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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 신뢰가 먼저다

입력 2024-08-18 09:17 | 신문게재 2024-08-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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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영 금융증권부 기자
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배임사고가 터졌다. 본부장 A씨가 전직 그룹 회장의 일가 친인척에게 2020년 4월부터 올해까지 616억원을 대출해줬다. 이 중 350억원 가량은 대출 심사 등 적절한 절차 없이 실행했다. 임원급 직원과 금융사 회장의 친익척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특혜 대출’ 시비가 불거졌고, 평직원 수준에서 일어나는 전례와 궤를 달리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일부 은행’ 문제가 아니다. 은행권 금융사고는 좀체 줄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벌어진 100억원이상 금융사고는 총 10건으로 연평균 2.5건을 기록했다. 이 중 올해 터진 사건만 6건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은행권이 반성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금융은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상업거래는 교환이 성사되면 거래가 종결된다. 그러나 금융거래는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사이의 약속 아래 시차(만기)를 두고 금전이 오가는 행위다. 일정 기간 배당이나 이자가 오가고, 금전을 빌리는 채무자도 채권자가 계약사항을 준수하고 불법적 강압을 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어야 거래가 성사된다.

금융이 기초적인 신뢰를 넘어섰다면 채권자는 채무자를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거래 효율성 때문이다. 여신 심사 절차가 신용점수나 담보 감정가가 아닌 ‘인맥’에 따라 이뤄지면 거래 비용이 증가해 효율성이 저하된다. 대출심사가 인맥에 영향을 받으면 시장 참여자는 탐색비용을 들여서라도 인맥을 찾게 된다. 개별적 이득은 있을지언정 시장 전체로 보면 손해다.

은행법 제1조는 자금중개기능의 효율성과 신용질서 유지를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수많은 채무자 사이에 전 회장님 친인척을 먼저 찾아야 한다면, 적시적소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금융 본연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노재영 기자 noh@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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