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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현대인들의 하수구 같은 욕망들, 어쩌면 오컬트! 양정웅 연출, 황정민의 연극 ‘맥베스’

입력 2024-05-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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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맥베스
연극 ‘맥베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뱅코우 역의 송일국(왼쪽부터), 레이디 맥베스 김소진, 맥베스 황정민, 양정웅 연출(사진제공=샘컴퍼니)

 

“제가 고전극을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릴 때 선배님들이 하던 고전극들을 보고 자라고 공부하면서 정말 기본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입니다. ‘맥베스’는 그 의미가 함축돼 있는 작품이죠. 그래서 우리 후대들이 해석하고 공부할 거리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오이디푸스’ ‘리차드3세’에 이어 ‘맥베스’(Macbeth, 7월 13~8월 18일 국립극장 해오름)로 무대에 돌아올 황정민은 10일 서울 중구 소재의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고전의 힘을 강조했다. 더불어 “관객들에게도 고전극들이 정말 재밌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우리가 하자 했다”고 전했다. 

 

연극 맥베스
연극 ‘맥베스’ 맥베스 역의 황정민(사진제공=샘컴퍼니)

황정민은 맥베스라는 인물에 대해 “한 마을의 영주였는데 ‘당신이 왕이 된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예언에 현혹돼 탐욕과 욕망의 끝으로 가는 인물”이라며 “그냥 구청장이었는데 대통령이 되려는 인물”이라고 비유했다.

“그 탐욕의 끝으로 내달리며 결국 자기 무덤을 파게 되는,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인물이죠. 몇백년 전에 셰익스피어라는 사람이 요즘에 나와도 될 법한 얘기를 써서 관객들과 소통했다는 게 신기하고 지금까지 계속 화두가 된다는 게 할수록 재밌습니다.“

‘서울의 봄’ ‘아수라’ 등에서 욕망의 끝으로 내달리는 인물들을 연기해온 황정민은 “맥베스로서는 또 다른 욕망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하면할수록 어렵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며 “어떤 식으로 관객들한테 보여줄지 저 역시 스스로한테 기대 중”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황정민)가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에 현혹돼 권력을 좇다 파국에 이르는 여정을 담고 있다. 그 여정에는 레이디 맥베스(김소진)의 부추김, 덩컨 왕(송영창)을 비롯해 위협이 되는 뱅코우(송일국), 맥더프(남윤호)와 그 가족들을 몰살하는 광기 그리고 그들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들이 함께 한다.

‘파우스트’ ‘오이디푸스’ ‘리차드3세’ ‘로미오와 줄리엣’ ‘해롤드 앤 모드’에 이은 샘컴퍼니의 6번째 연극 ‘맥베스’는 ‘파우스트’ ‘코리올라누스’ ‘페리클래스’ ‘로미오와 줄리엣’ ‘해롤드 앤 모드’ 등의 양정웅 연출작으로 ‘오셀로’ ‘레드’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등의 여신동 무대미술 및 조명디자이너가 힘을 보탠다.

 

칼을 휘두러 정적들을 몰살시키며 왕관을 차지한 맥베스와 그를 부추긴 레이디 맥베스를 시각화한 포스터는 이와이 슌지가 극찬한 세계적인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작품이다. 

 

연극 맥베스
세계적인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의 작품인 연극 ‘맥베스’ 포스터(사진제공=샘컴퍼니)

 

양정웅 연출은 ‘맥베스’에 대해 “20년만에 도전하는 작품”이라며 “셰익스피어스러운 아름다운 대사와 압축된 완성도를 내는 이 마지막 비극을 전통에 가깝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미장센과 함께 멋있게 만들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욕망의 끝으로 달려가는 인물들, 그 욕망의 끝을 통해 얻어지는 상실감과 죄책감 그리고 양심의 문제 등 인간의 원형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죠. 현대인 역시 그렇게 유사한 욕망들과 죄책감, 양심의 문제 속에서 얼마나 허덕이는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제 삶을 또 반추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언어와 문학적 수사,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인간 본성의 표현들을 잘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극 맥베스
연극 ‘맥베스’ 양정웅 연출(사진제공=샘컴퍼니)

이어 무대에 대해 “여신동 감독과 매 장면 시그니처가 될 수 있도록 시각적인 장면들을 연구 중”이라며 “굉장히 현대적인 비주얼로 꾸미고 있다”고 귀띔했다.

“맥베스만의 욕망을 가득 모아놓은 창고처럼 현대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폐허 속 하수구 같은 기괴한 공간, 마녀와 어마어마한 유령의 등장 등 장르로 치면 오컬트입니다. 오컬트적이고 판타지적인 요소들로 현대인들의 하수구 같은 욕망들을 표현해보고자 합니다.”

올 여름에는 양정웅 연출, 황정민, 김소진, 송일국 등의 ‘맥베스’를 비롯해 동아연극상 수상자이자 대한민국 연극계의 산 역사와도 같은 배우들 24명이 의기투합한 손진책 연출의 ‘햄릿’(6월 9~9월 1일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과 전도연, 박해수 등의 ‘벚꽃동산’(6월 4~7월 7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 등 대극장 연극들이 관객들을 만날 채비에 한창이다.

치열한 여름 대극장 연극 열전에 대해 황정민은 “늘 부담이 있다”면서도 “근데 중요한 건 연극이라는 작업은 오히려 저 개인에게는 힐링의 시간이고 공간이라는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저한테는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이에요. 물론 영화를 찍을 때도 행복해요. 하지만 결이 다른 것 같거든요. 오롯이 배우로서 힐링하고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느낌은 다르니까요. 늘 부담을 느끼면서도 관객분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담이 좀 덜 되기도 하죠.”

송일국은 연극하는 소감에 대해 “오늘 제작 발표회를 하는 이 장소(국립극장 하늘극장)가 제가 첫 연극을 했던 장소다. 제 배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며 “제가 봤던 작품 중 인생작이 2016년 우리 ‘맥베스’가 공연될 해오름 극장에서 했던 ‘햄릿’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성녀·박정자·손봉숙·손숙·유인촌·윤석화·전무송·정동환·한명구) 선배 배우들이 빈 객석을 등지고 서 있는 마지막 장면에 제가 목 놓아 울었어요. 그 배우들이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배우만 느낄 수 있는 그 감정이 있거든요. 빈 객석을 바라봤을 때의 두려움, 설렘, 긴장감 등 그 짧은 시간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지나가면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무대에 제가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설레고 영광스럽습니다.” 

 

연극 맥베스
연극 ‘맥베스’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뱅코우 역의 송일국(왼쪽부터), 레이디 맥베스 김소진, 맥베스 황정민(사진제공=샘컴퍼니)

 

황정민은 제작발표회 말미 지난 3월 15일 폐관한 학전과 김민기에 대한 애끓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1994년 학전의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제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며 허투루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학전”이라며 “얼마 전 TV 프로그램(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 나왔듯 (김민기) 선생님은 늘 스스로를 ‘뒷것’이라 얘기하셨다. 그런 겸손함을 배워왔기 때문에 샘컴퍼니에 소속된 젊은 후배들을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해요. 그래서 SBS 다큐멘터리도 안봤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못 보겠더라고요. 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된 거니 어쩔 수 없는 거고 선생님의 그 정신을 제가 계속 잘 품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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