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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기업가 70인] 양재봉, 한국 증권업계 전산화의 선구자

입력 2015-08-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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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양재봉(사진·1925~2010) 대신증권 창업주는 한국 자본시장에 한 획을 그은, 증권업계를 이끌어온 선구자다.

1925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난 양 회장은 1944년 한국은행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하면서 금융계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해방 후 그는 행원을 관두고 미곡상 양조장 등을 경영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 1960년 한일은행에 입행해 청량리지점장 시절 9억원이던 지점 수신액을 1년 반 만에 네 배로 불려 금융계의 ‘전설’이 됐다.

1973년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 등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한 후 1975년 중보증권을 인수하고 ‘금융업은 신용이 생명’이라는 신조 아래 사명을 ‘대신(大信)’으로 바꿨다. 양 회장은 1977년 사장에 취임했으나, 취임 4개월만에 회사 영업부장이 일으킨 금융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러나 1981년 대신증권이 경영난에 허덕일 때 복귀해 자본잠식상태인 회사를 살리고 지금의 대신금융그룹으로 일궈냈다.

 

대신-와코그룹 업무제휴식
고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가운데 왼쪽)가 1997년 7월 대신증권과 일본 와코증권간 업무제휴식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대신증권)

 

 
특히 ‘기업공개를 하려면 대신으로 가라’는 말이 유행으로 돌만큼 그는 채권 인수시장과 기업공개 시장의 발전을 이끌었다. 또 전산부문이 증권회사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보고 전산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통해 온라인 증권거래 시대를 이끌었다. 1976년 업계 최초로 증권 전산화에 나섰고 1979년에는 각 지점에 전광시세판을 들여놨다. 양 회장은 선견지명과 위기관리 능력으로 1997년 터진 외환위기에도 유일하게 간판을 지켜냈다.

2001년 현업에서 물러난 후에는 송촌문화재단을 통해 장학사업, 사회복지시설지원사업 등 사회공헌 활동을 펴오다 2010년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민주 기자 stella25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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