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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한국경제 70인] 구인회의 포목상 'LG그룹'…정주영의 도전 '현대그룹' 결실

입력 2015-08-1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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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人) 글자의 왼쪽 변 위부터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구자경 LG그룹 전 회장·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최종현 SK그룹 전 회장·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

 

유일한(1895~1971) 유한양행 창업자는 국내 기업인 가운데 처음으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투명하고 정직한 기업경영을 몸소 실천한 참 기업인이다. 또 자녀들에게 회사를 넘기지 않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일찌감치 선진 경영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가 미국 유학에서 귀국해 1927년에 만든 유한양행도 당시 한국에 가장 필요한 사업이 의료분야임을 느끼고 의약품 사업을 통해 조국에 보탬이 되고자 한 애국심의 산물이었다."정직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게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모범 기업인이었다. 특히 산업 불모지였던 당시에 의약품 생산과 함께 특산품인 화문석, 도자기 등을 수출해 민족자본 형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초대회장으로 일하면서 재계의 결속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62년에는 국내 민간기업 중 두번째로 기업 공개도 단행했다. 1965년에는 개인주식을 팔아 학교법인 유한재단을 설립했고 유한공업고등학교를 건립해 기술 기초교육 함양에도 이바지했다. 

LG그룹 창업자 구인회(1907~1969) 회장은 마을 협동조합에서 시작해 굴지의 글로벌 기업 LG그룹을 일궈낸 기업인이다.

1931년에 친동생 구철회와 함께 연 구인회상점이란 포목상을 기반으로 운수업·무역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중 우연히 화장품 사업에 발을 담그면서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 때 지금의 GS 일가를 이룬 허준구와 동업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럭키(lucky)'라는 상표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플라스틱 제품사업의 성공으로 국내 최대 화학제품업체로 등극하면서 국산 생필품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금성사 설립은 그룹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라디오 생산을 계기로 TV 등 가전제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다들 꺼리던 미국 시장 진출까지 이뤄내 1990년대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구씨와 허씨 간의 사업 합작은 한국 기업사에 가장 성공한 '상생 동업' 모델로 평가된다. 그룹이 분할되는 시점에서 일체 잡음과 논란이 없었다는 사실은 많은 기업인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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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38년 설립한 대구 삼성상회의 당시 모습. 이 작은 가게가 70여년 후 삼성그룹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기업 삼성을 만든 이병철(1910~1987) 회장은 주먹구구식 경영에 천착하던 국내 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다. 1970년대 이미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앞선 경영'을 실천하고 이른바 '삼성식' 선진경영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인재 제일'을 모토로, 우수 인력 발굴과 교육에 남다른 투자를 함으로써 삼성을 재계의 인재사관학교 역할을 하도록 했다. 반도체와 휴대폰 등 한국경제의 기둥이 되는 산업들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클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 줬다. 

이 회장은 1938년 대구에서 설립한 삼성상회를 모태로 1950년대부터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에 이어 동방생명(삼성생명) 신세계백화점 안국화재보험(삼성화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국내 최대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또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사회복지재단 등을 설립해 문화와 복지 확대에 기여했고 재계 이익단체인 전경련을 창설해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기업(인)의 권익 보호와 국가경제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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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현대건설이 주최한 중동파견 근로자 가족 위안의 밤 행사 모습.(사진제공=국가기록원)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회장은 범 현대가를 창업한 불세출의 경영인이다. 현대기아차, 현대그룹,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KCC, 한라그룹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키워졌다.

특히 다른 그룹들과는 달리 거의 제조업과 건설 SOC를 중심으로 굵직한 기업들을 일궈내, 도약기 한국 경제의 '압축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대부분 M&A 보다는 직접 땀흘려 창업한 회사들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인정을 받고 있다.

한 때 제14대 대통령선거에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등 외도를 하기는 했지만 그는 평생 기업가 정신으로 살아온 '거인'이다. 1998년에는 '통일소'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덕분에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성사되어 남북 민간교류의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대표되는 도전정신은 지금도 기업가 정신의 상징어가 되고 있다. 대한체육회 회장 겸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88 서울올림픽 유치를 주도하는 등 한국 스포츠 발전에도 혁혁한 기여를 했다.

특별취재팀=정윤나·이혜미 기자 okujyn@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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