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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한국경제 70인] 日재벌 신격호 '롯데신화'…'인수합병 귀재' 최종현 SK 키워

입력 2015-08-1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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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을 창업한 신격호(1922~ ) 총괄회장은 한국에 서비스산업을 뿌리내리고 발전시킨 대표 기업인이다. 철저한 수익 경영과 무차입 경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사업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해방 후 일본에서 시작한 껌 사업의 성공을 기반으로 1960년대에 일찌감치 '일본 10대 재벌'에 올랐고 1966년에 한국으로 넘어와 롯데알루미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호텔롯데 롯데전자 롯데 기공, 롯데칠성음료 등을 잇달아 국내에 세워 한일 성공신화를 써 나갔다.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서 셔틀 경영을 펼쳤다. 한국에서는 차남인 신동빈 회장의 공격 경영을 도와 적극적인 M&A 등에 힘입어 한국롯데를 재계 4위로 끌어올렸다. 최근 경영권 다툼이 치열한 아들(신동주·신동빈) 형제를 어떻게 조율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구자경(1925~ ) LG그룹 전 회장은 구인회 창업자의 아들로 LG그룹을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다. 1970년 럭키그룹 회장 취임 때 260억에 불과하던 그룹 매출을 1995년 퇴임 때 30조원 규모로 키우며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생필품과 생활가전 위주였던 그룹 사업구조를 지금의 형태로 완성시킨 후 1995년 1월 LG로 그룹 이름을 바꿈과 동시에 아들 구본무 회장에게 홀연히 회장직을 넘겨주고 은퇴했다. 이후 철저히 경영간섭 없이 천안 농장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구본무 현 회장은 뚝심의 경영인으로 통한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을 뚝심있게 밀어붙여 성사시켰고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 등이 글로벌 부품회사로 클 때까지 꾸준히 투자해 결실을 맺었다. 창업 동반자였던 GS LS와의 성공적인 분리도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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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첫 출선 순간에 만세를 부르는 박태준(가운데) 사장과 임직원들.

박태준(1927~2011)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 신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2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뒤 대한중석 사장을 거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포항 앞바다로 달려가 맨 땅 위에 포항종합제철 공장을 짓는 신화를 이뤄냈다. 

1968년 포항종합제철(포스코)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 뒤 1991년까지 회장, 명예회장을 역임하며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일념으로 한국의 철강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포스코가 있었기에 현대자동차 삼성전자도 있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실제로 중국의 덩샤오핑이 신일본제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며 거절했다는 신화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1986년에는 포항공과대학교를 세워 고등교육 육성과 기술인재 양성에도 큰 공을 세웠다.

최종현 SK그룹 회장(1929~1998)은 친형인 최종건 회장을 도와 선경그룹을 일으켜 현재의 SK그룹을 만든 기업인이다. 1973년 경영권을 넘겨 받아 1980년 유공(SK이노베이션), 1994년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인수로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양대 축으로 하는 굴지의 그룹으로 키워냈다. 

그는 그룹이 성장 정체에 빠질 때 마다 과감한 기업인수합병으로 돌파구 찾는 과단성을 보였다. 특히 한국이동통신 인수 때는 노태우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에 특혜 의혹을 사자 거침없이 사업권을 반납했고 주당 5만원 안팎의 주식을 33만5000원에 인수하겠다고 해 세상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장남 최태원 회장도 성장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던 하이닉스를 전격 인수하는 용단을 내림으로써 석유화학과 이동통신 이후를 담보하는 그룹의 차세대 사업으로 키워가고 있다. 

김우중(1936~ ) 대우 회장은 국내 기업의 글로벌화를 10년 앞당긴 기업인이다. 1967년에 32세의 나이에 대우실업을 만들어 사업 초기부터 동남아시아, 미국 시장에서 잇달아 성공해 대우 신화를 일구어 냈다. 1981년에는 ㈜대우 회장으로 취임해 이듬해 대우그룹을 출범시켰고 이후 이른바 '세계경영'을 모토로 재계 2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 높은 부채비율 탓에 결국 그룹은 해체됐고 김 회장은 분식회계와 횡령 등의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다. 

특별취재팀=정윤나·이혜미 기자 okujy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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