토랑 엘 올리보.(사진=허미선 기자)

 

“그래서 제가 아직까지 이 기업을 여기까지 밖에 못 키웠는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직원들입니다. 그들이 저를 이해해 주고 따라와 준다는 게 제일 중요하죠. 거기서 패션 제조업도, 문화예술 사업도 지속성을 얻거든요. 그게 안 되는 순간 끝입니다. 지난해 선친이 돌아가신 후 회장이 된 제가 문화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30년 넘게 함께 해온 현석호 사장님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사업을 도맡아 주고 계시죠.”

 

군부 쿠테타와 그로 인한 내전, 민주항쟁으로 위험한 미얀마를 떠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그는 바그너처럼 혹은 ‘의지’를 강조한 니체처럼 “사업적으로 더 큰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사업적 확장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함께 살아가며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어려울 때 함께 해야 진짜죠. 제 속에 비즈니스 마인드와 예술가적 마음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얀마에 공장을 짓고 그들의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하며 예술가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K&L뮤지엄도 짓고 그러는 것 같아요. 남들과는 다른 선택, 미얀마의 정치 상황 등에 다들 걱정들을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할 겁니다. ‘무소의 뿔처럼’ 의연하게요.”


◇3년여를 준비한 광주비엔날레 미얀마 파빌리온 “현재는 K&L뮤지엄 정체성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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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년을 맞은 K&L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다들 미얀마에도 예술이 있냐고 묻곤 하지만 벌써 60여년간 내전과 민주항쟁이 치열한 그들의 문화, 예술은 정말 대단해요. 말로 표현이 도저히 안될 정도로 훌륭한 작가들이 많습니다. 보물찾기를 하듯 파빌리온을 꾸릴 작가들을 만났죠.”

그는 3년 전부터 발로 뛰어 미얀마의 보석같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며 3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12월 1일까지) 파빌리온을 준비했다. 그에게 “미얀마를 떠나지 말아주세요”(Harry, Don’t Move Myanmar)라고 당부했던, 12시간을 이동해 만나 이틀에 걸쳐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정치범 출신의 작가 떼일린을 비롯한 미얀마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파빌리온을 꾸려 소개하면서 김 회장은 K&L뮤지엄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미얀마 파빌리온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작가들, 컬렉터들, 갤러리스트들 등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굉장히 혼돈스러웠습니다. 40년 전 바그너의 음악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충격이었죠.”

미술관 부지 마련을 위해 15년 동안 3필지를 사들이며 공을 들인 K&L뮤지엄의 애초 정체성은 음악에 조예가 깊은 그와 선화예술중·고등학교, 미국 시카고 ‘SAIC‘(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미술 전공 후 국내외 유수의 갤러리에서 커리어를 쌓은 딸 김진형 실장이 함께 하는 미술관 그리고 음악과 미술이 공존하는, 아방가르드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미술관이었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소장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숨은 보석들을 발굴·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믹스 앤 매치하며 균형을 잡을까 고민에 빠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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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

 

스위스 작가인 클라우디아 콤테 전시 기간 중인 10월 6일 K&L뮤지엄에서는 각종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와인 페스티벌과 10여명이 동원되는 스위스 전통 요들송 공연이 열린다. 그는 스페인 갤러리를 방문했다 발견한 와인을 직접 수입할 정도로 와인애호가이기도 하다.

“저 나름의 와인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가서 만들어지고 세월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한다는 데서 예술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이 끝나는 12월, K&L뮤지엄에서는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에 좀더 다양한 미얀마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해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오페라 뮤지엄 팝업, K&L 후속전시, 미얀마의 한국문화원 그리고 ‘파르지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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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이 열리는 K&L뮤지엄의 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

 

“올 초 미얀마에서 아티스트들과 그곳을 떠나지 않고 남아 계신 한국 교민들 300분을 초청해 클래식 음악회를 열었어요. 마지막에 저와 사회자, 소프라노, 테너 등이 다 같이 ‘고향의 봄’을 불렀는데 전부 울컥해서 결국 떼창으로 이어졌죠. 벌써부터 내년에도 신년음악회를 할 건지 문의가 오고 있어요.”

그렇게 김 회장은 매순간 음악 그리고 예술의 대단한 힘을 목도하곤 한다. 광주비엔날레 미얀마 파빌리온에 소개하고 싶었지만 판매를 한사코 거부했던 작품 소장자의 마음을 단박에 움직인 이 음악회의 지속성을 고민 중이기도 한 김성민 회장은 그만큼이나 바그너와 오페라 애호가인 이오테크닉스의 성규동 회장과 10월 예술의전당에 팝업으로 설치할 ‘오페라 박물관’ 준비에 한창이다.

“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이시죠. 팝업 기간이 끝나고는 이오테크닉스 사옥에 박물관을 지어 옮겨갈 예정입니다. K&L뮤지엄은 한명의 관객 앞에서 의연하게, 보다 공을 들여 연주한 위대한 예술가들처럼 단 한명의 관람객이라도 있다면 열어둘 겁니다. 13년 전 엘 올리보를 오픈했을 때도 그랬어요. 3년 간은 적자였죠. 어떤 날은 단 한명의 손님이 없기도 했어요. 그런 시기를 보내고 나니 지금은 잘 운영되고 있잖아요. 정말 단 한명의 고객, 관객이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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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

 

K&L뮤지엄은 콤테, 미얀마 작가들 기획전에 이어 내년에는 ‘금강산’을 주제로 의뢰한 윤종숙 화가 신작들을 선인다. 그는 “그 기간 중 ‘그리운 금강산’ 등 가곡 음악회도 기획하고 있다”며 “그 이듬해는 척박한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예술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라파 마카롱(Rafa Macarron) 개인전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호세 전국투어와 동시에 기획 중”이라고 말을 보탰다.

오래 공들여 발굴해 선보인 미얀마 작가들 중 몇몇은 아트바젤 파리(Art Basel Paris), 아시아나우 파리(ASIANOW Paris) 등 글로벌 아트페어에 출품할 계획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바그너 작품들 중 가장 감동받은 하나가 ‘파르지팔’이라고 꼽은 그는 “제가 추구하는 인간형”이라고 털어놓았다.

“캐릭터 자체가 가장 순수한 바보잖아요. 그 사람이 난세에 세상을 구원한다는 바그너의 메시지가 제 가치관과 잘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구원자가 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70세가 됐을 때 오페라 ‘파르지팔’을 국내 무대에 올리는 것 그리고 미얀마에 한국문화를 함께 즐기고 소통하는 ‘SMK 코리안 컬처 콤플렉스’를 짓는 게 꿈이에요. 제가 파르지팔이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그 꿈을 향해 의연하게 제 길을 가고자 합니다. 무소의 뿔처럼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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