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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난민 위한 창조적 걸음' 가을 미풍 타고 전세계로

[권익도의 White Cube]

입력 2015-10-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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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아이 웨이웨이(왼쪽)과 아니쉬 카푸어가 함께 손을 맞잡고 펼치는 ‘난민’을 위한 도보 행진(AFP)

  

입김을 구름처럼 내뿜던 겨울이었다. 매서운 바람에 몸을 한껏 움츠리고 들어갔던 리움미술관은 컬러 잔치가 한창이었다. 

 

형형색색의 거대 조각들은 잿빛과도 같았던 서울의 겨울을 따스한 온기로 감쌌고 조각 속에서 숨바꼭질하는 찬란한 철학적 사유의 분비물들은 전시장 공간을 촘촘히 메꿨다. 

 

세계적 미술가 아니쉬 카푸어의 2013년 서울 개인전. 카푸어는 그렇게 역설적 계절을 택해 한남동에 불시착했고 방문 관람객을 따뜻하게 녹였다.

카푸어의 작품은 경계를 넘나든다. 일단 카푸어부터가 그렇다. 인도 태생이지만 영국인인 그는 어릴 적부터 구속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길 싫어했다. 그래서인지 유독 동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아우르는 명상적인 작업을 즐긴다. 

 

당시 리움의 개인전에서도 그만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근엄한 미술관 바닥에 실제로 검은 구멍을 뚫은 ‘디어스(The Earth)’, 인도인들이 힌두사원에서 종교의식을 거행할 때 이용하는 원색의 물감가루를 벽면 전체에 뿌려놓은 ‘옐로우(Yellow)’. 

 

미술관과 작품의 경계를 흐려놓는가 하면 관람객과 미술품의 경계마저 허문다. 그리곤 동서양 사고관의 차이를 한데 뒤섞는다. 카푸어의 뇌 속에는 상반되고 이질적 요소들을 조화라는 메시지로 이끌어내는 변증법적 논리가 있다. 

 

옐로우
리움미술관에 전시됐던 아니쉬 카푸어의 ‘옐로우(Yellow)’, 1999 (출처: 아니쉬카푸어 공식 웹사이트)

 

비슷한 길을 걷는 작가가 또 한 명 있다. 바로 중국의 설치미술가 아이 웨이웨이(艾未未)다.

 

그는 중국 정부와 외로운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아이, 그의 활동을 가두려는 정부의 구속. 

 

2009년에는 정부의 외압에 개인 블로그가 폐쇄된다. 그리고 2011년에는 81일 동안 소리소문 없이 감옥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중국인이지만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사는 아이. 

 

그의 대표작 ‘중지손가락’이다.  

 

중지손가락
중국 베이징 톈안문을 향해 손가락 욕을 하는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중지손가락’(출처: 아이 웨이웨이 공식 웹사이트)

  

공산주의적 잔재가 남아있는 중국 정부에 대한 은밀하지만 강한 도발이 엿보인다. 

 

최근 런던 테이트 모던의 개인전에서는 도기로 구워 만든 3200개의 게를 탑처럼 쌓은 ‘허시에’를 선보였다. 

 

중국어 허시에는 조화라는 뜻의 공산당 슬로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물참게의 발음과도 같다. 

 

중국 정부가 상하이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철거하라고 명령하자 동음이의어인 게를 이용해 적나라하게 비꼬았던 작품이다.  

 

BRITAIN-CHINA-ART-AI WEIWEI <YONHAP NO-3549> (AFP)
도기로 구워 만든 3200개의 중국 아이 웨이웨이 게 조각 작품 ‘허시에(He Xie)’, 2010 (출처=AFP)

 

이외에도 테이트 갤러리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대화의 자유를 위한 감옥’에서는 “베이징이 내게 감옥이라 생각지는 않을 겁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살았던 곳이니까요.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는 아주 명백히 감옥입니다”라고 외친다.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아이의 흔적들. 작품 곳곳에 서리처럼 스며있다.

9월 17일 아침 9시 55분. 굴레와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두 예술가가 난민을 위해 뭉쳤다. 

 

태양이 새벽녘 회색 하늘을 붉은 물감으로 물들이는 순간, 아이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영국 왕립미술원 앞에는 난민의 상징인 회색 담요를 걸친 아이와 카푸어가 나타났다. 

 

이들은 이날 난민을 위한 도보 행진이라는 퍼포먼스를 기획했고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카푸어의 ‘궤도’가 설치된 런던 스트랫퍼드였다. 주위를 걷던 대중들도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하나둘씩 동참했고 100여 명이 넘는 취재진도 들러붙었다.

아이와 카푸어는 함께 걷는 이들에게 고했다.

“우리는 걸음으로 전세계에 ‘화합’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창조의 산물이죠. 죽음을 각오하고 유럽을 넘나들며 수백 마일을 걷는, 그리고 에게해와 같은 바다를 건너는 난민들을 위한 걸음입니다. 난민에 문을 열겠다는 독일과 달리 유럽 전역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골몰하고 있죠. 이를 긍정적인 행동으로 바꿔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정신의 문’을 열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정신의 문’을 열 것입니다. 그렇게 대중의 인식을 최소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난민 도보 행진
영국 왕립미술원에서 스트랫퍼드까지. 아이와 카푸어가 함께 회색 천을 어깨에 걸치고 걸은 이 거리는 총 7.2 마일(11㎞)이었다.(출처: 구글 맵스)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트라팔가 광장까지를 관통하는 화이트홀을 지나 오후 1시 30분쯤 궤도에 도착한 아이와 카푸어는 한 숨을 돌렸다. 그리곤 목에 핏대를 보이며 목청껏 외쳤다.

“이번 행진은 일회적인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서 난민에 대한 울부짖음이 들릴 때마다 이어갈 겁니다. 우리는 그저 예술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난민 문제는 곧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죠.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난민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곧 세계인들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가을날의 기분 좋은 미풍이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선 두 작가를 휘감으며 ‘변화의 종’을 울렸다.

권익도 기자 kid@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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