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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通] 살구나무와 동봉의 선행

입력 2024-09-24 10:40 | 신문게재 2024-09-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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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는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집에 심어 꽃과 열매를 즐기던 전통 정원수이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살구나무는 동쪽에 심으면 흉하고 북쪽에 심어야 길하다고 한다.

하지만 옛 선비들은 살구꽃을 높이 쳐주지 않았다. 꽃잎이 비슷한 매화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꽃으로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삼았지만, 살구꽃은 주막에나 피는 꽃으로 폄훼됐다. 살구나무 핀 마을이란 뜻의 행화촌(杏花村)은 정겨운 마을이 아니라 저잣거리 술집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살구나무는 한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귀하게 여겨진다. 참 의술을 펼치는 의원을 행림(杏林)이라 하며, 의원집의 뜰에 살구나무를 심기도 했다. 행림춘만(杏林春滿)은 살구나무 숲에 봄이 가득하다는 의미로, 한의학에서는 의술을 칭송할 때 많이 쓰인다. 한의원의 벽걸이 액자에 이 글귀가 씌어 있는 곳이 많다.

중국 동진시대에 갈홍이 쓴 ‘신선전’에는 동봉이라는 신선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동봉(董奉)은 의술이 뛰어났다. 치료비 대신 중병이 나으면 살구나무 다섯 그루, 가벼운 병이 나으면 한 그루를 자기가 살고 있는 집 뒤뜰에 심게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의 집 뒤켠은 10만여 그루의 살구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뤘다. 그는 살구나무 숲에서 자란 열매를 팔아 얻은 곡식을 가난한 사람들과 배고픈 여행객에게 나눠줬다. 사람들은 그 살구나무 숲을 ‘동선행림’이라고 부르며 동봉의 선행을 기렸다고 한다.

동봉은 다양한 날짐승과 뛰어다니는 짐승들을 불러들여 울창하게 자란 살구나무 숲에서 살게 했다.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게 해서 살구나무 숲에 자라는 잡초도 제거하고, 동봉이 없을 때 살구 열매를 몰래 훔쳐가는 도둑도 막기 위해서다.

 

-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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