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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종속' 오명 '자본론'으로 벗는다… 혁명을 꿈꾸는 2015 베니스비엔날레

[권익도의 White Cube] 2015 베니스비엔날레

입력 2015-05-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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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시대유감이다. 사회 현상을 ‘쉬쉬’ 해오거나 ‘슬쩍’ 흘려버린 이 시대의 예술은 사망선고를 받은 지 오래. 사회와 호흡을 해야 할 예술은 점점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시장과의 상징적인 관계에 종속돼 자본에 빨아 먹히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이탈리아관 ‘아레나(the Arena)’에서 울려 퍼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Das Kapital, 1867년작)은 그렇게 이 시대 예술의 사회적 무관심에 꿀밤을 먹인다. 훠이 물러가라. 새 시대가 도래할지니.

“현시대의 문제를,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과 관련된 사회 문제를 예술과 연관 짓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본론이 떠올랐다. 출간된 지 150여년이 지났고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지금까지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이 책은 죽어버린 우리 예술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 -오쿠이 엔위저 2015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그렇게 오쿠이 엔위저의 실험적 지휘는 시작됐다. 최근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뷔욕 전시를 ‘멍청한 짓’이라 비판하면서 성별이나 인종 차별적 문제와 같은 문화적 거대 담론을 흥미로운 전시로 끌어 들이자는 게 그의 주장. 이번 행사에선 노동·여성·반식민지·종교·환경·인권운동 등 오늘날 우리의 살과 맞닿아 있는 문제들에서 진실을 하나하나 들춰내고 통렬하게 꼬집는다. 예술의 힘으로 기존 시스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맞서는 ‘혁명’ 그 자체가 메시지이며, 이 같은 메시지는 이번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라는 타이틀에 녹아있다.

 

◇사라 루카스, 영국 파빌리온 - 조각으로 성을 비꼬는 '도발 작가'

 

“나는 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가지고 노는 게 좋다. 그리고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사라 루카스

 

사라 루카스
사라 루카스 ‘아이 스크림 다디오(I scream daddio)’ (EPA)

 

데미안허스트가 속했었던 영브리티시아티스트(YBA) 출신 영국 작가 루카스는 텐트 속에 1963년~1995년까지 자신과 함께 잤던 남자들의 이름을 적었던 트레이시 에민과 함께 대표적인 ‘도발 작가’로 꼽힌다. 젊은 시절 성과 관련된 사회적 메시지들을 던지던 루카스는 시간의 속도감을 거슬러 이번에도 역시나 그녀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토르소와 여성의 질 모양을 부각시킨 몸통 조각으로 해학적이면서도 심오하게 성에 대한 고정 관념이 박혀 있는 사회를 비꼰다.


 

◇조안 조나스, 미국 파빌리온 - 78세 노인의 환경고발 퍼포먼스

 

조안 조나스
조안 조나스의 설치영상 ‘그들은 말없이 우리에게 온다’

 

캐나다 노바 스코샤 지역 주민들에게서 구전되는 귀신 이야기, 흐느끼는 듯한 음악 소리, 비틀비틀대는 가면을 쓴 귀신. 이 위에 입혀지는 물고기, 꿀벌, 코뿔소 그리고 바람소리.

 

'퍼포먼스의 개척자'이자 비디오와 퍼포먼스 아트의 1인자 미국의 조안 조나스(78). 잔물결이 이는 듯한 거울, 크리스탈 방울이 달린 샹들리에, 일본식 연 등등. 대체로 경계 없이 작업해 온 조나스가 이번에는 '환경'이라는 소재를 꺼내들었다. 영상 속 조나스는 직접 가면을 쓰고 퍼포먼스까지 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바그너가 말한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의 정수다.

 

 

◇하이더 자바, 이라크 파빌리온 -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만행, 과연 정당한가

 

하이더 자바
하이더 자바의 ‘케이스 1303’

 

이라크의 젊은 화가 하이더 자바(Haider Jabbar)는 비뚤어진 사람의 얼굴에 눈가리개가 씌여진, 입에선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물이 먹먹히 먹은 수채화로 그려낸다. 검은 띠는 이슬람국가(IS)의 검정 깃발의 위협감을 상징한다. 그는 자신의 친구를 포함해 2000여 명의 이라크 젊은이들이 참수당하는 과정을 목격하고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려냈다. '케이스 1303'은 그 중의 한명이다. 하이더 자바는 현재 망명자 신분으로 터키에 있다.

 

 

◇크리스토프 뷔켈, 아이슬란드 파빌리온 - 카톨릭 교회와 이슬람 모스크의 갈등·화합

 

여기가 교회인가, 모스크 사원인가. 이슬람교도가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공간인 퀴블라 벽이 카톨릭 건축물과 병치돼 있고, 수 백명의 무슬림 교도들이 성당을 들락 날락하며 기도를 올리고. 이곳은 바로 이탈리아 파첸트로 성모마리아교회다.

아이슬란드 예술가 크리스토프 뷔켈은 ‘카톨릭 국가’로 대변되는 이탈리아에 대담하게 이슬람 깃발을 꽂았다. 돌 맞을 각오는 제대로 한 듯. 화합과 갈등이라는 개념을 충돌시키고 그 속에 역사와 종교의 문제도 뒤섞어 놓았다. 비록 설치 미술이긴 하지만 이탈리아 최초 ‘모스크 사원’이라는 의미를 부여받았다. 행사에 온 무슬림 신자들의 환호와 동시에 카톨릭 교도들에게는 더 없이 ‘무례한 행위’라는 비난이 오가고 있다고.

권익도 기자 kid@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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