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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유주택자 대출 제한, 실수요자 어려움 없앨 자신 있나

입력 2024-09-04 14:33 | 신문게재 2024-09-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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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고강도 압박에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취급 제한에 나서고 있다. 민간 은행권에서 유주택자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이례적인 일까지 생겼다. 우리은행은 9일부터 집이 한 채라도 있는 경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추가 주택 구매를 위한 대출을 해주지 않기로 했다. 예외는 뒀지만 대출 창구가 사실상 무주택자에게만 열리고 있다. 기존 주택 처분 확약서를 쓰고 전세대출을 받는 일도 속출하게 됐다.

이 같은 초강수 카드는 현 정부의 8·16대책에서 8·8 대책 사이의 기조를 되짚어보면 상당히 낯설다. 이전 정부의 수요억제(대출규제) 정책이 부작용만 키웠으니 하나둘씩 정상화한다며 공급확대, 규제완화에 방점을 둔 정책을 펼쳐 오지 않았나.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까지 동원한 대출규제는 돌변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쓸 카드가 없다는 얘기도 되지만 역효과가 걱정이다. 가계대출 급증은 집값 폭등의 결과다. 그 원인이 아님을 다시 상기해볼 일이다. 일시적 집값 안정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클 거라는 예견은 어쩔 수 없다.

현재 분위기로만 보면 금융권 전반이 우리은행 수준의 규제 카드를 내놓을 공산이 커졌다. 유주택 주담대·전세대출을 중단한 일이 언제 있었던가. 금리 인상, 한도 축소, 다주택자 대출 제한 강화 등 백방이 안 듣는 가계부채를 누르는 취지는 알지만 지나치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갭투자를 막는 자체는 좋다. 그러나 1주택자까지 투기꾼 취급해 대출을 틀어막는 건 온당하지 않다. 누구보다 실수요자의 어려움이 있어선 안 된다.

이사를 계획 중인 전세·매매 수요자들은 대출이 안 나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은행별로 대출 금리와 주담대 제한 정책의 시기나 기준이 다른 부분도 시장 혼란을 가중시킨다. 주택 구입과 이사 등에 차질을 빚는 금융소비자가 늘지 않게 해야 한다. 추가 규제 카드가 줄줄이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총량 규제의 쓴맛은 2021년 대출중단 사태에서 벌써 맛본 적이 있다.

그때는 자금 수요보다 대출 공급이 줄어 은행이 차주를 고르는 신용할당 상황도 빚어졌다. 정책대출 지원 대상에서 비껴난 중저소득 실수요 계층 피해가 특히 더 예상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출 절벽 해소를 언급해서 쉽게 풀릴 사안도 아닐 듯싶다. 정책 일관성 부재와 너무 급한 정책 스탠스 선회로 시장은 아수라장이 될 판이다. 은행 창구 뺑뺑이에 나선 ‘대출 유목민’의 아우성을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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