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못’의 정영주.1세대 뮤지컬 배우로서 후배들을 이끄는 것은 물론 드라마 ‘시그널’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 ‘부암동 복수자들’ ‘나의 아저씨’ ‘열혈사제’ ‘사내맞선’ 등에서 시청자들을 만났다.(사진제공=한국방송) |
“시청자나 관객들이 편식을 강요당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지난해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를 통해 공연 제작자에 도전한 정영주. 스페인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출연 배우 모두가 여성으로 구성된 ‘보기 드문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에 정영주는 “의식해서 여성 소재의 작품을 선택하는 건 아니지만 희귀한 건 맞다”면서 “관객이나 시청자가 선택할 수는 없으니 편식을 강요당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영화 ‘귀못’공식포스터.(사진제공=KBS 한국방송) |
그런 그가 지난 19일 국내 극장(CGV 단독 개봉)에서 개봉한 영화 ‘귀못’에 출연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추억의 프로그램이지만 당시 작품성으로서는 독보적이었던 KBS 단막극과 독립영화관의 부활을 꿈꾼 제작진들이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귀못’은 보영(박하나)이 수살귀가 살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가득한 저수지 근처, 사람이 죽어나가는 대저택에 생계를 위해 간병인으로 들어가면서 겪는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정영주를 필두로 허진, 박하나, 아역 배우들까지 여성들의 반목과 화해, 용서로 가득 차 있다.
영화 ‘귀못’의 정영주.(사진제공=한국방송) |
극 중 괴팍한 숙모는 치매임에도 불리할 때면 외국어를 구사할 정도로 지능적인 인물이다. 정영주는 그의 대척점에 선 김사모를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을 법한 확연하고 요란한 인물로 만들어 현장에 갔다. 숙모가 든든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을 키우며 잘 나가던 시절, 초상화에 그려진 엄청난 크기의 반지가 저택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찬 인물이다.
“평소에도 제가 뭘 입고 나가면 다들 ‘그런 화려한 옷은 어디서 사?’라고 물어봐요. 전 자라(ZARA)를 즐겨입고 스파 브랜드 옷을 좋아하는데 다들 엄청나게 비싸보인다고 할 정도로 강한 인상의 덕을 좀 보는 편이죠.(웃음)”
대선배였던 허진의 존재감은 ‘귀못’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어릴적부터 그의 연기를 보고 자란 정영주는 “어서오세요. 불란서 배우님”이라고 살갑지만 긴장된 첫 인사를 건넸고 겹치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현장에 나가 기념비적인 동시에 광기어린 연기를 두 눈에 담았다. 정영주는 “공포물로 시작해서 휴먼터치로 가는 게 ‘귀못’만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귀못’은 K-정통 호러를 표방하며 극장에서 먼저 개봉 후 12월 21일 안방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사진제공=한국방송) |
“기분좋은 오싹함을 느끼는 현장이었어요. 허진 선배님이 항상 ‘겸손해라’ ‘절대 나처럼 살지마’ 등 생생한 후일담을 들려주셔서 배운 것도 많고요. 마지막 하네스를 차고 어딘가에 빨려들어가는 신을 찍었을 때는 집에 와서야 다리에 잔가시가 일직선으로 촘촘히 박혀 있는 걸 발견할 정도로 집중했습니다.”
극한상황 속 선과 악의 모호한 구분 속에서 대저택에 숨겨진 보석에 대한 집착으로 광기에 빠져드는 인물들 간의 숨 막히는 심리전은 ‘귀못’만의 장점이다.
스산함과 기괴함이 감도는 대저택에서 초자연적 존재와의 사투 등이 펼쳐지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각종 드라마와 뮤지컬을 거쳐 최근 예능 ‘뜨거운 싱어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 중인 그는 곧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대중과 소통할 예정이다.
1996년 대한민국 최초 정식 라이선스 뮤지컬로 시작해 명불허전 대배우들의 화려한 무대와 탭댄스로 뮤지컬의 대중화에 앞장서며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작품으로 정영주는 이번 작품에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뽐낸다.
“최고의 뮤지컬 스타였지만 지금은 그 명성을 잃어버린 프리마돈나 도로시는 과거 제가 ‘명성황후’를 들고 미국 브로드웨이에 갈 때를 떠올리게 만들어요. 저의 초심이나 마찬가지죠. 당시 아버지가 모시적삼에 큰 부채를 들고 공항에 나와 ‘국위선양하고 오시오’라고 박수를 쳐 주셨죠. 그때의 친구들과 다시 한번 신나게 무대에 오를 생각을 하니 설레고 기쁩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