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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미 비포 유(Me before you)를 통해 본 삶과 죽음

입력 2024-08-25 13:41 | 신문게재 2024-08-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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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미 비포 유(Me before You)라는 영화를 얼마 전 다시 보게 됐다. 책을 먼저 읽었는데, 영화도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미래가 창창하던 부잣집 청년 윌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지마비가 되어, 순수한 시골 아가씨 루이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스위스로 가서 존엄사를 선택하면서 세상과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한다는 내용이다.


제목인 미 비포 유는 어떤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을까? 사랑하는 당신보다는 내가 먼저라는 뜻일 수도 있고, 당신을 만나기 이전의 나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고, 그저 당신 앞의 나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영어로 ‘죽다’라는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죽다(die)라는 단어가 있다. 좀 더 예의를 차려서, 돌아가다(pass away) 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한다. 양동이를 걷어찬다(kick the bucket)라는 표현도 있는데, 양동이를 밟고 올라가서 목을 매달고는 그 양동이를 걷어찬 이후, 죽음을 맞았기에 나온 표현이라고 알려져 있다.

데이지 꽃을 밀어서 나오게 하다(push up daisies)라는 표현도 있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데이지꽃이 유난히 무덤가에서 잘 자라는 것을 두고 나온 말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삶의 뒷면에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안다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도 하고 주변 정리도 하겠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기에, 바쁜 삶 속에서도 가끔씩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미 비포 유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음에도 청년 윌은 존엄사를 선택한다. 존엄사, 또는 안락사를 논하려면 ‘죽음의 의사’로 불렸던 미국의 의사, 케보키언이 떠오른다. 케보키언은 1980년대부터 말기 환자들의 ‘죽을 권리’를 주장하면서 실제로 90년대에 많은 환자들의 조력자살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루게릭병을 앓던 50대 환자의 안락사를 도우면서, 비디오 촬영을 해, 그 과정을 TV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 덕분에 살인죄로 긴 기간의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후 가석방됐고,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미국은 1994년 오레건주에서 존엄사법을 통과시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했고, 이후 10여 개 주가 존엄사를 허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는 현재 스위스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존엄사는 너무나 무거운 주제이기에 섣불리 입에 올리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반드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생명의 존엄성과 환자로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품위 있는 삶의 마감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점은 어디인지, 회복이 어려운 환자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품위와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의료인들이 이들에게 배려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타협점은 어디인지, 모두 함께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삶의 시작이 선택이 아니듯이,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해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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