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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미켈란젤로씨, 르네상스 시각은 틀렸군요" 안토니 곰리의 일침

[권익도의 White Cube] 이탈리아 피렌체에 세워진 안토니 곰리 작품 '휴먼'

입력 2015-06-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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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천사(Angel of the North)’, 1998,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출처: 안토니 곰리 홈페이지)

 

 

브릿지경제 권익도 기자 =1998년 영국 북동지역 게이츠헤드라는 소도시에는 높이 20미터, 폭 54미터, 무게 100톤의 초대형 조각 하나가 세워졌다. 사람의 나체 모양에 비행기 날개가 달린 괴상한 조각, 바로 안토니 곰리의 ‘북방의 천사(Angel of the North)’다. 

 

 

곰리는 탄광촌이었던 도시의 맥락을 조각에 그대로 투영했다. 그 지역 경제를 든든하게 떠받치던 철강을 조각의 주원료로 썼고, 시민의 일터이자 삶 그 자체였던 탄광촌 언덕 위에 기단을 세웠다. 

 

퍽퍽한 도시 전체에 숨결을 불어넣고 팍팍한 삶을 사는 군상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자아를 찾아 유랑하는 제3의 관광객일지라도 그곳에 서면 나의 의미를, 도시를 찾은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조각임이 분명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시민들의 논란은 거셌다. ‘세금 80만 파운드를 쓸데없는 조각에 쏟아 붓는 정부’라는 비판부터,  ‘번개가 치면 근처 A1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량에 피해를 줄 수 있다’거나 ‘바바리맨의 포르노그래피 이미지를 닮았다’는 등 말도 안되는 비난까지…. 

 

그러나 27년이 지난 지금, 북방의 천사는 목에 핏대 세우며 반대했던 시민들을 꿀먹은 벙어리로, 게이츠헤드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곰리에게는 ‘공공미술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라는 칭호를 만들어줬다.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공공미술운동에 이정표를 세운 안토니 곰리가 최근 이탈리아 피렌체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르네상스’ 로 대표되는 현대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반기들 들고 나섰다. 인간의 신체를 매개로 시공간과 세계를 탐험해온 곰리는 새 작품에서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안토니 곰리
또 다른 장소(Another Place), 1997,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출처: 안토니 곰리 홈페이지)

 


 

곰리는 모든 작품에 레종데르트, 즉 존재의 이유를 부여한다. 그 소도구로 ‘맥락(Context)’을 이용한다. 곰리의 ‘또 다른 장소’(Another Place)를 보자. 영국 항구도시 리버풀 근교의 크로스비 해안가에는 장장 4km에 걸쳐 100개의 남성 나체 조각이 여기저기 널 부러져 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조각들은 밀물, 썰물에 따라 물에 잠겼다 모습을 드러내기를 반복한다. 바다라는 공간과 맞닿은 작가 자신, 관람객, 그리고 이 세계를 뜻한다.

“조각은 본질적으로 그대로 정지해 있다. 서있는 돌 조각과도 같다. 시간과 공간이 기록돼 우리가 관찰하고 우리를 관찰하는…. 조각 역시 우리를 관찰하는 과정이다.”  -안토니 곰리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첼리니, 잠볼로냐의 고향인 이탈리아 피렌체. 그 중심에 있는 이탈리아 벨베데레 요새(Forte di Belvedere)에 곰리의 최신 작품 조각이 전시됐다.

요새의 뒤편에는 곰리의 조각상들이 재앙을 겪은 희생자 마냥 무질서하게 널부러져 있다. 비굴한 상태로 더미 채 쌓아 올려진 조각들은 르네상스 시각의 실패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 옆에는 집 잃은 사람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돈을 구걸하듯 터널 입구에 옹송거리고 있는 조각과 벽 뒤편 코너 쪽에 고꾸라져 곰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울부짖고 있는 조각’도 있다.

 

르네상스
휴먼(HUMAN), 2015,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출처: 안토니 곰리 홈페이지)

 

이 조각들은 모두 곰리 자신의 몸을 실측해 만들어졌다. 곰리 자신의 행동 자체가 미술 오브제로 다양하게 변주된 것이다.

자신의 몸을 조각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는 작가 자신의 사고도 함께 투영돼 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곰리의 작품에는 사람냄새가 난다. 따뜻하다. 악착같이 사람의 몸 해부에만 몰두하던 르네상스 조각에서는 찾을 수 없는 정서다. 

 

굳이 르네상스의 중심지이자 인문주의의 요람인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북방의 천사, 또 다른 장소 등의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씨, 르네상스적 사고는 이후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근간이 되고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끼쳐왔죠. 변종형태로 인간을 일하는 기계로 전락시켜버리거나 사회적 매커니즘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로 이끌어오기도 했죠.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감성적으로 풍부한 동물이며 현대 사회의 인간은 명확하고 이성적인 과학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안토니 곰리

곰리는 서로서로 뒤엉켜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조각상들을 던져놓음으로써 지오바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의 존엄에 대한 연설’에,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형을 읊조리는 대사에, 미켈란젤로의 인물의 신체 강조에만 치중한 다비드상에 고함친다. “르네상스의 시각이 온전히 맞는 것만은 아니다!”라고. 

 

권익도 기자 kid@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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