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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다가가야 보이는! 수십겹 점들로 쌓아올려 구축한 ‘김기린: 무언의 영역’

입력 2024-06-0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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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멀리서 보면 꽤 두터운 단색조의 화면에 점을 찍은 게 다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불어 작업 과정을 알고 보면 오랜 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작가의 여정이 보이는 듯하다.

1960~70년대 그 시작은 시(詩)였다. 고등학교 시절의 불어 교사가 읽어준 발레리(Valery), 랭보(Rimbaud), 말라르메(Mallarme) 등의 시에 매료돼 집필활동을 시작했고 생텍쥐페리(Antonie de Saint-Exupery)의 ‘어린왕자’에 빠져들어 그 연구를 위해 프랑스 디종으로의 이주까지 감행했다.

그렇게 그곳에서 미술사 공부와 미술을 시작했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미술작품 복원 전문가로도 활동하던 김기린은 그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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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2021년 세상을 떠난 후 처음으로 열린 개인전 ‘김기린: 무언의 영역’(7월 14일까지 갤러린현대 본관)에서는 단색화가 중 유일하게 전통적인 회화재료인 캔버스에 유화로 작업한 김기린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만날 수 있다.

1970년대작인 흑단색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부터 작고하기까지의 ‘안과 밖’ 연작, 캔버스가 아닌 한국 전통 한지를 바탕으로 한 유화작업들 그리고 그의 사진과 시 등 아카이빙 자료들이 총망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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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에 대해 설명 중인 갤러리현대 권영숙 이사(사진=허미선 기자)

 

유화물감에서 기름기를 뺀 후 넓은 붓으로 서너겹의 평면작업 후 작은 붓으로 그리드를 그리고 마치 원고지에 한자 한자 시구를 써내려가듯 점을 찍어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1~3년의 시간이 걸렸다. 

 

수년간의 기간 동안 찍는 점 하나는 최소 30겹, 동일한 색채의 물감이지만 순간순간의 습도, 온도, 환경 등에 따른 다른 밀도, 농도 그리고 그의 모든 것들이 깃들었다.

이를 “아름다운 인간으로 바로 서기 위한 작업”이라고 표현한 김기린의 작품들은 그래서 이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현대 권영숙 이사의 표현처럼 “시의 운율과도 같은 박동이 느껴진다.” 권 이사는 이 작품들에 대해 “김기린이라는 작가의 시적, 문학적, 철학적 그리고 음악적 소양이 발현돼 완성된 것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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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영국 출신의 미술평론가이자 스스로도 예술가인 사이먼 몰리(Simon Morley)는 김기린의 작품 세계를 ‘무언의 메시지’(Undeclared Means), ‘이름 지을 수 없는’(Unnamable), ‘능동적 관람객’(User Activated)이라는 3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무언의 메시지’에 대해 그는 “보는 이에게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않지만 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메시지가 분명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그 이면에 뭔가가 있다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일종의 메시지를 쓰는 과정”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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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안과 밖’ 연작에 대해 사이먼 몰리는 “이 작품에서 보이는 점의 패턴은 손가락 지문을 연상시키고 일종의 비밀코드가 입력된 인상”이라며 “뭔가 있는데 가려진, 이름 없는 이름(Nameless Name)과도 같다‘고 평했다.

“그는 진실, 존재 등을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언어는 결국 인간이 발명했으니까요. 두 번째 키워드 ‘이름 지을 수 없는’은 도가 사상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진짜 진실은 쓰여질 수도, 규정될 수도 없거든요.”

이어 세 번째 키워드 ‘능동적 관람객’에 대해 사이먼 몰리는 “작품이 관람객이 그림을 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초대한다”고 표현했다. 

 

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
김기린 작가의 작품세계를 ‘무언의 메시지’(Undeclared Means), ‘이름 지을 수 없는’(Unnamable), ‘능동적 관람객’(User Activated)이라는 세개의 키워드로 소개하고 있는 사이먼 몰리(사진=허미선 기자)

 

“그의 작품은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서 보라고 요구하고 있거든요. 김기린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라고 요구하고 있죠.”

2층에서는 1965, 66년 본명인 김정환이라는 이름으로 원고지에 눌러쓴 시를 비롯해 한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빛에 따라 투명함이 다르게 느껴지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며 직접 봐야만 그 본질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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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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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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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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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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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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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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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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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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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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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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